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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희 Aug 27. 2024

이번에는 세 모녀만

경주와 김천을 다녀오다

더운 날씨가 훅 다가온 7월을 앞두고 엄마와 동생과 나, 이렇게 세 모녀만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의 고향인 정읍과 고창을 들려서 경주와 김천까지 3박 4일의 여정이었다.


이번에 아버지는 열외이다. 지난겨울에 목포 여행을 시작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거의 매달 장거리 여행을 다녀왔다. 분명히 즐거웠지만, 각 여행지에서 아버지의 노환으로 수고로움이 뒤따랐고, 그때마다 수고는 직접적으로 엄마의 몫이었다. 그에 따른 엄마의 피로감이 쌓인 시점에서 피곤도 풀어드리고 모처럼 세 모녀만의 돈독한 정을 나누고 싶어서다. 아버지에게는 얼마 전에 정읍으로 이사 간 막내 이모를 보러 간다고, 그럴듯한 명분을 둘러댔다. 


엄마는 여러 형제자매 중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막내 이모에 대한 정이 깊다. 그래서 이모가 이사했다는 소식을 듣기 무섭게 가보려고 했다. 출발하는 날 아침까지 같이 가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눈치를 뒤로하고, 가볍지 않은 발걸음을 떼었다. 집에 어린아이를 혼자 두고 떠나는 느낌이랄까. 못내 마음 걸려 하는 두 딸에 비해 비교적 쾌활한 엄마 모습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부부는 0촌이면서, 남은 남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사실 엄마는 유난히 꼼꼼하고 까다로운 성품의 아버지와 평생을 같이 했기에, 잠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누구라도 자신을 위한 온전한 쉼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기차 대신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버스터미널에 마중 나온 이모는 못 본 사이 더욱 수척해진 모습이다. 엄마보다 두 살 어린 이모는 서구형 체형으로 키가 크고, 과묵한 편이다.

오목조목 따지면 외모가 매우 다름에도 자매만의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나와 동생도 그렇겠지 싶다. 나이가 들수록 어딘가 닮은 구석이 점점 더 늘어나는 듯하다.

성격도 매우 다른 엄마와 이모는 일제강점기와 육이오를 겪은 세대답게 그들만의 끈끈한 정이 남다르다. 힘든 세월을 버티고 이겨낸 동지애가 혈육의 정 위에 쌓였을 것이다. 우리의 부모 세대가 공유한 독특한 정서일 수 있다. 두 팀의 자매들은 모처럼 쌓인 이야기보따리를 밥을 먹으면서, 전통찻집에서 쉼 없이 풀어냈다. 이윽고 다음 일정을 향해 떠나는 세 모녀는 홀로 남은 이모의 아쉬움의 눈빛을 뒤로했다.


우리는 고창에서의 일정을 서둘러 마치고, 경주로 갔다. 초저녁 무렵에 도착해서 예약한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안압지로 향했다. 드디어 안압지의 야경을 보았다. 대학생 시절 졸업 여행으로 경주와 부산을 다녀온 이후로 와본 안압지, 몇십 년 만인가, 감회가 새로웠다.

그 당시에는 안압지 야경은 없었고, 몇 년 전부터 지인들에게서 전해 들은 얘기로 야경이 좋다고 들었다. 듣던 대로 좋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조명들은 옛 신라의 정취를 화려하게 드러내고 유구한 세월이 그저 한 순간에 똑 떨어진 것만 같았다.

포럼하게 드리워진 초저녁 하늘 아래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느라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여기저기 가득했다. 기억 속에, 마음속에 새겨도 결국엔 그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시간의 덧없음을 알면서도, 시간을 붙들고 싶은 마음도 포기할 수 없다. 시간의 흐름은 계속된다. 과연 계속될까.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음은 분명 축복이다. 세 모녀는 그날 충분히 자유롭고 거리낌이 없었으며, 주저하지 않았다. 경주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토함산 석굴암, 불국사 등을 다니면서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며, 웃었다. 그 때를 떠올리면 자유로움의 향기가 먼저 다가온다. 


직지사의 아침

김천에서의 이틀도 매우 좋았다. 샤인 머스캣 농장이 펼쳐진 곳에 있는 숙소에서 이틀 밤을 보내면서 이른 아침에 찾은 직지사의 아름다운 진입로와 고즈넉한 사찰과 정원, 맑은 계곡을 보았다. 사진 속 우리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해맑고 천진하다. 

물소리, 바람 소리, 햇빛과 신선한 공기 안에서 보낸 시간에 기대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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