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국가의 몰락이 경고하는 이스라엘의 미래

무력으로 세운 요새국가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by 김욱

이스라엘과 미국이 합작해 이란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확전의 늪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국제사회 앞에서 늘 ‘평화’와 ‘방어권’을 내세우지만, 현실의 궤적은 정반대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번 작전은 수개월 전부터 워싱턴과 조율됐고, 발동 시점 또한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직전까지도 미·이란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평화를 말하면서 협상 테이블을 뒤엎고, 기습적인 폭격과 암살을 감행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질서 속에서 탄생한 국가다. 그들은 이를 ‘조상의 땅 회복’이라고 주장하지만, 레반트 지역은 애초에 하나의 단일 민족이나 단일 종교의 전유물이었던 적이 없다. 고대부터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이 중첩된 역사와 기억을 안고 살아온 공간이었다. 예루살렘에 각 종교의 성지가 함께 밀집해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다. 수천 년 전의 세계에 오늘날과 같은 민족국가 개념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런 점에서 보면, 원래 그 땅에 살아온 아랍 주민들에게 이스라엘은 서구 세력의 또 다른 침투와 정착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레반트를 향한 서구의 진출은 이스라엘이 처음이 아니다. 그보다 앞서 11세기 말부터 13세기 말까지 약 200년에 걸쳐 십자군이 있었다. 겉으로는 ‘성지 예루살렘 탈환’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실체는 종교적 열광과 정치적 팽창 욕망, 상업적 이해관계가 뒤엉킨 침략 전쟁이었다.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의 참상은 잘 알려져 있다. 십자군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를 학살했다. “무릎까지 피가 찼다”는 당대 기록은 다소 과장된 수사일지라도, 그 학살의 규모와 충격을 짐작케 한다.


이 학살과 정복의 결과로 십자군은 현재의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 일대에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네 개의 십자군 국가, 이른바 ‘아웃르메르(Outremer)’를 세웠다. 그 국가들은 태생부터 취약했다. 무력으로 영토를 점령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곳은 어디까지나 적대적인 환경 한가운데 세워진 인공적 전초기지였다. 지배층인 소수의 라틴계 기사와 귀족은 현지 주민과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결합하지 못했다. 십자군 국가는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이슬람 세계 속에 박힌 외부 세력의 요새에 가까웠다.


더 큰 문제는 생존 구조 자체가 외부 의존적이었다는 데 있다. 십자군 국가는 유럽 본토로부터 병력과 물자, 자금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새로운 기사들의 유입과 교황권과 유럽 군주들의 정치적 관심이 끊기면 존립이 위태로웠다. 십자군 국가는 정복에는 성공했지만 자립에는 실패했다. 주변 이슬람 세력의 분열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무너질 세력이었다.


실제로 그 약점은 오래가지 않아 드러났다. 살라딘과 같은 지도자 아래 이슬람 세력이 결집하자 십자군 국가는 급속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1187년 하틴 전투는 그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십자군의 주력은 궤멸했고, 예루살렘은 다시 이슬람 세력의 손에 넘어갔다. 이후에도 해안 거점 몇 곳을 중심으로 명맥은 이어 갔지만, 이미 흐름은 되돌릴 수 없었다. 유럽의 열기는 식어 갔고, 내부 분열은 심화됐으며, 현지에서의 정당성도 끝내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1291년 아크레 함락을 끝으로 십자군 국가들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200년 가까이 버티기는 했지만, 그 생존은 어디까지나 외부 후원과 지역 분열에 기대어 연장된 것이었을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의 이스라엘을 생각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 국가들을 향해 압도적인 첨단 군사력을 과시하고, 안보를 이유로 선제공격과 보복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 위세의 이면에는 깊은 지정학적 고립이 놓여 있다.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강하지만, 지역 전체와 화해하지 못한 채 적대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불안정한 요새국가다. 그 불안정성을 덮어 온 것은 미국의 막대한 군사 원조와 외교적 비호였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그 패권은 예전 같지 않다. 국내 정치의 피로, 재정 부담, 세계 전략의 중심을 중동에서 아시아로 옮기려는 흐름이 뚜렷해질수록 중동에 대한 미국의 집중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미국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이스라엘을 떠받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좁은 국토, 제한된 인구, 지역 전체의 적대적 여론 속에서 이스라엘이 홀로 지금의 지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유럽의 지원이 식자 곧바로 고립무원의 처지로 내몰렸던 십자군 국가의 전철이 이스라엘의 운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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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중국이라는 더 큰 변수가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서서히 영향력을 줄이는 동안, 중국은 자본과 인프라, 에너지 거래와 외교적 중재를 통해 이 지역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미국처럼 군사 개입으로 질서를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다. 투자와 시장, 공급망과 항만, 장기 계약을 통해 지역 국가들을 자기 네트워크 안으로 묶어 두려고 한다.


중국이 곧바로 이스라엘의 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이 아랍·이슬람 세계와의 경제적 결속을 강화할수록, 이스라엘의 군사적 자유도는 지금보다 훨씬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아랍 지역을 마음껏 폭격하고, 팔레스타인을 사실상 식민지 취급하며, 주변의 분노를 무시하는 방식은 이제 불가능해진다. 미국이 물러난 자리에 중국이 들어서고, 그 중국이 아랍 국가들의 경제적 이해와 결합하게 되면, 이스라엘이 누려 온 ‘압도적 무력 우위’라는 생존 공식도 더는 어렵다.


역사의 교훈은 냉혹하다. 외부 패권의 의지와 주변 세계의 분열이 동시에 유지될 때만 전초기지는 버틸 수 있다. 둘 중 하나만 흔들려도 요새국가 이스라엘은 순식간에 임시 구조물로 드러난다. 십자군 국가는 그 사실을 레반트의 역사에 피로 새겨 넣었다. 오늘의 이스라엘이 힘만으로 질서를 강제하고, 공존보다 지배를 택하며, 평화의 가능성을 스스로 걷어찬다면, 언젠가 ‘영원한 국가’가 아니라 ‘철수해야 할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어쩌면 십자군 국가보다 더 빠르고 더 참혹한 방식으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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