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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Nov 26. 2023

<만분의 일초>, 공피고아

꽉 쥔 주먹은 자신의 손바닥마저 파고든다.



<만분의 일초>를 봤습니다.



'공피고아(攻彼顧我)'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나를 살피고 돌아보라는 의미의 바둑 용어입니다. 자신의 약한 곳부터 보강한 다음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바둑의 이치인데,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감정이 앞서면 상대에게 기회를 주고 말죠. 김성환 감독의 영화 <만분의 일초>는 바둑 영화는 아니고 검도 영화입니다. 다만 '공피고아'라는 말을 꺼낸 이유는 이것이 영화의 중심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 출전하는 '재우'는 그곳에서 자기 형을 죽인 '황태수'를 만납니다. 재우는 복수심에 가득 찼지만 실력자 황태수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고통받는 재우의 검은 목적을 잃은 채 허공을 가르기 시작하고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재우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 승부가 결정되는 만분의 일초로 향합니다.



영화 <만분의 일초>는 굉장히 직접적이고 과하게 친절합니다. 영화에 나타나는 거의 모든 의미들을 클로즈업으로 강조하고 관객에게 여기를 봐달라고 요청합니다. 관객이 알아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이 영화는 떠먹여 주려고 합니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뜨겁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아쉽습니다. 영화가 직접적으로 의미의 모든 것을 설명하면 천박해질 수 있습니다. 좋은 예술은 간접성에 기반하여 다채로운 의미를 생성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렇게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료합니다. 투지 넘치는 카메라 기법으로 강인함을 드러내는 이 영화는 검도의 세계를 무척 인상적으로 표현합니다. 이 영화는 시점 쇼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인물의 심정과 검도 대련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팔의 흔들림까지 표현하는 배우의 움직임과 땅바닥을 울리는 구보 소리로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재우'와 '황태수'의 검도 대련은 흡사 위압감에 짓눌린 채 위협하는 삵과 거대한 기풍으로 태산처럼 다가오는 호랑이의 싸움을 보는 듯합니다.



이 영화는 복수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평온을 찾기 위한 여정입니다. 복수를 위해 꽉 쥔 주먹은 자신의 손바닥을 파고 들기 마련입니다. 꽉 쥔 주먹을 펴기 위해 '재우'는 '세 명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무엇을 깨닫고 변화하는지 지켜보면 좋습니다.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화염이 자신만의 길 위에서 고요한 호수로 바뀌는 순간 진정한 적에 대한 선득한 각성이 다가옵니다.


'파도는 왜 내가 그들에게 물은 질문과 똑같은 걸 나한테 물을까?'라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처럼, 스포츠에서 상대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스포츠는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만분의 일초>가 건네는 이야기는 더욱 깊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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