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안고 서 있는 법

흐름을 믿지 못하는 순간에도

by 차미레
퍼실리테이터의 불안은
사라져야 할 신호가 아니라
끝까지 함께 서 있어야 할 동반자다.



#불안은 없어지지 않는다


퍼실리테이션을 오래 하면

불안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타이밍을 알고, 질문을 아끼고,

침묵을 견디는 법을 익히면

언젠가는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경험이 쌓일수록 불안은 더 또렷해졌다.


‘지금 너무 놓아둔 건 아닐까?’

‘개입해야 할 타이밍을 지나친 건 아닐까?’

‘이 흐름, 정말 안전한 걸까?’


불안은 미숙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과정을 가볍게 대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이 시간을 책임지고 있다는 감각,

사람과 배움 앞에 서 있다는 자각이

불안을 데리고 온다.


그래서 퍼실리테이터에게 중요한 건

불안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불안을 안고도

자리를 지키는 힘이다.



#불안이 커질수록 유혹도 커진다


불안해질수록

퍼실리테이터는 행동하고 싶어진다.


질문을 하나 더 던지고,

설명을 보태고,

흐름을 정리해 주고 싶어진다.


무언가를 하면

내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개입은 종종

흐름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선택이 된다.


그 순간 퍼실리테이터는

과정을 돕는 사람이 아니라

과정을 통제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불안을 견디지 못한 개입은

참여자의 사고를 앞지르고,

배움이 생길 시간을 빼앗는다.



#불안은 기준이 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불안이 커지는 순간이

대개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사실이다.


침묵이 길어질 때,

논의가 정리되지 않은 채 머물 때,

누군가 말하려다 멈출 때.


바로 그 지점에서

퍼실리테이터의 불안은 신호가 된다.


‘아, 지금 뭔가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아직 말이 되지 않았지만, 곧 나올지도 모르겠구나.’


이때 불안을 없애려 하지 않고

그 불안을 기준 삼아

한 박자 더 기다릴 수 있다면,

퍼실리테이터는 흐름을 망치지 않는다.


불안은 위험 신호가 아니라

과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 때가 많다.



#불안을 안고 서 있는 자리


불안을 안고 서 있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관찰하고,

귀 기울이고,

지금 이 흐름이

누구의 것인지 계속 확인하는 상태다.


이 말은 나를 향하고 있는가, 서로를 향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흐름을 여는가, 불안을 덮는가

지금 필요한 건 개입인가, 대기인가


이 질문들을

속으로만 반복하며

겉으로는 한 발 물러서 있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퍼실리테이터의 전문성이 가장 깊게 작동하는 지점이다.



#불안과 함께 남는 것


퍼실리테이션이 끝난 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거의 없다.


‘조금 더 기다릴 걸 그랬나.’

‘아니면 한 마디 덧붙였어야 했나.’


하지만 그런 생각과 함께

이런 장면이 남아 있다면

그날의 퍼실리테이션은 충분하다.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하던 순간,

정답은 없었지만 생각이 이어지던 시간,

누군가 자기 언어로 정리해 가던 표정.


퍼실리테이터는

불안을 안고 서 있었을 뿐이지만,

그 불안 덕분에

흐름은 끝까지 참여자의 것이었다.


불안을 없애려 애쓰지 않기로 한다.

대신 그 불안을 데리고

조금 더 오래 그 자리에 서 본다.


퍼실리테이터의 성장은

확신이 늘어나는 과정이 아니라

불안과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불안을 안고,

흐름 옆에 조용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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