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실리테이터의 자리

중심에 서지 않는 역할

by 차미레
퍼실리테이터의 자리는
앞도, 뒤도, 가운데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말과 말 사이에 생기는 틈.
그 보이지 않는 자리를
조용히 지키는 역할이다.



#자리를 착각하기 쉬운 이유


퍼실리테이터는 종종

자신의 자리를 오해한다.


말을 가장 많이 해야 할 것 같고,

흐름을 정리해야 책임을 다한 것 같고,

중앙에 서 있어야

과정이 안전해 보인다고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고, 설명을 더하고,

흐름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으로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중심은

참여자를 향하지 않는다.

퍼실리테이터를 향한다.



#퍼실리테이터의 자리는 중심이 아니다


퍼실리테이터의 자리는

시선을 모으는 곳이 아니라

시선이 흩어지도록 돕는 곳이다.


말이 나에게 향하는 순간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로 이동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위치다.


그래서 퍼실리테이터는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서지 않는다.

대신, 흐름이 생길 수 있는 자리를

조금 비워둔다.


그 자리는

누군가 말하기 시작하기 직전,

침묵이 생각으로 변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자리를 지키기 가장 어려운 순간


퍼실리테이터의 자리를 지키기

가장 어려운 순간은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때다.


침묵이 길어질 때,

논의가 느려질 때,

누군가

“그래서 정답이 뭐죠?”라고 묻는 순간.


그때 중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설명하고 싶고, 정리해 주고 싶고,

흐름을 대신 이끌고 싶어진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퍼실리테이터의 자리가

가장 분명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자리를 지키면 흐름이 바뀐다


퍼실리테이터가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때,

참여자는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말이 ‘퍼실리테이터에게’가 아니라

‘서로에게’ 향하고,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고를 이어가기 위해 등장한다.


그때 비로소

배움은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생겨난다.


퍼실리테이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상태다.

자리를 지킨 것이다.



#퍼실리테이터의 자리는 태도다


퍼실리테이터의 자리는

기술로 설명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그건 언제 나설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물러설 수 있는가의 태도에 가깝다.


개입을 줄이고,

질문을 아끼고,

침묵을 견디고,

마무리를 넘겨준 끝에

남는 하나의 감각.


“이제 이 흐름은

내가 없어도 된다.”


퍼실리테이터는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 때

가장 분명한 역할이 된다.


오늘도 나는

가운데로 들어가기보다

조금 옆으로 물러선다.


그 자리에

사람과 배움이

스스로 만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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