25.1.17 꿈
꿈은 소재를 현실의 내 상황, 아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꿈은 하나의 층위만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 개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 꿈이 그러한데, 나의 현실 상황과 그 아래 작동하는 심리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다정함'이란 앞의 꿈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 꿈은 그 허락을 이어받아 나의 수치를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꿈이다.
아들이 시험성적 보여준다.
친구이름 자리에 자기 이름이 있고, 학점이 완벽하다.
도대체 이렇게 학점이 잘 나온 친구 성적을 가져오면 어떡하나? 생각이 없나? 싶기도 하다.
그동안 학교를 잘 안 다녀 나올 수 없는 성적이다. 아빠가 이걸 모를까 싶어 살짝 염려된다.
내가 간섭하지 말고 둘이 알아서 하도록 두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사회에서는 직장과 수입이 성적표이고,
엄마에게는 아들의 성취가 성적표이다.
요즘 내 성적표가 못마땅하다. 내 기대치대로 아들은 자라주지 않는다. 학교 다니기 힘들어 이래저래 방황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론 이해한다고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론 불안하다. 이러다 학교는 제대로 다닐지, 졸업은 할 수 있을지, 직업은 구할 수 있을지, 이러다 모든 걸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와 주저앉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들. 그래서 은근히 압박감을 주기도 했다.
비교와 부추김.
평가의 눈빛.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내가 받았던 이러한 것들을 아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었고, 그것은 나의 성적표가 되어 돌아왔다.
거짓으로라도 잘나 보이고 싶어 내 것이 아닌 남의 성적표를 내밀었다.
겉으로 괜찮은 척, 잘난 척할수록 가짜 성적표처럼 불안과 수치심은 더 커진다. 이러한 감정이 클수록 '내 아이만큼은 괜찮아야 한다'는 믿음은 더 강해진다. 그러한 부모의 눈에는 '척'이 더 이상 '척'이 아니라 진짜가 된다.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니에요.' 증거가 아무리 쌓여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평가의 시선 속에 자란 사람은 '괜찮아 보여야 하는 나'와 '그렇지 못한 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내 안의 반짝임은 지나친 평가 속에 점점 묻혀가다 어느 순간 잊힌다. 그렇게 정말 나는 하찮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나는 이제 무언가 성취할 에너지가 없다. 그래서 아들이 잘 커준다면 그 성취가 곧 나의 성취가 된다. 아들의 이름을 지우고 내 이름을 넣을 수 있다. 그렇게 부모에게서 배운 시선을 그대로 아이에게 물려준다.
이 꿈은 말한다. 나는 아들을 타인의 평가기준으로 보고 있었다고. 나의 기대치를 충족하기 어려운 아이는 그 기대를 맞추기 위해 성적을 위조한다. 그래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으니.
이것이 표면의 의미라면
한 층 더 깊이 내려가 꿈을 들여다보자
제레미 테일러는 꿈속의 모든 인물은 모두 '나'라고 한다.
본래의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 기준에 맞추려고 애쓰던 나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가짜 성적표는 아이가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가 만들어낸 기대치였다.
그동안 가짜 성적표를 내밀고 살아왔다. 이제는 내가 그것으로 나인 척할 수 없음을 무의식은 조용히 알려준다.
꿈속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라면, 아버지는 초자아. 잘해야 한다는, 완벽을 추구하는 나이다. 아들은 미숙하여 잘하지 못하는 나, 그래서 거짓으로 잘하는 척해왔다. 나는 이제야 이 상황을 알아차린다.
아버지와 아들 둘 사이의 긴장감을 느끼면 난 감당할 수 없을 거 같아 외면해 왔다. 하지만 이제 감당할 수 있다고 꿈은 말한다. 아버지에게 들킨다면 이제 더 이상 거짓된 모습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
'간섭하지 말고 알아서 하도록 두자!'
무엇을 그토록 간섭해 왔을까?
공부, 인간관계, 밝고 긍정적인 태도, 도전해 나가는 모습들...
이 모든 바람들은 결국 내가 나에게 바랬던 마음들이다. 아니, 내가 바랬다기보다 그런 바람들에 부담과 간섭을 받으며 살아온 내가 나에게 지운 바람들이다. 그 간섭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에게 향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바람들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간섭은 사랑이 아니라 걱정이고 불안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를 더 보듬었을 것이다.
성적표가 가짜라는 것을 들킨 아이(나)에게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숨기느라 얼마나 애써고 외로웠는지 알아주는 것이다. 며칠 전 꿈에서 아저씨가 내게 보내준 다정한 눈빛을 이제 내가 나 자신에게 돌려준다.
"미안해. 실망스럽지 않아. 너의 진짜 모습과 마주 할 용기가 생겼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서 고마워."
그리고 따듯하게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