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0000

bgm: 봄을 느낄 수 있는 당신의 봄노래

by 예P

'삐빅. 띠링~'

"해제되었습니다"

'기어이, 이 공간을 오늘도 들어서게 되는구나.'

인간은 66일 동안 특정 행동을 반복하면 습관이 형성된다고 하던데,

그 습관을 받아들이는 감정까지는 뇌가 만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

지점은 2층, 하지만 ATM 실은 1층에 있기 때문에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간다.

'마감, 오직 그 하나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빠른 퇴근을 위해서' 매일 아침 돈을 채우고, 기계를 고치고...

ATM 실은 바깥세상과 가장 가까운 지점과 세상의 중간 지역이다. 아까 말했듯, 지점은 2층이기에 9시 전 1층은 나만의 공간.

ATM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지점과 세상의 중간지역이자,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회색 지대.


그곳에서 나는 작은 카메라를 통해 바깥세상을 바라본다.

어찌 되든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는 일을 하기는 하네요.

물론 양손에 스크립트 대신 2500만 원을 들고 있지만.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나만의 3평짜리 공간.

....좀 비싸겠는데?

그렇게 3월의 오늘.

ATM은 어떤 방식으로 날 맞이해 줄까? 기대를 하며 연 문.

풀꽃의 냄새가 났다.

설렜다.

먼지 냄새와 지폐 냄새만 가득한 공간에서 초록색 냄새를 맡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1층이기 때문에 ATM 실 너머의 거리에 나무와 풀꽃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들어온 것이다.

봄이 되었구나. 겨울이 다 지나갔음을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여기서도 계절을 느낄 수가 있구나'

지독히도 한정적이고 정적인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것을 느낀다는 것은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기 충분했다.

6개월 동안은 철저한 겨울이었다.

기계의 망가짐을 방지하기 위해 히터가 틀어져 있었기에

11월 수능의 걱정과 떨림이 담긴 한기를 느낄 수 없었고,

크리스마스의 사랑이 가득한 공기도 느낄 수 없었다.

3월이 되어서야 히터가 꺼지고 나서야 바깥은 공기를 맡을 수 있었다.

풀꽃 냄새를 맡는 순간은 1월에 보로금을 받는 것보다 더 큰 복지라 생각했다.

미안하다. 1초 만에 그 정도는 아니라 생각을 바꿨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ATM 실은 나에게 더 이상 회색 지대가 아니게 되었다.

따뜻한 햇살이 연상되는 생명력 넘치는 풀꽃 냄새가 나는 공간이니까.

나는 앞으로 여름에 내리는 여름비의 흙냄새, 5월의 활력 넘치는 꽃 냄새, 장마철의 무겁고 눅눅한 공기,

등의 냄새와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이곳을 0000라고 하기로 했다.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게 더 어울리는 공간이니까.

애플워치를 봤다.

08:35분.

아.

10분이나 멍을 때렸다고?

서둘러 촤르륵- 쇠사슬을 넘겨 올려본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오늘의 ATM은 봄이다.

풀꽃 냄새를 맡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