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소설 짓는 여자 홍재
사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거지라 불리는 반 늙은 남자들을 심심치 않게 보던 시절이 있었다. 거지가 밥 좀 주쇼 하고 대문에 대고 소리치면 시할머니는 사랑채 바깥 툇마루에 앉으라 하고 ""새 아이야, 밥 차려 오니라."" 나를 부르셨다.
바닥 흙이 찰떡같은 시어머니의 부엌에 들어가면 묵직한 무쇠 가마솥 두 개가 아궁이에 척 걸터앉은 채 반질반질 윤을 뿜어내고, 빨간 몸통이 앙증맞은 석유곤로가 그 옆에서 신식이라고 자랑하고 있었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땔감용으로 볏짚을 쌓아두는 광이 있었다. 구석 빼기 벽에는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나그네 몫의 개다리소반이 걸려있었다.
개다리소반을 내려서 시할머니 한 소리 날아오지 않게 밥을 고봉으로 눌러 담고 국그릇이 넘치도록 떠서 김치와 함께 사랑채 툇마루로 가지고 갔다. 거지가 연신 잘 먹겠다면서 코를 박고 먹는 사이에 "그래, 어디서 왔노? 고향은 어디고? 처자식은 없누?" 시할머니의 궁금증이 와르르 쏟아졌다.
밥을 얻어먹는 늙수그레한 남자들은 한결같이 수굿했다. 수저질을 재게 놀리면서도 과거를 풀어놓으며 시할머니의 비위를 맞추었다. 남자가 숟가락을 놓고 일어날 때쯤 시어머니가 한 대접 쌀을 가지고 나와 남자가 벌린 바랑 속에 쏟아놓았다. 그 시절 농사짓는 집안의 넉넉한 풍습이었다.
아이엠에프 혹한사태에 접어들며 한 집안의 가장들이 거리로 내몰렸다. 역사에서 한데잠을 지새우는 노숙자 시대가 열렸다. 찬바람 몰아치는 추운 날씨에 서울역 밖에서, 지하철 입구 계단 통로에서, 지하보도 안에서 종이박스를 덮고 가리며 찬바닥에서 자고 있다.
몇 년 전 해 저물녘, 서울역에서 열차에 내려 지하철 통로로 들어섰을 때, 처음으로 바닥에서 웅크리고 자는 그들을 보았을 때, 나라의 기둥도 같이 떨고 있다고 느꼈다. 애써 모른 척 동동걸음을 쳤지만 가슴속에는 비가 내렸다. 주룩주룩.
자반고등어 /박후기(1968~)
가난한 아버지가 가련한 아들을 껴안고 잠든 밤 마른 이불과 따듯한 요리를 꿈꾸며 잠든 밤 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껴안고 잠든 밤 소금 같은 싸락눈이 신문지 갈피를 넘기며 염장을 지르는, 지하철 역의 겨울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