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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Jan 08. 2024

[영화결산] 2023년 영화 TOP 20 1편

2023년 최고의 영화 TOP 20 1편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2022년 영화 TOP 20을 적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23년 영화 TOP 20을 적을 시간이 왔네요. 돌아보면 2023년은 무척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으면서 혼곤한 시간이었네요. 그래도 영화가 있어서 덜 불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도 2023년 영화 TOP 20을 준비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TOP 10을 선정하는 것과 좀 다르죠. 이렇게 하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좋은 영화지만 10위 안에 못 들어와 놓치는 경우가 싫었습니다. 보통 TOP 10을 선정하면 정말 애정 하지만 다른 영화에 밀려서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떨어뜨리곤 했습니다. 그게 싫어서 그냥 TOP 20을 선정하여 1년 동안 좋은 영화들을 최대한 많이 선정하고자 했습니다.(NBA에서 ALL NBA TEAM을 퍼스트뿐만 아니라 서드까지 선정하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평범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기 싫었습니다. 보통 TOP 10은 많은 분들이 선정하는 방식입니다. 타인과 비슷한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괜스레 이런 흐름에 따라가고 싶지 않은 반골 기질이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TOP 20을 선정하여 좀 더 저의 취향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저도 이런 제가 이상하지만, 이제 TOP 20을 저만의 특별한 영화 순위로 간직하고자 합니다.

2023년에는 107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많이 본 것 같다가, 좀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2024년은 200편의 영화를 목표를 잡고 달려봐야겠습니다. 107편의 영화 중에서 2023년에 극장에 개봉하거나 OTT로 공개된 영화로 TOP 20을 선정하였습니다. 재개봉한 영화나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은 제외하였습니다.

작년과 똑같이 TOP 20 전부를 한 포스팅 안에 적을 수 없어 10편씩 나누어서 소개합니다. 이번 포스팅 1편은 역순으로 20위에서 11위까지 영화를 소개합니다. 순위 선정과 동시에 영화에 대한 간단한 단평도 남깁니다.


20위. <바빌론>

감독 : 데미언 셔젤


"시대의 흐름 속 사라진 모든 '리나 라몬트'를 추억하며."


과감하고 적나라합니다. 시작부터 코끼리 똥을 뿌리는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 <라라랜드>를 생각하고 보면 큰코다치기 쉽습니다. 높은 수위의 표현도 서슴없이 사용하며 나아가는 이 영화는 당대의 환락적인 할리우드의 풍경들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인 묘사가 단순히 즐기고 도취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영화의 뒷면이 이렇게 더럽고 추잡할지라도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영화가 숭고하고 존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러브 레터입니다. <바빌론>은 3시간이 넘는 장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거울 구조로 이야기를 축조하여 영화가 우리에게 남긴 영원한 순간들을 웅대하게 연결합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라진 '리나 라몬트'를 추억합니다.


19위. <스즈메의 문단속>

감독 : 신카이 마코토


"영화 내내 문단속하는 영화가 정작 마지막은 문을 열면서 끝난다. 그토록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


저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원한 팬입니다. 초기작 <초속 5센티미터>부터 시작하여 현재 <스즈메의 문단속>에 이르기까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궤적을 쭉 지켜본 팬의 입장에서, 그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에 사심을 가득 담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바엔 그냥 사심을 가득 담아 주관적으로 평가하겠다는 뜻이죠. 그 지점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은 타인의 평가보다 더 훌륭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집단적 상흔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면서, 다시 나아가는 사람의 성장담으로 더욱 훌륭합니다. 러닝타임 내내 '문단속'하는 영화가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열 때 밀려오는 감동이 생생합니다.


18위.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감독 : 크리스토퍼 맥쿼리


"히치콕 영화 같은 구성으로, 관객을 하나의 탐정으로 만든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새로운 영화가 나올 때마다 늘 놀랍습니다. 전작에서 규정한 액션의 한계를 신작에서 다시 깨부수고 새로 규정하니까요. 이번에는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면서, 톰 크루즈의 생사가 걱정되기도 합니다.(제발 자연사하길 바라는 배우입니다.) 그래서 이번 신작은 더 굉장합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액션이 가득한데, '실제로 찍었는지' 궁금한 장면들 대부분 '실제로 찍은' 장면이라는 점에서 입이 더 벌어집니다. 액션의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더욱 훌륭한 것은 각본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다분히 히치콕 영화 같은 구성으로 관객을 하나의 탐정으로 만듭니다. 수수께끼의 굴레를 만들어 관객에게 쾌감을 선사하는 실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다시 1편으로 돌아가는 듯 정통 첩보 스파이물로 회귀하면서, 이제 고전적인 품격마저 느껴집니다.


17위. <어파이어>

감독 : 크리티안 페촐트


"기어코 관객의 마음까지 불길이 번진다."


독일 영화감독 '크리스티안 페촐트'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예술 영화를 좀 좋아하시다면 금방 아실 겁니다. 현재 독일 영화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신작 <어파이어>는 감독의 전작과 다르게 독일 역사를 비유하지 않습니다. 작가를 꿈꾸지만, 사실은 별로 재능이 없는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산불 배경으로 심도 있게 다루어냅니다. 사랑의 무능력자가 겪는 불길 같은 사랑을 뜨거운 발트해를 풍경으로 독특하게 드러낸 이 영화는 한여름 밤의 꿈이 시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자전거가 우리의 마음속으로 안착할 때, 기어코 관객의 마음까지 불길이 번집니다.


16위. <이니셰린의 밴시>

감독 : 마틴 맥도나


"우리는 삶의 위기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니셰린의 밴시>를 아일랜드의 역사에 접합하여 해석합니다. 물론 틀린 해석은 아닙니다. 실제로 아일랜드의 역사를 알고 보면 영화가 다르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좀 더 근원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역사로 다시 쓴 '맥베스' 같은 이 영화는 신화의 구성과 방식으로 인간의 위기를 묻고 있습니다. 시간마저 멈춰버린 이곳에서, 과연 우리는 삶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모든 것이 의미 없고, 이유 없다고 느낄 때 무엇을 해야 할까요. 끝내 갈고리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이미지가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15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감독 : 제임스 건


"친구가 있으니 정말 좋다. 눈물 나도록 좋다."


<앤트맨>으로 시작하여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에 이르기까지, 올 한 해도 많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히어로 영화는 <플래시>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입니다. 특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제작부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제임스 건의 뛰어난 개성을 증명한 작품입니다. 이번에도 미친 듯이 좋은 선곡 감각과 함께 뛰어난 액션, 따뜻한 이야기로 풍성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모험 속 추억으로 인물들을 꽉 포옹하는 이 영화는 관객까지 이야기의 품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히어로 영화에서 이토록 애틋한 작별 인사가 또 있을까요.


14위. 말없는 소녀

감독 : 콤 베어리드


"말해야 한다는 격려보단,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의 포옹."


콤 베어리드 감독의 영화 <말없는 소녀>는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Foster)>가 원작입니다. 원작에서 꾹꾹 눌러 담은 소녀의 감성을 세밀하게 옮긴 이 영화는 정갈한 화면 속에서 특별한 우정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소녀 '코오트'역을 맡은 '캐서린 클린치'의 표정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합니다. 소녀가 말이 없는 것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말이 너무 많아서겠죠. 마침내 서로가 등불이 되어 어둠을 밝힐 때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듭니다.


13위. <너와 나>

감독 : 조현철


"문득 네가 그리워서 울었다. 한없이 울었다."


영화 <너와 나>는 무척 아름답고 아파서 기억에 남습니다. 2023년에 <절해도고>, <드림팰리스>, <콘크리트 유토피아>, <소울메이트>, <괴인>과 같은 좋은 한국 영화가 많았지만 최고작은 <너와 나>입니다. 친구와 같이 수학여행에 가지 못한 한 소녀의 감정을 바탕으로 마음의 차이를 드러낸 이 영화는 높은 조도 속에서 눈부신 공간을 설정합니다. 흡사 현실과 명계가 애매한 공간은 그 자체로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노을이 지는 버스 안에서 엉킨 이어폰을 풀지 못해 울음이 터진 소녀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문득 네가 그리워서 우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사랑해"라는 대사가 이토록 슬프고 아픈 영화입니다.


12위. 플라워 킬링 문

감독 : 마틴 스코세이지


"역사에 대한 울분, 무지에 대한 탄식, 그리고 위로하는 영화적 의식이 선명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신작 <플라워 킬링 문>은 무려 3시간 26분이라는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상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요즘, 분명 트렌드에 부합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러닝 타임이 2시간 30분으로 느껴질 만큼 구성과 흐름이 좋습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특유의 쫀쫀한 연출력으로 관객을 포획합니다. 단순히 역사를 범죄극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역시 범죄극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입니다.


영화는 인디언 오세이지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울분으로 진한 감정으로 그려내고, 무지에 대한 탄식으로 서늘한 진실을 담습니다. 그리고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그들의 넋을 영화적 의식으로 위로합니다. 그 끝에서 우리는 우두커니 의식을 바라보게 됩니다.


11위. 클로즈

감독 : 루카스 돈트


"과연 슬픔은 익숙해질 수 있는가."


한 소년이 겪는 사랑의 혼돈을 수려하게 풀어낸 영화 <클로즈>는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면서도 경솔하게 나아가지 않습니다. 인물이 겪는 사건의 공간과 사회의 시선을 바탕으로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리고 카메라의 정확한 이동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절절히 다가옵니다. 개인의 책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저에겐 슬픔에 관한 영화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슬픔에 요령이 생기고 익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슬픔은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슬픔은 예상할 수도 없이 아이스하키 마냥 당신을 들이받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을 삼키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포옹하고, 다시 한번 돌아보며, 다시 한번 나아갈 수밖에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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