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1 꿈
나는 두 아들을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다.
둘은 서로 닮지 않았고 성격도 반대되는 부분이 많다.
첫째에게는 나의 부족한 면,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들이 고스란히 투사되었다면,
둘째에게는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면들이 많았다.
밝고, 명랑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무엇이든 잘할 것 같은 이미지.
성적표를 위조한 꿈에 등장한 아이가 첫째라면,
이번 꿈의 등장인물은 둘째이다.
나는 절벽 옆 바닷길을 오르고 있다. 둘째 아이와 그의 친구가 헤드라이트도 없는 자전거를 타며 나를 앞질러 나간다. 가로등이 없는 밤이어서 사고가 날까 걱정된다. 나는 뒤에서 조심하라고 외친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의 자전거가 무언가에 부딪히고 튕겨져 나가 절벽 아래 바다로 떨어진다. 그 순간 숨이 멋는 듯한 불안이 나를 덮친다.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아들도 뛰어내릴까 하는 두려움에 마구 뛰어 올라간다.
바다 주위에 작은 배 3척이 보인다. 어쩌면 구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과 단짝인 친구는 아들과 하나의 자아일 수 있다. 떨어지는 친구는 아들에게 씌워놓았던 나의 환상일지 모른다. 꿈에서 바다는 무의식을 상징한다. 추락은 파괴가 아니라 무의식의 영역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이다.
꿈에서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나이다. 떨어지지 않은 나와 떨어진 내가 있다. 내 안의 건강한 자아는 남고, 그 자아를 덮고 있던 이상적인 이미지만 벗겨진 것이다.
난 둘째가 밝고, 명량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라고 여겨왔다. 우리 둘은 서로 말도 잘 통한다고. 내가 주는 이러한 시선이 내가 좋아하는 역할을 하도록 무언의 압력이 되지 않았을까?
첫째의 있는 그대로의 인정을 하지 못 한 꿈 이후, 나는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겠다고 다짐했다. 이 꿈도 이제 이상적인 나를 추구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첫째와 마찬가지로 둘째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라고 한다.
둘째의 성격은 그대로이지만 오랫동안 덮여있던 콩깍지가 사라지자 아이의 새로운 면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상처받기 쉬운 아주 보드라운 내면을 밝고 명량한 모습으로 감싸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뭐든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 믿음은 첫째처럼 불안으로 올라오려고 한다. '그래서 또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나?'라는 간섭이 들어가고 싶어 진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알아차림은 멈춤을 가져온다.
이제는...
고치려 하기보다 '아, 너에게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라며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음을 말해준다.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투영했던 첫째에게는 그의 가치를 잘 알아주지 못했다.
반대로 둘째에겐 나의 이상을 투영해 그의 가치를 과대평가했다.
아이들은 결국 나를 비추는 거울들이다.
그 거울들을 통해 그동안 마음에 들지 않아 외면한 나의 모습을 봐 왔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아이이고,
나 참 괜찮은 아이'라는 지난번 꿈이 떠오른다.
꿈의 기억은 현실에서 긍정적인 나를 비춘다.
남의 성적표(타인의 기준)를 버리고 내 성적표(내 본모습)를 들여다본 작업은 자연스럽게 내가 가졌던 이상적인 이미지도 벗겨내게 해 준다.
두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난 후 남게 된 못난 내 모습이 '나'이다.
그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줄까?
내가 '나'만큼은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둘째 아이 친구가 바다로 떨어진 후 구조 될 수 있다는 희망은 멋진 이상적인 모습에 안전한 작별을 고할 수 있게 한다.
꿈에서의 죽음은 대부분 긍정으로 본다.
이렇게 다행이다 싶은 꿈에서 악몽처럼 불안에 얼어붙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이다. 내가 뒤에서 아무리 조심하라고 외쳐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현실에서 내가 많이 느끼는 불안이다.
또 다른 불안은 내 안에서 오랫동안 붙어 있던 샴쌍둥이 같은 자아(타인의 시선에 익숙한, 이상적인 나를 꿈꾸는)를 떼어낼 때 느끼는 공포이다. 그토록 싫어했건만, 내 삶을 지탱해 주던 것이었기에 나의 일부를 잃는 듯한, 흔히 말하는 심리적 죽음에 대한 공포가 올라온다.
아들마저 잃을까 하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낭떠러지에서 느끼는 불안.
불필요한 자아를 내려놓을 때 새로운 자아도 잃을까 하는 공포.
새로운 나의 탄생은 매번 공포를 몰고 온다.
경계를 넘어가는 공포, 미지의 공포.
아들을 잃을까 하는 공포는 악몽처럼 보이지만 꿈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느끼는 공포, 그건 네가 용기 있게 문턱을 잘 넘어가고 있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