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수정본 (더 좋은 글을 위한 피드백 환영합니다!!!)
'이만 12시 뉴스였습니다.'
딸깍.
'치직... 치지직'
'...ㅓ를 보내고~ 나 또다시 찾은 바닷가~'
"다 왔어. 내리자!"
차에서 내리니 바다 짠내가 코를 간지럽힌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우리 일행을 반겨준다.
해변이 얼마나 예뻤길래 여길 처음 발견한 사람의 안목이 좋다 하여 해변 이름도 안목 해변이다.
최근 안목 해변엔 예쁜 비주얼과는 상반되는 사건이 있었다. 여행을 혼 여성이 모르는 사이의 남성에게 묻지 마 폭행을 당한 사건이었다.
묻지 마 범죄, 그 중 특히 이유 없는 폭행 사건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범인들은 주로 사회와 단절된 청년들이고, 이런 사건들은 사람들을 점점 더 불신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점점 옛말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수기의 바다는 매우 한적하고, 여유로우며, 아름다웠다.
찰박찰박, 파도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자 마지막으로 해수욕장에 왔을 때가 생각이 났다.
바닷가에 갈 때마다 난 항상 누군가를 묻기 위한 구덩이를 팠다.
나 혼자서 땅을 파는 건 굉장히 길고 외로운 일이었다.
그걸 알아서일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혼자서 흙을 퍼 올리고 있으면 항상 주변에서 도와주는 무리가 있었다.
신기한 점은 그 무리가 항상 '여러 명의 형님'이라는 것이다.
요즘 단어로 그들을 표현하자면 '맑눈광'이었다.
눈에 광기가 서려 있었다.
가장 착하게 생긴 형이 "도와줄까 친구야?"라고 물으며 형들은 다가왔다.
부끄러워 고개만 끄덕.. 하면 형들은 웃으며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해줬다.
그리곤 그들끼리 경쟁이라도 하는 듯 엄청난 속도로 흙을 파줬다.
겨우 얼굴만 빼꼼할 수 있을 정도의 구덩이에 나를 묻었다.
아이스크림을 사 오던 엄마가 멀리서 봤을 때 축구공이라 착각했을 정도라니까.
형님들은 나를 묻고, '오늘도 한 건 했다'라는 표정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나서 돌아갔다.
그 시절엔 정이 넘쳤다.
모르는 형님들은 "엄마 말 잘 안 들으면 안 꺼내줄 거야. 숙제 밀리지 말고, 편식하지 말고, 양말 거꾸로 벗어놓지 말고.. "등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해대며 나를 묻었다.
항상 난 "네... "라고 대답했지만
나를 꺼내주고 가는 형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난 후 찾은 바닷가.
같이 간 동생과 옛 기억을 되살릴 겸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꼬마 형제가 흙 놀이를 하고 있었다.
성벽 쌓기 놀이를 하는 형과 동생.
옛날 시절을 떠올리며 친구에게 "우리 쟤네 묻어줄까?"라고 동생에게 말했다.
같이 놀 던 동생이 "형, 뉴스도 안 봐? 여기 사건 때문에 다들 예민해. 그리고 MZ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해"라고 말했다.
'요즘엔 이러면 좀.... 그렇지? 맞아... 안 좋아할 수도 있어...'.
아쉽지만, 사회가 사회인만큼 괜한 오해를 사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다로 '풍덩' 빠졌다.
해수욕을 마치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흙 놀이를 하는 형제들.
이제는 형이 자기 몸에 흙을 얹고 있다.
내 시계에 형과 동생을 제외하고 사람은 5명도 보이지 않았다.
땅을 파지 못해 울면서 숙소로 가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무리 MZ 꼬마 친구들이더라도, 흙 놀이를 어떻게 참아? 이건 한국인의 정이야 정.'
나는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안녕, 형이 도와줄까?"
"형이 진짜 목 끝까지 묻어줄게"
라고 말하며 아이들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며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라는 눈빛을 보냈다.
어머님은 '그렇다면, 부탁합니다... '라는 눈빛을 보내셨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느낀 정을 다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를 묻어주던 형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이 꼬마들에게 따뜻한 기억을 선물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파도를 맞으며 생긴 근육과 농익은 흙 파기 기술을 사용해 굴착기가 된 것처럼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흙을 파내며 '나를 묻어줬던 그 형님들도 어렸을 땐 또 다른 형님들이 묻어줬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어린아이'를 묻어주는 남자들의 '정'은 시대를 타지 않을 것이다.
금세 어린아이 한 명을 묻을 수 있는 구멍을 만들었다.
"누가 들어갈래.?"
꼬마 형이 멋지게 나섰다.
형을 묻기 시작했다.
꼬마 형을 묻으며 나도 모르게 그 시절 내가 들었던 말을 반복했다.
"너 어머니 말 잘 듣는다고 안 하면 안 꺼내 줄 거야~. 항상 숙제 밀리지 말고, 양말 거꾸로 벗지 말고!"
어머님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스마트폰으로 아이를 촬영하고 있었다.
꼬마친구는 목만 나와 있는 모습으로 "감쟈 합니다~" 발음이 새는 감사 인사를 했다.
발음은 샜지만 감사함은 새지 않고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내가 그때 묻혔던 기억처럼, 이 아이도 오늘을 따뜻하게 기억하길 바랐다.
사람들은 점점 서로를 믿지 않게 되었고, 차가운 사회 속에서 서로를 외면한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기억들이 쌓여서, 우리는 다시금 서로에게 다가가게 될 것이다.
묻지 마 사건들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작은 정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그런 비극적인 사건들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음에 다른 꼬마 친구들이 해변에서 땅을 파고 있다면, 그 친구들을 묻어줄 것이다. 서로를 믿고 함께하는 그 작은 정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다.
아참, 꼬마 친구 안 꺼내주고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