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그다지 유난스럽지 않은 엄마라 생각했었다.
실제로 누가 봐도 육아에 인생을 내던졌다거나, 한우와 유기농만 찾는다거나, 조기교육 사교육 등 교육열에 불타오르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므로.
(이렇게 열심인 엄마들이 유난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존중한다. 다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
그런데 오늘 밤, 내가 너무 유난스러웠나 하는 생각에 이불 없는 이불킥을 멈출 수 없다.
이틀 전, 3월에 입학하게 될 ㅇㅇ유치원 담임선생님에게 처음으로 전화가 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적어둔 대본을 읊어내려 가는 듯 어리숙한 대화였다.
아뿔싸, 올해 처음으로 이 유치원에 왔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좋다는 평을 듣고 지원한 곳인데 신입 담임이라니. 일단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내 질문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된 답변이 돌아오질 않았다.
이 유치원이 처음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전반적인 유치원 시스템에 대한 (예를 들면 교육비 결제하는 카드에 관한) 질문에도 전혀 답을 하지 못했다.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준다고 하고 끊었지만 쎄한 느낌은 커져만 갔고, 유치원에 전화를 넣었다.
원감님은 올해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해 몇몇의 선생님들이 떠나가셨으며 새로 온 분들도 다 경력이 있으신 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겪은 통화 내용상 사회 초년생, 아니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의 어리바리한 통화였다.
반 배정을 바꾸긴 어렵겠느냐 조심히 여쭸고, 예상한 대로 그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단 알겠다고 전화를 끊은 뒤, 2 지망으로 지원했던 ㅁㅁ유치원에 전화를 했다.
혹시 지금 입학신청이 될까요?
2 지망으로 넣으려던 ㅁㅁ유치원은, 사실은 마음속 1 지망이었다.
왜 지원하지 못했냐면, 첫 번째, 원비가 1.5배 정도 비쌌다. 유치원을 결정할 무렵의 나는 팔 수술 때문에 수입이 줄어 경제적으로 위축되어 있어서 이 부분이 큰 부담이었다.
두 번째, 원래 다니던 어린이집이 갑자기 다음 해에 반이 없어진다고 통보를 했고, 그땐 이미 유치원들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주변 유치원들에 전화를 걸었는데, 지금 배정받은 ㅇㅇ유치원은 견학을 따로 시켜주고 상담도 따로 해줬지만, 2 지망 ㅁㅁ유치원은 상담조차 받아주지 않았었다.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로 지원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다음 해를 기약하며 일단 2 지망에 넣었더랬다.
그렇게 지금의 ㅇㅇ유치원을 1 지망으로 합격해서 오티까지 들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될 줄이야.
그런데, ㅁㅁ유치원에서 기적적으로 입학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원이 다 채워지지 않았거나 결원이 생긴 모양이었다.
다만 오리엔테이션은 모두 끝났고 가능한 한 빨리 와서 상담을 받고 서류를 작성해야 신학기 준비를 마칠 수 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가능성이 열리자 오히려 엄청난 고민이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ㅇㅇ유치원에서 담임을 바꿔주겠다고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부장교사의 반으로.
담임이 바뀌지 않았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옮기는 선택을 했을 텐데, 무려 반배정까지 변경해 준 ㅇㅇ유치원에게 너무 미안해져 버렸다.
유치원복도 가방도 다 사버렸는데 올해는 그냥 다닐까 하는 생각과, 그래도 원래 보내고 싶었던 ㅁㅁ유치원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는데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어차피 내년엔 옮길 생각이 컸는데 그럴 거면 그냥 눈 딱 감고 지금 옮겨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게 어제 아침, ㅁㅁ유치원에 방문해 폭풍 같은 상담을 마친 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두 유치원의 크고 작은 장단점들을 엑셀로 정리해 가며 계산을 두들겼다.
그러다 문득, 그래, 이런 걸로 고민할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 생일파티, 준비물, 교육비.. 그런 건 다 부차적인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 내 아이가 어떤 교육을 받게 되는가를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 건데.
ㅁㅁ유치원에 보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정신을 기반으로 한 교육 때문이었다.
그렇게 결론이 닿고 보니 선택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폭풍같이 입학절차를 밟고 새로운 원복과 체육복, 가방을 수령했는데 바로 여기서 후회될 짓을 했다.
원복과 체육복, 가방의 비용이 꽤나 컸으므로 가방을 물려받을까 싶었다.
그래서 오늘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 잠깐 들러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가방 환불이 되는지 물었다.
된다고 해서 가방을 돌려주고 헌 가방을 물려받으러 갔다.
아니 근데 이런, 물려받은 가방이 너무 헐었다.
새 유치원에 가는데 이런 가방을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유치원에 갔다. 그냥 새 가방 살게요.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신학기 준비기간이라 교사분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데, 어제부터 상담한다고 두 번이나 오락가락하고, 오늘도 가방을 환불한다고 했다가 다시 가져간다고 했다가 정말로 미안했다.
물론 선생님들은 괜찮다며 친절하게 대해주셨지만, 그래서 더 죄송했다.
난 원래 이렇게 정신없고 호들갑 떠는 엄마가 아닌데.. 집에 오는 길에서부터 너무 민망했다.
입학도 요란법석으로 하고 가방을 산다만다 난리를 친 첫인상을 남기다니 너무 속상했다.
학교 가기 전까지 2년은 보내야 하는데 괜찮을까. 온갖 걱정이 된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바로 등원하기 시작하는데 준비물이라도 정말 빈틈없이 잘 챙겨서 보내야겠다.
아마 첫 주니까 담임선생님한테 한 번은 전화가 오겠지.
그때 나의 이 민망하고 송구한 마음을 구구절절 이야기해 드리리라..
맛있는 것도 좀 사다 드려야겠다. 아 정말 너무 속상하다.
어린이집 보낼 때는 무조건 국공립을 선택했고, 이런 식의 어려움은 거의 없었는데..
학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가.
초등학교는 또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그저 두려울 뿐이다.
선배님들의 조언이 절실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