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변의 발화 Oct 20. 2022

결혼적령기 사랑의 발아조건

배우자 선택의 기준과 그에 따르는 책임이란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오래된 친구가 있습니다. 학창시절, 반이 갈라진 우리는 쉬는 시간 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을 때에는 5분씩 겹치는 쉬는 시간에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친구는 20 중후반이 되면서부터  결혼을 하고 싶어했는데요, 제가 소개팅을 해주기도 하고,  연애도  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기도 했지요. 29살이 되었을  그녀는 결심한 듯이 말했습니다, ‘ 이제 정말 열심히 결혼할 남자 찾을거야’, 라고. 제가 듣기엔 매년 하던 다짐을  다시 했던 것이지만, 결의에  눈빛으로 그렇게 공표하고 나서 30살이 지나니, 그녀는 이제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말했습니다. 차라리 서른이 넘으니 이제 그냥 서른 전에 결혼하는  포기했으니까, 그래서 차라리 괜찮아, 라며 ‘차라리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듯 바람이 푸시식 빠지는  같은 웃음을 보이면서.  이후로도 성당, 교회, 결혼정보회사를 비롯한 여러가지 루트로 그녀의 짝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소개팅을 해서 몇 번 만나는 남자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백을 하지 않아서 고민이라던 그녀는 저에게 너라면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봤고 저는 ‘우리 어떤 사이야?’라는, 아주 전형적인 질문을 하라고 조언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내적 실랑이 끝에 그녀는 아무래도 어떤 사이냐고 물어보았던 것 같고 곧 그 사람과 연인이 되었습니다. 연애를 한지 몇 달 지나, 이국적인 식당에서 만나 가리비 구이를 앞에 두고 그녀는 저에게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너도 꼭 너한테 다 져주는 남자 만나!”, 라고요. 그리곤 덧붙였습니다. “나는 무조건 착한 것만 봤어, 남자는 자고로 나한테 다 져주는 사람 만나는 게 최고인 것 같아. 너도 다음에 꼭 무조건 너한테 다 지는 남자 만나!” 그렇게 그녀는 한껏 들뜬 듯한 목소리로 저에게 조언을 해주었는데, 저는 쉽사리 마음에 없는 “응!”을 못하는 성격이라는 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길게 대답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실 나는, 나한테 지는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자기 고집 있는 사람이 좋아. 왜냐면… “이라면서요, 그냥 “그러게!” 라고 넘어가는 게 우정을 위해서는 더 좋았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아니야, 그래도 너에게 꼭 다 져주는 사람이 있을거야! 포기하지마!” 라고 몇번씩이나 이야기해놓고, 와인을 마시며, 휴대폰을 확인해 남자의 연락을 기다리며 그녀는 저에게 연거푸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져주는 사람’이 그렇게 흥미로운 선택지가 아니라는 걸, 친구는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아주 아주 중요한 조건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조금은 위로해주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모든 것에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일장일단’이라는 단어는 그 친구가 자주 쓰는 단어였어요!) 착한 것의 단점은 우유부단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또는 커리어적인 욕심이 없거나 자기 것을 잘 챙기지 못할까봐, 특히 남편 감으로는 성실함, 책임감과 함께 조금은 이기적인 모습이 있었으면 해서, 저에게는 무조건 자기 의견 없이 착한 사람보다는 차라리 저와 대립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2년 정도를 그 남자와 연애하면서, 친구의 최대 고민은 상대방이 결혼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소개팅도 하고 선도 보고 짧은 연애도 하고 있었고요.



 일반적으로 남자가 결혼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이유는, 1. 그 여자와 결혼할 마음이 별로 없어서, 2. 어떤 의미로든 결혼할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라고 생각합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남자는 1.보다는 2.의 경우였던 것 같아요. 부양해야 할 가족과, 현재 안정되지 않은 직장, 당장 살아야 할 지역도 결정하지 못한 상황. 친구는 결혼을 기대하며 시작한 연애에서, 연애만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도 고집이 세거나 기가 센 사람은 아니었기에, 결혼을 절실히 원하는 친구가 다 져주는 남자의 매력을 좇기보다는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어 친구와 바로 결혼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준비가 안 되어있더라도 차라리 강하게 친구를 끌어가며 결혼까지 골인할 사람을 찾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먼저 결혼얘기를 꺼내보면 어떻겠냐는 제 조언에, 사귈 때도 본인이 먼저 말을 꺼냈기에 결혼까지 그렇고 싶지 않다고 딱 잘라 말하더라고요.



 친구와 연락이 끊기기 전에 만났을 때, 저는 결혼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 남자친구는 결혼얘기를 안 꺼낸다고 또 신경질을 내는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남자친구 분 연봉이랑, 서로 모은 돈이든 지원받는 돈이든 합쳐서 예산이라든가, 이런 건 생각해봤냐고 물어보았을 때, 친구는 황당해하면서 "서로 연봉을 공개해?"라고 반문했습니다. 연애할 때야 큰 상관이 없지만, 둘다 월급을 받는 데 앞으로의 미래 계획에서 경제적인 부분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제가 너무 속물로 느껴졌는지, 그 이후로 데면데면하게 지내다가 결국 극적인 상황(결혼식 며칠 전)에서 드라마틱하게 연락이 끊겨버렸습니다. 결혼이라는 게 정말 하고 싶다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던 친구를 생각하면 결혼이라는 것의 일장일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을 해서 배우자와 함께 살아보니, 결혼을 선택해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고, 또 배우자를 선택할 때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100퍼센트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장점으로 단점을 모두 커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선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져주는 것'의 의미가 뭔지, 지금와서 생각하면 데이트 주도권을 양보한다는 것인지, 배려를 한다는 것인지, 말 그대로 싸울 때마다 절대 반박하지 않고 여자친구 말이 다 맞다,라는 입장인건지 새삼 궁금하지만 아마 답을 알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져주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선택했다면 그것도 중요한 기준에 따라서 내린 본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져준다'는 것이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눈치를 본다는 걸 의미한다면 내가 먼저 결혼 얘기를 먼저 꺼내고, 경제력 얘기를 표면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은 감수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를 통해 세상에 말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