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혼자 갈 걸 그랬어

by 청초마녀

갈까 말까 망설일 때는 가고,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하고 보라는 것의 대표 주자, 여행. 숙박, 맛집을 검색하느라 오랜 시간 공들이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까닭에 꼭 하고 싶은 한두 가지만 마음에 새겨두고 훌쩍 떠나는 편이지만, 천 번을 흔들리게 만드는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이들과 셋이 가느냐, 4인 완전체로 가느냐. 일단 아이들만 데리고 여행을 떠나면 '인원 추가 비용'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커피숍에 한 시간을 머무르든 두 시간을 머무르든 내가 충전될 때까지 앉아있으면 그만인데, 성인 남성의 시간까지 고려하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말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도, 그게 어디 그렇게 되나. 알고 보면 취향 확고한 욕망 아저씨인걸.



오전 12시를 넘긴 시간. 이제 출발해도 다소 늦은 감이 있는데,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해진바 없이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바라보려니 애가 타고 까칠한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남편에게, 당신이랑 여행 떠나면 '일 인분의 하루'를 책임져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럽다고. 아이들과 가면 내 욕구대로 행동하며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지만, 당신이 있으면 먹고 자고 선택하는 게 일이 되어버린다고. 그렇게 남편의 단독 외출을 종용하며 진실 반 짜증 반을 섞어 입 밖으로 꺼내놓았을 때, 차라리 밖에 있다가 들어오지 않는 편이 좋았겠다, 남자 셋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혼자 있는 게 나았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 근본 없는 '화'로 인해 아빠와 놀기만을 바라는 아이들을 강제 분리한 셈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내 집인 듯 내 집 아닌 곳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남편은 '그럼 오늘은 내 시간 가질 게'라는 말을 남기고 책과 노트북을 챙겨 조용히 퇴장했다. 그리고 곧바로 짐을 싸기 시작한 나는 허망해하는 아이들 눈치를 보며, 이런 식으로 떠나면 좋겠니? 도대체 뭐가 못마땅한 거야?, 라고 묻고 따지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는 걸 수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 들어와. 같이 가자." 나의 합체 선언 소식에 아이들은 환호했고, 나 역시 고민과 머뭇거림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여행 준비는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짐을 나르고, 집을 치우고. 운전을 하고, 검색을 맡고. 말하지 않아도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분업 시스템 덕분에 어느덧 우리는 화해의 물결을 타고 있었다.



"자기야. 미안해"



남편의 오른팔을 끌어안고 콧소리 킁킁거리며 확실한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는 나에게 둘째 녀석은 "엄마는 미안한 게 있으면 사과를 잘 한다니까."라는 말로 팩트 공습을 해댔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내심 우쭐해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 해서 끙끙 앓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것도 능력이라며. 덕분에 업데이트된 웃음을 담보로 남편은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놓았고, 각자 다른 이유로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렇게 두어 시간 반만에 첫 목적지인 삼도수군통제사에 도착해 건물 사이사이를 거닐었을 땐 같이 오길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세병관 앞에서 아이에게 상체를 숙여보라고 한 뒤, 뜀틀 뛰기? 아니, 아이 몸을 뛰는 아빠가 거기에 있어서. 번갈아 윷점을 보며 일희일비할 수 있는 상대가 거기에 있어서.



무엇보다 남편이 동행해서 좋은 건 술을 마실 수 있어서가 아닌가, 배고픔 끝에 마주한 스키다시에 환호하며 소주잔에 투명한 액체를 따를 때 다시금 생각했다. 취할 수 있어서 좋다고. 그래서인지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심한 말과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을 다시 언급하거나 복기하지 않는 게 애써 찾은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는데, 술 마시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내가 했던 말을 사과하고, 상처받았을 남편의 마음에도 알랑방귀를 두둑이 발라주었다. "자기랑 오니까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구나. 자기랑 오니까 너~~~무 좋다." 뭐 아이들과 식사한다 한들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할 이유가 있으랴만, 적어도 '회'는 어려운 선택임이 분명했다. 술과 수다가 곁들여지기 전까진 무슨 맛인지 모를 음식도 분명 있으니까.



여기까진 좋았다. 함께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같이 여행하기 적당한 최적의 시간이 3박 4일에서 1박2일로 짧아지는 게 아쉽지만, 서로에 대한 호기심은 평소 술자리만으로도 적절히 유지되는 터라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로 여행지에서의 여백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제안했다. 너는 네가 원하는 걸 즐기라고, 나는 커피숍 한 곳과 멍게비빔밥이 목적이었으니 애초에 목적한 바를 이루겠다고. 그렇게 통영중앙시장에서 헤어졌는데, 태국 치앙마이 느낌에 반해 찾아간 그곳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우선 읽고 있는 책 저자에게, 당신이 발췌한 문장과 당신이 쓴 글에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라고 따지고 싶었고, 한 모금 마시면 사라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나의 만족을 이끌어내기에 양이 너무 적었다.



혼자라면, 더 나은 경험으로 기대에 못 미친 시간의 만족도를 평균치로 끌어올릴 텐데, 합체하기로 한 예정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쩌다 남편의 빠른 도착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나만의 시간을 벌어주려는 남자와 그럴 필요 없다고 사양하는 여자라니! 하지만 정작 내 욕구를 기반으로 한 추천 경로가 서점으로 안내하고, 해 떠 있는 시간엔 최대한 도시 여행자로서의 직무를 다 해야 한다고 느낄 때, "이제 (집에) 가자."라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그래! 내가 불편한 게 이런 거였어. 그럴까? 그러지 말까? 나조차 내 마음을 모르겠는데 더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거 말이야' 하는 목소리와 함께, 역시나 혼자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파고들었다. 이대로 끝내기는 싫은데….



여행을 더 충만하게 누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에서인지, 기대했던 커피숍 투어를 팀 사정으로 취소할 수밖에 없어서였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도착해서도, 즐겁고 행복한 기분보다는 무언가 무거운 마음이 납작 엎드려 있었다. '피로'로 위장한 '이것 참 마음에 안 드네'의 상태. 그래서 밖에서 식사하고 들어가자는 것도 마다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게 맞나 보다. 최대한 늦게 당도했으면 하는 이들이 언제 들이닥칠까 신경 쓰면서 밥 먹다가 얹힌 데 또 얹히고 말았으니. 역시, 혼자이길 바라는 처음 그 느낌이 맞았던 건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버려 두는 게 좋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