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 존재하던 기분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그중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 위에는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가 있다.
생존과 안전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디에 속해 있고 싶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말하자면 소속감은 살아남기 위한 감정은 아니지만, 살아가는 느낌을 주는 감정이다.
나는 그 말을 요즘 들어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복무를 하던 시절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으로 출근하고
익숙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씨”라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루틴일지 몰라도
지금 돌아보면, 그건 분명 나를 살게 해주는 구조였다.
그 공간 속에서 나는 누군가의 일부였고,
매일 나를 필요로 해주는 존재들이 있었으며
내가 누군가에게 “오늘도 당연히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말 없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
복무를 마치고, 새로운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 것도 분명 맞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소속감을 완전히 잃은 느낌도 함께 경험하고 있다.
사이버대학이라는 특성상 출석도 없고,
사람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고,
같은 꿈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
나는 지금 누군가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음에도
그 누구와도 나란히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채
혼자 강의를 보고, 과제를 내고, 조용히 지나간다.
게다가 최근엔 허리디스크 증상까지 겹쳤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날이 늘어나면서,
단순한 아르바이트나 짧은 외부 활동조차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나아질 거야.
” “누군가와 연결돼 있으면 외롭지 않아.”
“일을 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어떤 것도 쉽게 할 수 없는 상태다.
몸도 마음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내가 사회라는 이름의 바깥에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만든다.
요즘은 이상하게, 알람 소리조차 그리워진다.
복무를 하던 시절, 아침마다 울리는 알람을 끄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하던 그 시간들이 그땐 단지 반복되는 일상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마저도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었다’는 증거였던 것 같다.
출근길 버스를 타고 비슷한 시간에
같은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나는 누군가의 하루 속 톱니바퀴 같은 존재로 작동되고 있다는 묘한 안정감이 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사회라는 구조 속에 ‘기능하는 한 사람’이었다는 걸.
그리고 하나 더 생각나는 게 있다.
출근길에 늘 같은 버스를 타던 얼굴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
같은 정류장에서 늘 비슷한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중 누가 안 보이는 날엔
괜히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오늘은 늦잠 잤나?’ ‘다른 버스 탔나?’ ‘일찍 나갔나?’
그 짧은 생각 하나가, 그 사람도 나도 같은 리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지금은 그런 순간조차 그립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던, 그 익숙한 거리감 속의 연결감이 나를 ‘어딘가에 속해 있다’고 믿게 해줬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더 자주,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소속감이란 건 결국, 누군가에게 '내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지는 경험이라는 걸.
그 감정은 그 안에 있을 땐 사실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냥 내가 출근하던 곳”, “그냥 내가 인사하던 사람들.”
하지만 막상 그것이 사라지면
그 당연했던 것들이 내 마음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텅 빈 것 같은 기분, 이상하게 허전한 하루의 시작과 끝.
그게 바로 소속감이 사라졌다는 증거였다.
지금 나는 그 감정을 다시 만들기 위해 천천히 움직이는 중이다.
누구의 하루에 작게라도 섞이려 하고,
나 스스로의 하루를 기억해주려 하고,
이렇게 글을 써보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 감정을
누군가와 조금이라도 나누어보려고 한다.
소속감이란 건, 그 안에 있을 땐 잘 모르다가,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존재를 깨닫게 되는 감정.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오늘도 이렇게 한 줄을 쓴다.
“소속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바꿀 필요는 없다.
진정한 소속이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 브레네 브라운
출처: 『진정한 소속을 찾아서 (Braving the Wilder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