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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변의 발화 Dec 13. 2022

가장 좋아한 건 아닌 걸로 결론 낸, 여자친구 있는 남

절대 연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던 사람

 저 역시 맘 아픈 짝사랑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변호사가 되기 훨씬 전 이야기 이긴한데요, 그것도 바보 같이 꽤나 오래. 결국 정확히 "썸"이라고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애매한 사이로만 길게 지내서 연애로 이어지지도 못했지만, 멋져보이는 그 사람을 한참 혼자 좋아했었습니다. 연락도 자주하고, 통화도 하고 해서, 여자친구가 당연히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어느 날, 여자친구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냈습니다. 공적(?)으로 만난 사이이긴 해도, 집에 태워다준 게 몇 번이며 나한테 이것저것 간식을 사다주고 커피를 사다준 게 몇 번인데, 나 혼자 완전히 착각을 한 거였나? 이미 좋아하게 된 이후에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솔직히 정말 어이가 없고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같으면 뭐 그런 인간이 다 있냐! 하고 지나칠 일을, 그 때는 왜 그랬을까하며 깊게 생각에 잠기곤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한참이 지나 일 때문에 다시 마주친 그는 집에 태워다주겠다고 하며 자기가 여자친구와 자주 싸운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물론 저 때문은 아니었지만(일단 나는 그정도로 위협적인 상대도 아니었고..).



 차는 얻어타지 않았지만 그 말이 한번씩 마음을 맴돌던 어느 날, 모처럼 연락이 와서 또 근황얘기를 하며 그 사람은 자기가 이제는 여자친구와 완전히 헤어진 것 같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같이 맥주라도 한 잔 하자는 그 말에 저는 마음이 풀려서 또 방심을 했던 것 같아요. 같이 밥도 먹으러 다니고, 드라이브도 가고 산책도 하고. 나름의 추억을 쌓아가게 되었습니다. 소개팅으로 만났더라면 "우리 지금 무슨 사이야?"라고 했을 법도 한데,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매듭을 만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만나는 것이 세련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름대로 그렇게 잘 지내던 어느 날, 그는 너무너무 기분이 좋다면서 또 여자친구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미안함이나 불편함도 없이, 여자친구와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저는 거기에 대고 그냥 축하한다, 잘됐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같으면 차라리 “아 뭐야? 여자친구 있어? 난 여자친구 있는 남사친은 안만나!” 해버리면 될 것을.



 사실 저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적은 없습니다. 대부분 소개팅으로 만나게 되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 친구나 일로 만난 사이에서는 오히려 딱 보고 이성의 감정이 들면 그렇게 살짝 연애 쪽으로 진전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친구 또는 업무로 만난 사이는 그대로 이성의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업무로 만났을 때 부터 이성으로 정말 이상형에 가깝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어리고 능력있고 예쁜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애매한 사이로 계속 지내면서도, 그 사람에게 계속 끌려가듯이 집 앞에 왔는데 맥주 한잔 하자는 그를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친구처럼 애매한 사이로만 지내던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고 그 사업이 잘 되지 않아 또 여자친구와 잦은 갈등이 생겼고(이쯤 되면 저도 제 스스로 친구로서 이 사람을 잃기 싫은 건지, 아직도 이성으로 좋아하는 건지를 모르겠는 상황.. 결국 연애고민이나 들어주는 거라니..) 결국 사업은 완전히 망해버렸고 그 여자친구와는 정말 끝끝내 정리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건 잠시였는데, 끝까지 "사귀자"는 말을 안하더군요. 그저 다시 여자친구가 있던 때처럼 잠수..



 아직 기억나는 게, 엄청나게 폐인이 되었다가 다시 오랜만에 본 그는 저에게 커피를 마시다말고 "내가 사귀자고 하면 사귈거냐"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당연히 저도 자존심이 상해 "아니! 사귀자고 할거면 그냥 그렇게 말해. 여태까지 똑바로 표현한 적도 한번 없으면서 운 띄우고 그렇게 내 눈치보는 건 좀 아니지."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이어갔고 그렇게 또 헤어졌습니다. 제가 소개팅이라도 하면 계속 신경쓰며 전화를 걸던 그, 연애하면, 결혼하면 이라며 미래지향적인 얘기를 해보던 그, 저를 떠보던 그.. 그 정도가 그 사람의 마음인데 그때는 갖지 못하는 마음이 왜 이렇게 안타까웠을까요? 어느 순간 그는 당연하듯이 전화를 하면 받지도 않고, 카톡도 읽지도 않고, 잠수를 타다가 나타나기도 하고 했습니다. 제가 연락을 받지 않으면 중간에 함께 아는 지인에게 연락을 하거나, 저에게 연락해달라고 하거나, 맘 약한 저를 알고 아예 집 앞에 와서 계속 기다리거나 했고, 갑자기 좋은 식당에 데려가거나 자기의 친구들, 가족들을 소개해주기도 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무엇보다 제가 너무 좋아했으니까 그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만나러 나갔던 것 같습니다. 계속 그렇게 지내다가, 한번은 그사람을 보러 큰 마음을 먹고 멀리까지 간 적이 있는데, 그는 저와 미리 약속을 했었는데도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바쁘다는 이유로 나오지 않더라고요. 정말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다시 서울로 오려는데 수많은 커플들, 대학생들, 부부들.. 많은 남녀를 보고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요.



 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나서는 연락을 뚝 끊었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을 통해 연락이 오고 집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해도, 그냥 아무런 답도 없는 것도 저의 답이었습니다. 그는 뒤늦게, 그때 사귀자고 하면 사귈거냐, 라는 게 자기의 표현이었다, 본인이 상황이 너무 안좋아서 그런거였다, 사실 사귀자는 고백을 용기내서 한 거였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저는 이미 마음이 완전히 떠서 더 이상 이런 불건강한 이상한 관계를 이어나가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끝을 내고 나서,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그의 공통 지인들은 한번씩 그의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주기도 합니다. 저는 그 사람을 만나며, "상대방이 카톡을 나에게 보내지 않으면 카톡이 안오는 구나"라는 단순한 사실을 새삼 여실히 깨달을 정도로 그 사람의 연락을 너무너무나 기다렸었는데요(잦은 잠수와 파토때문이기도 함.. 보러온다고 했다가 안온 적도...), 최근에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더라고요. 결혼하니 행복하냐고. 그래서 정말 행복하다고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란다고 진심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알겠다, 참고하겠다고 시덥지않게 대화를 끝내더군요.



 한때는 너무너무 애가 타도록 좋아해야만 진짜 사랑이려나 했었습니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다정한 사랑이 저에게 잘 맞는 사랑인걸 그때는 몰랐어요. 갖지 못해서 갖고 싶은 줄 알았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그게 착각이고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 자신과 상대를 잘 알아서, 가졌을 때 행복한 것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길인 것 같아요. (지금도 한번씩 그 사람의 안부가 건너건너 들려오는데, 계속, 쭉 이상하고 회피형인 사람으로 저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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