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이디어를 빠르게 적용해 시장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최고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관료주의와 위계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경직되고 복잡한 조직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복잡성이란 매우 은밀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성은 많은 기업의 경영환경에서 일어나고 있다. 보스턴 컨설팅은 2014년에 미국 및 유럽 100여 개의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복잡성 현황을 관찰한 후 결과를 발표하였다. 업무절차, 조계층, 업무조율 기구, 보고승인 단계, 성과측정 방법들을 기반으로 개발한 복잡성 지수 기준으로 기업의 복잡성은 해마다 6.7%씩 증가하고 5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35배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 기업의 지나친 위계질서와 관료주의는 복잡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문제는 이런 한국의 조직문화가 고착화되어 복잡한 업무방식을 리더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 익숙한 리더들의 복잡한 행동양식을 부하직원은 그대로 보고 배우면서 성장하면서 일하는 방식을 습관화시킨다. 복잡성에 대한 보다 더 근원적인 원인을 리더의 심리에서 찾아보면 리더들이 가진 불안에서 기인한다. 안전하고 싶은 욕구, 통제하고 싶은 욕구, 인정에 대한 욕구 등은 인간의 갖는 보편적 욕망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일을 계획할 때 안전하고 확실하게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계획한 일에 대한 자신이 통제한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 한다. 맡은 일을 안전하게 하고 싶고, 실패에 책임지고 싶지 않은 안전 욕망과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제와 권력의 욕구가 동시에 발현되면서 회의시간이나 횟수. 보고서, 결재 등이 증가한다. 일일이 자신이 통제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심리가 발동한다. 그래서 리더는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직원들에게 권한위임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 리더가 직원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매번 감시하고 모든 결정을 본인이 내려야 하고 일일이 보고받아야 한다는 안전과 통제의 상충된 욕망이 작용한다.
안전과 통제의 요구의 심리적 원인은 리더가 일을 계획하고 과정자체가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인지적 오류 때문이다. 많은 리더는 활동을 계획하고 문제와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열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 자체가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성과를 내기보다는 일을 준비하는 기획 단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연말에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많은 회의와 수백 번의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는 일들이 반복되지만 실제로 사업계획대로 일이 처리되는가에 대해 의문은 남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리더들의 안전감을 느낀다. 한편.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감을 느끼지 않으면 부지런히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동안 불안과 두려움은 경영기법으로 중요하게 활용된 심리 기제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신뢰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 감시하고 절차를 위반할 때 처벌하지 않으면 조직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을 조직을 거대한 기계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부속품으로 바라봤으면 이러한 경영기법에 의혹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19.
불확실한 상황에서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조직에서는 실수는 불가피하다. 실수를 인정했다는 이유로 질책한다면 그러한 처벌이 유발하는 공포가 새로운 시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많은 리더들은 직원들에게 전적으로 일을 맡기면 실수가 늘어나거나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걱정하다. 그래서 자신이 모든 업무와 결정사항을 통제해야 한다는 욕구가 생긴다. 두려움과 불신의 풍토에서는 실험도 혁신도 배움도 실천하기가 어렵다. 통제요구는 인지적 종결요구(Need for cognitive Closure)라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모호함을 피하고 단순화하여 획일화된 정답을 내고자 하는 욕구를 뜻한다. 대량 정보 속에 인지적 과부하가 발생하고 이를 과부하를 해소하기 위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어떤 주제나 쟁점 또는 사안에 확고하고 의식 없는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직원이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고를 할 때 중간에 잘라 버리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핵심만 말해” 또한 인지적 과부하를 막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의 것을 반복하려는 경향이다. 그렇게 때문에 자신의 경험한 것에 매달려 자신이 믿는 것에 부합하지 않는 증거들을 회피하고 새로운 것을 통제하려 한다.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자신의 경험이 쌓이고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관이 생겨나다는 것이다. 자신이 겪은 세상과 경험이 절대적인 진실이 되고 자신의 정체성으로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러한 사고의 경직성이 리더들에게 일어난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증가하고 인지의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새로운 경험과 자극이 많아 뇌의 시냅스에 자극을 많이 주어 뇌의 변화가 커져 유연한 사고가 가능하였으나 나이가 들수록 새롭고 다양한 자극과 학습이 줄어들다 보니 시냅스를 만드는 빈도가 줄어들면서 외부 환경에 경직성을 보이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고수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마지막으로 기성세대는 강한 인정 욕구를 가지고 있다. 내 방식을 후배가 인정하고 그 방법으로 따라 해 주고 그 방법으로 성공했을 때 나의 경험이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팀원에게 자신의 성공 방식을 알려주고 그 성공 방식이 아직도 유효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서 만족을 느낀다. 이런 내적 요구로 인해 묻지 않은 인생의 팁과 조직의 생리를 후배들에게 기회가 되면 말해 주고 싶어 한다. 이러한 성향은 우리 사회의 영향에서 비롯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공을 우선으로 살아온 기성세대들에게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내면의 가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인정이 더 큰 성공으로 간주되었다. 인정을 삶의 의미를 삼는다는 것은 낮은 자존감 때문이다. 인생이 잘 풀리고 않고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에 비해 자기 합리화 경향이 훨씬 강해지고 자신의 불행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1. 이경민, 장은지(2018). 회의 자주 열고 결재 라인 늘리고... 불안한 리더가 복잡성의 함정에 빠진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60호
2. 이경민, 장은지(2018).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태도가 화근. 책상 앞에서 붙어있는 당신, 꼰대지름길. 동아비즈니스리뷰,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