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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야기-전복죽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은 있는데 잘 팔리지 않았다. 그 후 <101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책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제목 때문에 책이 안 팔린 거라고 할 수 있다.  ‘닭고기 수프’라는 음식이 미국에서 감기에 걸렸을 때 흔히 먹는 수프인데 그 음식이 낯설어서였을 것이다. 그럼, 미국의 ‘닭고기 수프'같은 음식이 우리나라에서는 무엇일까. 기억에 달렸겠지만, ‘죽’이 아닐까. 죽은 대개 아플 때 먹는다. 아파서 몸과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 먹는 죽 한 그릇. 위로의 음식이 되어줄 게 분명하다. 병원 앞에 죽 프랜차이즈가게가 성업을 이루는 것을 보면, 아플 때면 곧 죽을 먹고 회복할 일이다. 

 죽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흰쌀이나 찹쌀을 미리 2~3시간 전에 불린다. 죽의 이름은 쌀 외에 들어가는 재료로 결정된다. 전복죽, 미역죽, 야채죽, 팥죽, 소고기죽 이렇게. 재료를 냄비에 넣고 볶은 후 불려 놓은 쌀과 물을 넣고 저어가며 쌀을 익힌다. 푹 퍼지게 끓인다.

이렇게 적고 나면 간단하지만 미리 쌀을 불려야 하고 익을 때까지 낮은 불로 타지 않게 저어야 해서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아팠다. 집을 떠나온다는 것, 장기간 긴 여행이 될 수도, 아니면 완전히 판을 바꾸는 일이 되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제주살이라는 이름으로 오기 위한 준비는 힘들었다. 기대감이 날 이끄는 듯했지만, 결국 오기 한 달 전 위장병이 났다. 제주에 올 날을 바꿀 수 없었다. 학생 신분이니 입학하고 수업을 참석해야 하니까. 3월 개강 전에는 와야 했다. 위장병이란 그저 맘 편히 갖고 먹는 걸 조심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치료법이다. 

 제주에 왔다. 식사를 함께하자는 제주지인에게 아파서 밖의 음식 못 먹는다고 해도 무조건 오란다. 그리고는 날 데리고 간 오조 해녀의 집. 전복죽. 죽이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소울푸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초록빛이 도는(게우라는 전복의 내장이 들어가서) 죽 한 그릇. 향수병도 위장병도 이 따뜻한 죽 한 그릇으로 사그라들었다. 이것이 음식의 주는 위안과 평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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