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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Nov 29. 2023

<너와 나>, 문득 네가 그리워서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혼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엉킨 이어폰을 꺼냈다. 잔뜩 꼬여서 풀지 못했다. 이렇게 하고 다니니까 맨날 엉키지. 너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결국 엉킨 이어폰을 풀지 못했다. 짜증 나고 분했다. 그리고 네가 그리워서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세미는 하루 앞두고 다리를 다쳐 수학여행을 못 가는 하은이가 밉다. 둘이 같이 수학여행에서 행복한 추억을 쌓고 싶었지만, 그것이 무산되어 세미는 속상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세미는 하은이가 수학여행에 갈 수 있게 캠코더를 팔자고 설득한다. 그런 세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은이는 느긋하다. 세미는 무언가를 자꾸 숨기는 듯한 하은이가 의심스럽고, 하은이는 자꾸 떼를 쓰는 세미가 좋으면서도 철없게 느껴진다. 마음이 앞선 세미는 자꾸 말이 헛나가고 그들의 사이에 오해와 상처가 생긴다. 그렇게 자꾸 어긋난 그들 뒤로 '안산역'이 있다.


 


영화 <너와 나>는 조금의 정보만 알고 있다면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설령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영화 중반부에 이르면 결말을 대충 어림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슬프다. 알고 있어도 사무치도록 슬픈 감정이 영화관을 덮친다. 단순히 한 사회의 비극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인물들의 마음 끝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무력감에 젖는다. 그토록 화사한 화면이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마음이 투영된 꿈속의 공간


조현철 감독은 "꿈속에서라도 친구들을 보고 싶다"라는 단원고 학생의 말에 영감을 받아 영화의 화면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영화 <너와 나>의 장면은 조도가 높다. 빛을 최대로 받은 듯한 화면은 공간을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영화의 공간은 거울처럼 인물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비춘다. 영화 중간마다 틈입하는 두 아이들, 멈춘 시계, 노래방 모니터에서 비친 뮤직비디오는 세미의 상상을 투영한다. 시간마저 균질하게 흐르지 않는다. 마치 시간을 붙잡는 것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이처럼 영화의 공간은 현실과 꿈, 환상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그토록 밝은 화면 속 저류에 죽음의 이미지가 깔려 있다. 죽은 참새, 하은이가 죽어 있는 불길한 꿈, 위태롭게 걸친 물컵은 환상의 빛 아래에 죽음의 그림자를 암시한다. 또한 세미와 하은이는 계속 단절된다. 병원에서 세미와 하은이는 커튼을 사이에 두고 대화한다. 하은의 집에서도 그 둘은 화분을 사이에 두고 있다. 강아지 ‘똘똘이’를 구출할 때도 세미는 철창을 넘어가지만 하은은 넘어가지 못한다. 그 둘은 의지로 연결하려고 시도하지만 공간으로 계속 어긋난다. 세미와 하은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단절의 이미지는 영화에서 계속 드러난다.



마음의 차이


영화 <너와 나>는 사회의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본질은 서투른 사랑 이야기다. 영화는 마음이 지나치게 앞서 실수하는 사람을 수채화처럼 천천히 살펴보고 묘사한다.

세미는 하은이 죽어 있는 불길한 꿈을 꾸었다. 그녀는 하은을 무척 걱정한다. 하은은 세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느긋하다. 그런 하은의 모습에 세미는 조급함을 느껴 캠코더를 팔아 수학여행을 가자고 설득한다. 세미는 하은의 구멍 난 양말과 각질로 하얀 뒤꿈치를 보았다. 하은의 반려견 ‘제리’도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것을 알고 있다. 


 


하은은 사실 수학여행을 갈 형편이 못 된다. 그러나 세미는 반드시 하은과 수학여행을 가고 싶다. 불길한 꿈에 따르면 하은을 다시 못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세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자신이 돈이 있어 하은의 수학여행 비용을 대신할 수도 없고, 다친 다리를 고칠 수도 없다. 그저 하은을 설득하여 캠코더를 팔아 수학여행을 가자고 설득하는 것뿐이다. 세미의 이상할 정도로 과한 집착과 조급함은 '무력감'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세미는 무엇을 숨기는 하은이 수상하다. 세미는 하은이 약속을 파투 내고 누구와 만났는지,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다. 그 상황에서 세미는 하은이 다른 남자를 만나는 모습을 본다. 하은이가 어떤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세미가 지켜보는 장면은 그녀의 위치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세미는 하은에게 우선순위가 아니다. 관계에서 더 좋아하는 사람은 늘 약자다.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사랑의 불균형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약자의 입장인 세미는 거짓말로 하은과 자신을 속일 수밖에 없다. 세미는 걱정 안 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무진장 걱정했다. 거짓말로 속마음을 억눌러야 자신이 약자인 것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마음은 이내 넘쳐흐르기 마련이다. 세미가 하은에게 “가기 싫으면 싫다고 해”라고 소리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마음의 분출이다.


 


서로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면 괴롭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행동, 그 진심이 엇나갈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감이 덮친다. 하지만 세미는 이후 다른 친구들의 다툼을 보면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본다. 팥빙수를 먹는 두 친구의 다툼의 요지는 '팥빙수에서 가장 맛있는 떡을 누가 더 많이 먹었는가'이다. 그 둘은 세미가 겪은 일에 관심이 없고 이 세상에서 떡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떡 문제의 핵심은 누가 더 많이 먹은 것이 아니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한 이기심이다. 이렇게 세미는 제3자의 시선으로 관계를 돌아본다. “떡 추가하면 되잖아”라는 세미의 말처럼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랑을 마음대로 추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랑의 총량은 늘 정해져 있어 마음껏 주고받을 수 없다.



체념해야 하지만 체념하지 못할 때


하은에게 대학생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안 세미는 노래방에서 ‘빅마마’의 노래 ‘체념’을 부른다. 그 장면은 꿈과 현실의 교차점에서 서글프게 빛난다. 노래하는 세미의 모습과 뮤직비디오가 교차로 편집되어 길게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뮤직비디오는 가사와 함께 둘이 제주도에서 이루지 못한 모습이 펼쳐진다. 그 장면은 하은이가 건강했다면 함께 누렸을 즐거운 추억들이다. 하지만 세미는 하은의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다. 대학생 남자친구만큼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은이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지 않다. 무력한 세미는 결국 체념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은을 떠나보내야 한다. 그 아픈 마음을 노래로 부르는 세미는 서글프고 속상하다. 사랑은 체념해야 하지만, 체념하지 못할 때 가장 괴롭다.


 


세미는 ‘똘이 아범’을 만나고 하은에게 남자친구가 없다는 것을 안다. 세미는 똘이 아범에게 과하게 화를 낸다. 이유는 하은이 사정이 좋지 않아 이런 찌질한 남자를 만날 때까지,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분풀이다. 하지만 세미는 ‘다애’와 대화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닫는다. 결국 세미가 하은이를 걱정해서 하는 행동과 말은 전부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하은이 얼마나 가난에 시달리는지, 반려견이 떠나 얼마나 힘든지 세미는 보지 못했다. 그녀는 맨날 자기 이야기만 했다.



세미의 소원은 그다지 거창하지 않다. 그냥 네가 보고 싶다. 네가 달아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너를 좋아해. 그냥 너에게 이 말이 하고 싶다.

세미는 학교에서 하은이를 만나고, 그 둘은 강아지 ‘진식이’를 따라 수상한 창고로 향한다. 그곳에 진식이뿐만 아니라 많은 강아지가 갇혀 있다. 하은은 철창을 넘지 못하지만 세미는 철창을 넘어 진식이에게 향한다. 그토록 세미가 필사적인 이유는 반려견을 떠난 하은의 슬픔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속죄다. 세미는 진식이를 구출해서 집에 돌려보내 주어 속죄하고자 한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세미는 하은에게 마음이 지나치게 앞서 상처를 주었던 것을 사과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고백한다.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다 내 욕심이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저 세미는 하은이 걱정되고, 보고 싶고, 끌어안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내 마음이 네 마음과 다를까 봐 무섭다. 마음이 넘쳐흐르는데, 이를 통제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의 실수이다. 서투른 사랑은 언제나 실수를 동반한다.



죽음은 이별이 아니다


결국 세미와 하은이 오해가 풀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지만, 우리는 이 둘의 운명을 알고 있다. 세미는 세상을 떠날 것이고, 혼자 남은 하은은 버스 안에서 노을을 보며 울 것이다. 엉킨 이어폰을 보고 ‘이렇게 하고 다니니까 맨날 엉키지’라는 세미의 말을 떠올린다. 하은은 갑자기 덮친 슬픔에 하염없이 울고 만다. 이 영화가 그토록 슬픈 이유는 그 모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비극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죽음을 똑바로 응시하는 방식을 통해 사회의 상흔을 위무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의 공간과 배경은 흡사 천국처럼 밝다. 현실과 명계의 희미한 경계는 시종일관 영화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내포한다. 공원에서 한 아이와 할머니가 놀고 있는 장면에서, 아이는 공룡 장난감을 물에 담갔다가 꺼낸다. 그리고 물속에 빠진 것을 구해줬다고 말한다. 철창 너머 갇힌 강아지들의 공간은 흡사 비극의 공간을 연상한다. 그곳을 하은이가 아닌 세미가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세미가 죽음에 더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미와 하은이 뽀뽀하고 작별할 때, 집으로 돌아가는 세미의 길에 상복을 입은 사람이 있다. 세미는 하은이에게 “다녀올게”라고 말하지만 돌아올 수 없다.


 


진식이(똘똘이)의 주인은 “차라리 고통스럽게 죽지 않았으면 했다"라고 말한다. 매일 자책하고 죽고 싶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데 되돌릴 수 없다. 그때 불길한 꿈의 장소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희미하다. 세미의 꿈에서 죽어 있는 사람은 이제 하은이 아닌 엄마, 아빠 같기도 하고, 친구들이며, 자신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네'가 돼서 깨어난다. 영화는 '내'가 '네'가 되는 방식을 통해 상흔을 위로한다. 끊임없이 네가 되는 자맥질을 통해 마음을 헤아린다. 우리는 죽음이 이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마당 앞에 피어오른 꽃망울에도 우리 곁을 떠난 이의 영혼이 깃들어있다.



마지막 세미의 가족이 국수를 먹는 장면은 카메라를 고정한 채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며 ‘세월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일상을 다시 헤아려본다. 세미는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빨간 수박이다. 눈이 내리는 조용한 날에 태어난 아이이다. 착해서 엄마 아프지 말라고 세상에 금방 나왔다. 아빠는 물에 닿으면 안 되는 상처를 발견한다. 이 상처는 물에 닿을 것이다.



세미는 앵무새 ‘조이’에게 “사랑해”를 속삭인다. “사랑해”라는 말이 아름답고, 아프다. “조이야, 안녕. 갔다 올게.”라고 말하지만 세미는 돌아오지 못한다. 세미의 마지막 “사랑해”를 들은 조이는 그 말을 영원히 기억할까. 그리고 그 말이 하은이에게 닿을까. 그토록 슬픈 “사랑해”라는 말속에, 세미는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처럼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형태의 변환이다. 그것이 헛된 위안일지라도 그렇게 믿고 견디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소중한 사람이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 것이라 믿으면서, 우리는 그저 "사랑해"라는 말이 숨결 되어 하은이에게 닿길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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