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애착과 신 애착, 문명을 가른 애착 구조
들어가며 : 문명의 구조를 가른 심리적 단층, '애착'
한국은 흔히 관계 중심 사회, 곧 집단주의 사회로 불리고 서구는 개인주의 사회로 규정된다. 그렇다면 이토록 이질적인 문명적 지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왜 서구는 개인주의적 토대 위에 서게 되었고, 한국은 관계 중심의 공동체를 더 강하게 발전시켰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제도나 문화를 넘어 인간이 세계와 맺는 보다 근본적인 심리적 지향점으로 내려가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을 다독이고 기댈 곳을 찾기 마련인데, 그 대상을 어디에 두느냐가 문명의 구조를 갈라놓았다.
이 깊은 심리적·문화적 단층을 설명해 주는 핵심 열쇠가 바로 '애착'이다. 여기서 말하는 애착은 단순한 친밀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존재론적 불안을 견디고,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며, 궁극적인 피난처를 어디에 두는가를 결정하는 정서적이고 문명적인 지향이다.
이러한 애착의 지향점은 두 개의 상이한 세계를 빚어냈다. 어떤 문명은 '인간'을 애착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근원적 대상이 된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유대,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연결은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존재를 확인하는 핵심 질서다. 반면, 어떤 문명은 '신'을 애착했다. 이 문명에서 삶의 의미와 안정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다. 이들은 절대적인 초월자와의 결속을 통해 궁극적 질서를 확보하려 했다.
이러한 두 갈래의 애착 양상은 유교 문명과 기독교 문명으로 구현되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유교 문명은 바로 이 인간에 애착한 대표적인 세계다. 이곳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孝)나 이웃과의 끈끈한 정(情) 같은 인적 관계망이 곧 도덕의 근원이자 삶의 불안을 잠재우는 '정서적 보루' 역할을 했다. 반면, 서구 기독교 문명은 신에 애착한 세계였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주와의 수직적인 관계였다. 신 앞의 단독자라는 인식은 혈연이나 세속적 공동체의 굴레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개인을 탄생시켰고, 이것이 훗날 서구 개인주의의 심리적 토대가 된 것이다.
애착 이론의 확장
애착이란 개념은 존 볼비(John Bowlby)가 정립한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에서 가져온 것이다. 원래 이 이론은 영유아와 주 양육자 사이의 정서적 유대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 볼비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신을 보호해 줄 가장 가까운 존재를 찾도록 진화했으며, 그 대상과의 안정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세상을 탐색할 용기를 얻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어른이 되어도 우리는 덩치만 클 뿐,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어딘가에 정서적으로 닻을 내리지 않으면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다.
볼비가 말하는 애착 대상은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위협적인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피난처'이자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돕는 '안전기지(Secure Base)'다. 영아에게 부모가 그러하듯, 성인에게도 연인, 배우자, 가족, 혹은 더 나아가 국가나 종교적 절대자가 이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즉, 애착은 인간이 존재론적 불안을 견디고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지향점이 단지 개인의 심리적 영향에 그치지 않고, 문명 전체의 정서적 구조를 조직한다는 사실이다. 한 사회가 누구를, 혹은 무엇을 '최종적인 위안의 대상'으로 삼느냐에 따라 그 문명의 도덕, 제도, 감정 표현 방식은 완전히 다른 경로를 걷게 된다. 예를 들어, 불안한 순간에 내가 가장 먼저 손을 뻗는 대상이 '내 곁의 사람(인간 애착)'인지, 아니면 '하늘 위의 절대자(신 애착)'인지에 따라 그 사회의 성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서구 문명의 경로 : 신을 향한 애착의 이동과 개인의 탄생
애착을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위험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존재다. 이 기준으로 보면 인류의 최초 애착 대상은 신보다 인간이었다. 원시와 고대의 삶에서 굶주림, 질병, 출산, 양육, 사냥 실패를 실제로 막아 준 것은 부모와 친족, 그리고 가까운 집단이었다. 물론 그 시대에도 신에 대한 숭배는 존재했다. 그러나 그 신은 풍요와 다산, 전쟁의 승리와 재난의 회피를 비는 기복적 존재에 가까웠다. 신을 경외하고 달랬지만, 인간이 자신의 실질적 생존을 맡기는 대상은 혈연과 공동체였다. 다시 말해 고대 종교의 신은 숭배의 대상이었으나, 아직 본격적인 애착의 대상은 아니었다.
이 구조가 크게 흔들린 게 이른바 축의 시대다. 철기의 보급은 대규모 전쟁을 일상화했고, 도시화는 낯선 타인들 속으로 인간을 밀어 넣었다. 제국은 정복과 강제 이주를 통해 오래된 혈연 공동체를 해체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작은 친족집단 안에서만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어제까지 친족망 속에서 살던 사람이 오늘은 낯선 행정체계 속에 놓인 것이다. 익명의 도시, 불안정한 삶, 반복되는 전쟁은 기존의 인간 애착 시스템을 위협했다.
그런데 이 위기 앞에서 전통 다신교의 신들은 너무 약했다. 지역신은 지역을 벗어나면 힘을 잃었다. 마을 우물은 마을 안에서는 생명줄이지만, 길 위의 난민에게는 의미가 없다. 불안한 시대의 인간은 더 강력하고 더 보편적인 애착 대상이 필요했다. 그 결과 신은 단순한 숭배의 대상을 넘어, 인간이 정서적으로 매달릴 수 있는 절대적 존재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등장은 바로 이 전환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종교에서 신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의 수호신이 아니다. 그는 전지전능하고, 도덕적이며, 인간의 내면까지 아는 존재다. 인간은 그 신에게 기도하고, 위기 속에서 구원을 청하며, 최종적인 심판과 위로를 기대한다. 이것은 애착 구조의 혁명적 재편이었다. 피난처가 친족집단에서 초월적 존재로 옮겨간 것이다.
그러나 초월적 신앙이 기존의 인간 애착을 단숨에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척박한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인간 애착'의 그물망이 여전히 절실했다. 유대교의 회당(시나고그), 기독교의 초기 교회(에클레시아), 이슬람교의 움마(Ummah)는 단순한 종교적 집회를 넘어, 해체된 혈연과 부족을 대신하는 새로운 형태의 영적 가족이자 운명 공동체로 기능했다. 이들은 경제적 궁핍을 구제하고 병자를 돌보았으며, 세상의 거센 박해 속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다는 강렬한 연대감을 나누었다. 초월적 절대자를 지향했지만, 가혹한 세계 속에서 이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탱해 준 것은 내 곁에서 빵을 나누고 눈물을 닦아주는 신앙 공동체의 따뜻한 체온이었던 것이다.
이 때의 신은 개인이 홀로 대면하는 고독한 단독자의 신이 아니라 언제나 공동체 안에서 매개되고 경험되는 신이었다. 당시 율법 공동체의 울타리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단순한 사회적 소외가 아니라, 신과의 영적 연결마저 끊어지는 실존적 죽음을 뜻했다. 이처럼 초월적 존재와의 접속이 철저히 공동체를 통해서만 이루어졌기에, 인간 사이의 상호의존적 애착 체계는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견고하게 유지되던 이 ‘공동체 매개형 신 애착’ 구조는 16세기 종교개혁, 특히 개신교의 출현을 기점으로 파격적인 단절과 마주하게 된다. 중세 천 년간 교회는 사제라는 중재자와 성사(Sacrament)라는 제도를 통해 신앙 공동체의 결속력을 유지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종교적 공동체 안에서 정서적 피난처를 찾았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으로 대변되는 종교개혁가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 놓인 모든 인간적, 제도적 매개물을 걷어냈다.
루터 이후 서구 기독교는 중재자 없는 개인과 신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렬하게 촉구했다. 이른바 '만인제사장설'은 더 이상 교회라는 집합적 피난처에 숨지 말고, 모든 개인이 신 앞에 홀로 직접 서야 한다는 엄중한 선언이었다. 이로써 예배하는 공동체가 완전히 해체된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개인의 구원과 위로를 독점적으로 보장하던 핵심 통로로서의 교회의 지위는 상실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서구인의 애착 구조를 지극히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으로 급진화시켰다. 이제 신자는 고해소에 앉아 사제의 품에 기대는 대신, 오직 자신의 양심과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독대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해야 했다. 구원의 확신과 정서적 안정을 타인이나 공동체로부터 얻을 수 없게 된 개인은, 오직 신과의 사적이고 내밀한 결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된 것이다.
이 전환은 인간을 공동체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켰지만, 동시에 개인을 우주적 고독 속으로 내던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서구의 인간은 가족이나 마을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신 앞의 단독자(Coram Deo)’로 규정되었다. 존재에 대한 궁극적인 인정과 위로 역시 곁에 있는 타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게서만 얻어내야 했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서구 개인주의의 깊은 뿌리는 바로 이 지점에 닿아 있다. 그것은 타인을 배제하려는 얄팍한 이기심이나 파편화의 결과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인간보다 신에게 훨씬 더 깊고 처절하게 매달려야만 했던 독특한 애착 구조가 낳은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로 : 혈연과 인간에 대한 애착의 체계화, 유교
그렇다면 동아시아는 왜 서구와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생태적 환경과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차이가 작용했다. 동아시아는 벼농사 중심의 생활을 영위해 왔다. 밀 농사와 달리 벼농사는 파종부터 수확까지 고도의 집단적 협업과 장기적인 정착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거대한 수리시설을 공동으로 건설 및 관리하고, 모내기와 추수 시기에 집중적인 노동력을 조직하며, 엄격한 계절 주기에 함께 대응하는 과정은 사람들을 운명 공동체로 지속적으로 밀착시켰다.
이처럼 끈끈한 농경 공동체의 기반 위에 씨족 질서와 조상 숭배가 결합하면서, 동아시아의 인간관계는 단순한 생존 네트워크를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성스러운 질서로 승격되었다. 서구가 보이지 않는 초월적 신에게서 구원과 위로를 찾았다면, 동아시아인들은 나에게 생명을 물려준 조상과 현재의 삶을 공유하는 가족, 그리고 후손으로 이어지는 혈연의 영속성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았다.
물론 동아시아의 역사에도 거대한 제국의 충돌과 참혹한 전쟁, 그리고 상업의 발달에 따른 도시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격변조차도 사람들을 오랜 혈연의 뿌리에서 완전히 떼어내지 못했다. 숱한 왕조의 명멸 속에서도 촌락 단위의 공동체와 친족 네트워크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방어막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동아시아가 낯선 시대의 위기와 불안 앞에서 선택한 길은, 저 너머의 초월적인 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미 가지고 있던 것, 즉 '인간에 대한 애착'을 더 정교하게 정비하고 한층 더 강력하게 체계화하는 길로 나아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유교다. 춘추전국시대라는 전대미문의 혼란기 속에서, 공자를 비롯한 사상가들은 무너진 세계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초월적인 신의 목소리를 빌려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도리, 즉 '인륜(人倫)'을 세계의 중심에 세웠다. 유교는 사회 구성원 전체를 아우르는 강력한 애착 체계를 조직했다. 불안에 떠는 인간에게 “하늘에 매달리라”고 말하기보다 “부모를 섬기고 관계를 바로 세우라”고 가르쳤다. 군신, 부자, 부부 등 인간관계의 기본 틀을 규정한 삼강오륜(三綱五倫)은 누구에게 어떻게 애착해야 하는가를 명시한 문명적 가이드라인이었다.
부모는 단순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나에게 생명을 준 절대적인 근원이며, 조상은 후손의 제사와 기억을 통해 혈연 공동체를 지탱하는 영원한 뿌리로 남는다. '효(孝)'와 단단히 엮인 '제사(祭祀)'는 정교하게 가다듬은 인간 애착의 제도화된 표현이다. 서구 문명에서 부모의 품을 떠나 신 앞에 독립적인 단독자로 서는 것이 성숙의 지표였다면, 유교 문명에서는 부모를 떠나지 않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인간됨의 완성으로 여겨졌다. 죽어 신의 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제사를 지내줄 후손들의 기억과 혈연 공동체 안에 영원히 살아남는 것이 곧 실존적 위안이자 구원이었다.
동아시아의 고대 기복신앙 역시 이런 구조 속에 그대로 남았다. 한국의 무속이나 민간 신앙의 신들은 서구의 유일신처럼 내면을 고백하고 영혼을 온전히 의탁하는 존재로 발전하지 못했다. 신들은 여전히 재앙을 막고 복을 비는 대상이었으나, 인간의 가장 깊은 정서적 피난처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흉년이 들거나 자식이 아플 때 칠성신에게 빌고 산신에게 굿을 했지만, 삶의 근원적인 소속감과 정체성은 늘 가족과 문중이라는 혈연의 망에서 찾았다.
두 애착 사회의 병리와 미덕
애착 대상의 근본적인 차이는 두 문명이 빚어내는 고유한 병리와 미덕에서도 드러난다. 먼저, 절대적인 신을 궁극적 피난처로 삼은 서구의 '신 애착 사회'가 성취한 가장 위대한 장점은, 역설적이게도 인간관계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다는 데 있다. 우주를 창조한 절대적 초월자가 이미 나의 내면을 깊이 꿰뚫어 보고 나의 존재 가치를 온전히 인정한다면, 한낱 불완전한 타인들이 내리는 평가나 인정은 상대적으로 덜 절박한 문제가 된다.
공동체가 나를 오해하고 비난하더라도,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당당할 수 있다면 결코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요새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견고한 정서적 안전기지 덕분에 서구 문명은 강력한 자율성과 독립성, 그리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개인의 양심 같은 가치들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나아가 특정한 혈연이나 지연을 초월하여 낯선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원칙'의 감각 역시 이 지점에서 싹을 틔웠다.
그러나 인간으로부터 정서적 거리를 두는 데 익숙해진 서구는 소외와 고독, 그리고 자아에만 과도하게 함몰되는 나르시시즘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근대 이후 과학과 이성의 발달로 종교적 지반이 붕괴하면서, 초월적인 애착 대상은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하늘 위의 피난처가 붕괴해 버린 것이다. 절대자를 상실했다면 다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동아시아처럼 인간관계 중심의 끈끈한 정서적 유대와 상호의존의 기술을 복원해 낼 수 없었다. 타인과 얽히고 부대끼며 위안을 얻는 문명적 근육이 이미 퇴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초월자도, 공동체도 모두 사라진 텅 빈자리에는 오직 파편화된 개인만이 남겨졌다.
그 결과 통제 불능으로 자아가 과잉 팽창하여 세상의 중심이 오직 자신뿐이라고 믿는 극단적 이기주의가 빠지거나, 반대로 이 광활한 세계 속에서 그 누구와도 깊이 연결되지 못한 채 고립되었다. 신을 잃은 서구 문명이 영적 고아 상태에 빠진 것이다. 소외와 고독, 자기과잉은 개인의 성격 결함만이 아니라, 오래도록 신에게 기대어 버텨 온 문명이 신이 사라진 이후의 새로운 피난처를 구축하지 못해 앓는 구조적 증상이다.
반대로 신이라는 초월적 피난처 대신 사람을 택한 인간 애착 사회의 가장 큰 힘은 단단한 유대와 상호 돌봄에 있다.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은 오래 보고, 자주 부딪치며, 서로를 챙기는 과정에서 쌓이는 '정(情)'이라는 끈끈한 관계의 밀도다. 여기서 정이란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군가 나와 함께 버텨줄 것이라는 깊은 정서적 확신을 뜻한다. 가족과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 내가 안전하게 소속되어 있다는 이 안도감이야말로 한국 문명이 지닌 강력한 자산이다. 서구가 절대적인 신의 품에서 안식을 찾았다면, 한국인은 서로의 체온이 닿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삶의 의미와 안전기지를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 애착 사회는 인간관계 그 자체에 걸리는 하중이 엄청나다. 서구 사회처럼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조건 없이 수용해 줄 '초월적 인정'의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에, 한국인은 오직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으려 한다. 부모의 기대, 자식의 성공, 친구와의 비교, 직장에서의 평가, 공동체 내의 평판 등 나를 둘러싼 모든 타인이 곧 나를 심판하고 구원하는 절대자의 역할을 대신한다. 신에 애착하는 서구인이 신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처럼, 인간에 애착하는 한국인은 인간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 타인의 감정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눈치, 타인 앞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체면, 그리고 끝없이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인정 투쟁이 삶을 지배하게 된다. 상대가 나의 기대와 애착에 부응하면 그것은 아름다운 '정'이 되지만, 그 무거운 기대가 배신당하고 좌절되는 순간 그것은 서운함과 분노로 변질되어 '홧병'과 깊은 '한(恨)'으로 몸과 마음에 응어리진다.
신에게 매달렸던 서구 문명에서 지옥이 '신의 부재'라면 철저히 인간에게 매달려 온 한국 사회에서 지옥은 곧 '관계의 단절'이다. 내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밀려나거나 타인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불행이나 심리적 위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 자체가 소멸해 버리는 끔찍한 '존재론적 추방'이다. 나를 비춰주고 인정해 줄 타인이 사라진 세상에서, 한국인은 더 이상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할 길을 잃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 애착 사회의 힘은 돌봄이지만, 그 돌봄이 사라질 때의 낙폭 역시 매우 크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라는 오독(誤讀)을 넘어서
한국과 서구의 차이를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관계 중심주의)'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널리 쓰이지만, 사실 이는 오독(誤讀)을 낳을 수 있다. 이 용어들이 결코 가치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은연중에 개인주의라는 단어에는 다소 진보적이고 세련된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다. 흔히 개인주의가 자유, 선택, 권리, 합리성 같은 긍정적인 언어와 결합하는 반면, 집단주의는 의존, 폐쇄성, 정실주의, 감정 과잉 같은 부정적인 언어와 결부되기 쉬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언어의 렌즈를 통과하는 순간, 서구는 자연스럽게 인류가 나아가야 할 '미래'가 되고 동아시아는 아직 벗어나지 못한 '과거'로 전락하고 만다. 자유롭게 계약하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개인은 근대적인 성숙한 인간으로 간주되는 반면, 가족과 공동체에 깊이 묶인 인간은 아직 덜 분화된 전근대적 존재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아시아의 고유한 관계 윤리는 독자적인 문명적 형식이 아니라, 서구식의 더 세련된 시스템으로 나아가기 전의 미완성 단계나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축소되고 만다.
이처럼 낡고 편향된 근대화의 언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보다 근본적인 심리적 밑바탕이 바로 '애착'이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문명을 추동한 원인이 아니라, 단지 애착의 대상이 달랐기에 파생된 표면적 '결과'에 불과하다. 이 현상 아래로 내려가 애착의 구조를 보지 못하면, 우리는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왜 한국인은 그토록 타인의 인정에 민감한가. 왜 관계가 끊어질 때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삶 전체의 붕괴처럼 느끼는가. 왜 여전히 효(孝)와 가족의 문제에 그토록 강렬하게 반응하는가. 이것은 제도가 낙후해서도, 시민 의식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초월적인 애착 대상(신)이 부재한 한국 사회에서 타인의 인정은 단순한 평판이 아니라 곧 존재의 확인이며, 가족은 불안한 세계를 견디게 하는 유일무이한 정서적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나오며 : "신께 맹세한다"와 "나 못 믿어?"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하나님께 기도로 용서를 빌라고 말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반면 한국 사회는 "몸과 마음을 닦으라", 즉 '수양(修養)'을 요구한다. 한국적 문법에서 잘못의 해법이 흔히 “수양하라”는 말로 귀결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관계와 품성의 흐트러짐으로 보기 때문이다. 초월적 심판자가 부재한 세계에서 도덕적 실패는 곧 관계망 속에서의 자리 상실을 의미하므로, 스스로 내면을 통제하고 사람 간의 도리를 바로잡는 것이 필수적이다.
반면 유대-기독교 문법에서 잘못은 신의 질서를 어긴 '죄(Sin)'이며, 고백과 기도는 궁극적 애착 대상인 신의 용서를 얻기 위한 필수적 행위이다. 이러한 차이는 진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서구인들은 "신께 맹세한다"고 말한다. 불완전한 인간들 사이의 약속을 보증하기 위해 절대자를 끌어오는 것이다. 물론 현대 서구 사회에서 이 '절대적 보증인'의 자리는 점차 촘촘한 '법'과 '철저한 계약서'가 대신하고 있지만, 인간 너머의 객관적 기준에 기대어 불안을 통제하려는 심리적 관성은 여전히 서구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같은 상황에서 "나 못 믿어?"라며 서운함부터 내비친다. 이 짧고 강렬한 항변에는 한국 문명의 핵심이 담겨 있다. 나의 진심을 보증하는 것은 저 너머의 신이나 차가운 계약서가 아니라, 당신과 나 사이의 축적된 시간과 '정(情)'이라는 끈끈한 인간적 결속이다. 그 결속을 의심받는 일은 단순한 사실 확인의 차원을 넘어,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가장 중요한 애착 대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맹렬한 '인간 애착'의 갈망은 고도의 자본주의화 속에서도 한국 사회의 기저에 짙게 깔려 있다.
'신 애착'과 '인간 애착', 이 두 갈래의 상이한 지향이야말로 두 문명의 거대한 지형도를 그려낸 가장 깊고 근원적인 심리적 단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