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왜 평도전이 왜구 토벌에 진력하지 않다
세종 1년(1419) 6월 3일의 실록에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일본에서 건너와 조선에 귀화한 평도전(平道全)이라는 항왜(降倭)다. 그는 왜구를 토벌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같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싸우기를 꺼렸고, 심지어 대마도 세력과 몰래 내통했다. 전투가 벌어지자 마지못해 나섰는데 적군 중에 자신이 아는 일본 승려가 있어 살려 달라 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투가 끝난 뒤에는 오히려 자신이 공을 세웠다고 허위 보고했다. 이에 세종은 그를 엄히 꾸짖고 평양으로 옮기게 했으나, 그의 가족이 생업을 잃지 않게 쌀과 집을 마련해주는 세심한 조치를 취했다.
이 짧은 기록은 일본이 부정해온 항왜가 이미 조선 초부터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항왜는 단순한 변절자가 아니라 두 문명 사이 경계의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봉건적 폭력과 해적질을 피해 조선으로 왔지만, 동시에 조선에서도 완전한 신뢰를 얻지 못했다. 실록 속 평도전의 이야기는 그런 항왜들의 복잡한 내면과 조선이 그들을 어떻게 다뤘는지를 보여준다. 이 한 편의 기록에는 국경과 문명이 맞닿은 곳에서 살아간 인간들의 딜레마와, 그들을 도덕과 질서 속에 편입시키려 한 조선의 문명적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종 1년 6월 3일 현대어로 알기쉽게 번역한 실록 기사.
평도전은 일본 출신으로 조선에 귀화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구(일본 해적)를 토벌하는 데에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평도전은 대마도 사람들과 몰래 내통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즘 조선이 너희(대마도인)에게 점점 냉대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다시 국경 지역을 습격해 조선을 놀라게 하면, 앞으로는 예전처럼 너희를 잘 대우하게 될 것이다.”
그 뒤 윤득홍(尹得弘)이 백령도에 나타난 왜구를 물리치자, 평도전은 자신이 일본 출신이라는 이유로 싸우기를 꺼렸다.
윤득홍이 앞장서서 적을 공격해 이미 왜구들이 패하자, 평도전은 그제야 마지못해 따라 나서 도움을 주었다.
또한 그는 전투 중에 자신이 아는 일본 승려(왜승)를 발견하자, 윤득홍에게 그 사람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청했다.
이 일로 인해 처치사(處置使, 전투를 지휘하던 관리) **성달생(成達生)**이 평도전을 꾸짖었다.
그런데 평도전은 전투 후 먼저 한양으로 올라와 자신이 큰 공을 세웠다고 거짓으로 보고했다.
이에 뒤따라 윤득홍이 사실을 보고하자, 임금은 다음과 같이 명했다.
“평도전과 그 가족 14명은 평양에 머물게 하고, 그를 따라온 자들은 함길도 각 관청에 나누어 두도록 하라.”
세종은 또 명하여, 평도전의 가족들이 생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하였으며, 가끔 쌀과 소금을 내려주고 빈집을 주어 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