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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롸이트 Apr 20. 2024

숨이 막히도록 혼자 있고 싶을 때

생각해 보니 혼자 있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디도 혼자서 여행 가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를 낳고 정말 못 참겠어서 미치겠어서 친구들을 만나러 1박씩 두 번 정도 다녀온 적은 있는데, 


그때도 잠만 혼자 잤지 일정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다. 


일상에서 혼자 있고 혼자 다니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데 아직 해외고 국내고 오롯이 혼자 다녀온 적이 한 번도 없다니 이게 맞나. 



육아를 하면서 주기적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가 오는데, 최근 요 며칠이 내겐 그랬다. 


남편은 축구를 하다가 무릎을 다쳐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고, 아이는 이번주 내내 몸살감기에 걸려 며칠밤 열이 나고 등원도 제대로 못했다. 


밤새 기침하고 토하 고를 반복하니 어제 아침에는 결국 늦잠을 잤고, 점심쯤에라도 등원시키려고 했으나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매달리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유치원 문턱만 넘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들어가 잘 놀고 오리란 걸 알았지만,


그렇게 어제도 등원시키는 바람에 나을 감기가 못 낫고 피곤해서 오래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이와 사투하는 20분여 동안 마음속에서는 미친듯한 갈등이 휘몰아쳤다. 


마음이 좀 아파도 보내고 내가 쉬어야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죄책감 어쩔 건데.


그렇다고 오늘까지 내가 보면 내일도 모레도 주말인데, 3일인데.. 내가 죽을 것 같은데.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했더니 반차를 내고 퇴근하겠다고 했지만, 몸도 성치 않은 사람과 셋이서 복작거려 봤자 내 속만 더 터질 뿐이다. 


어차피 둘 다 내가 돌봐야 할 사람들일 뿐.



어찌 됐든 그냥 이번에도 나를 포기하며 아이를 집에 뒀다. 


하지만 아픈 아이는 어디에 있어도 아프다. 끊임없이 나를 찾으며 아무것도 못하게 했다. 


그런 아이에게 좋은 말 다정한 태도가 나올 리가 없다. 


서로를 울려가며 지옥 같은 또 하루였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진짜로 가야겠다는 마음은 어제 처음으로 들었다. 


과감하게 일주일정도 다녀오고 싶고, 주말과 평일을 가득 채운 일주일을 쉬고 싶다.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일까. 


남편은 이런 생각이 안 든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내가 이상한 걸까. 


나는 그저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인데. 



워킹맘시절은 그 나름대로 지옥 같았지만, 프리랜서 생활에도 나름의 애환이 있다. 


일단 아무도 나의 일과 생활의 경계를 존중해주지 않는다. 


언제든 애가 울거나 보채거나 아프면 나를 찾고, 병원에 데려가는 일도 내 몫이다. 


네가 엄만데 당연하잖아? 그래 그건 그렇지. 


그런 마음으로 물러나가며 내 인생과 육아사이의 경계선을 슥슥 발로 문질러 지워가며 어디서부터 무너져 내렸는 지도 모르겠다. 


이건 언제 끝나나. 그런 생각만 해온지 꽤 된 것 같다. 


그래도 아이가 내 손을 완전히 떠나면 조금 쓸쓸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아이의 어렸을 적을 생각하면, 정말 작고 귀엽고 소중했는데 그땐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왜 그 귀여움을 한껏 들이마시며 오롯이 행복해하지 못했나 후회한다. 


하지만 장담컨대 그때의 내가 지금보다 훨씬 힘들고 괴로웠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 세대의 육아가 왜 이렇게 여성들을, 엄마들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지 지, 그 이유를 매일매일 생각하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아이는 사랑으로 키워야 하지만 개인은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고, 일상을 나노단위로 쪼개서 뭐라도 해내지 않으면 그저 집에서 노는 맘충이 되는 사회라 그런가. 


사회에서 이렇게 되세요 하는 멋지고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은,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되고 싶지만 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티브이에서 주창하는 현명하고 지혜롭고 자애로운 부모가 될 수도 없다. 실제로 해보면 그렇다. 


개인으로서도 부모로서도 완벽할 수 없다는 현실과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누적되어 그저 우울하고 무력해지는 나와, 동료 엄마들을 본다. 


현실과 동떨어져 멀리 도망가고 싶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는 것도 슬펐다.  


혹시라도 아이가 아프거나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돌아올 수 있어야 되니까 해외는 좀 그렇겠지..


혼자 오래 운전하면 피곤하니까 적당히 너무 멀리는 또 어려울 것 같고. 


그렇다고 비행기를 타면 어차피 렌트해서 돌아다녀야 하니까 비용이 이중이고. 


혼자 자는데 근사한 감성숙소를 빌리자니 돈이 아깝고, 하지만 이게 또 언제 올 기회일지 모르는데 무조건 가성비만 따지기도 구차하고. 


맘먹고 돈 쓰자 하면 쓸 순 있겠지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일까 하는 고민들. 




이젠 어딜 가도 여기 애기랑 오면 좋을 텐데, 아이생각 남편생각에 헛헛해질 마음들에 대한 이른 고민. 


한때는 예전의 홀가분했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도록 사무칠 때가 있었다. 


어딜 가도, 뭘 먹어도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됐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혼자 떠날 휴가를 계획하면서 그런 마음들까지 고민한다니 내가 도대체 얼마나 생각이 복잡하고 피곤한 인간인지 새삼 느낀다. 



어젯밤 잠이 오질 않아서 어디로 갈지 검색해 보다가 잠을 설쳤다. 


오늘도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오전 내내 서칭을 했지만 적당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당직으로 출근했던 남편이 돌아와서 마주 보고 점심을 먹었다. 


다리가 나을 때쯤 휴가를 다녀오겠노라 말했고 남편은 늘 그랬든 그러라 했다. 


그러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남편이 많이 힘들었냐고 다독여줬다. 


다리가 낫기 전에라도 다녀오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을 안다. 


그렇게 말이라도 해줬으니 고마워야 하겠지.



뭐가 제일 힘들었냐고 묻는데 지금까지 적은 모든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전달한다고 이해는 할지 자신이 없었으므로.


스트레스로 심장이 쿵쾅거리고 계속 한숨이 나온다. 


여행지를 검색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설렜지만 지금은 그저 피곤하다. 


여행 비용은 나의 한 달, 혹은 두 달의 생활비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 또 제 수명을 깎아먹었다는 생각에 고통스럽겠지. 


결국 저렴한 비용으로는 내가 원하는 도피를 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며 또 처참한 기분이다.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이 많았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겠지.



방을 문을 닫고 들어와 천천한 심장 박동 소리와 비슷한 리듬의 노래를 들으며, 아끼는 키보드로 도각도각 정처 없는 생각들을 쏟아낸다. 


이 마음들이 가다듬어지는 날이 올까. 



다들 그저 참고 사는데, 나는 그게 안되는 걸까. 


인스타의 어떤 동창은, 미혼에 홀몸이고, 무슨 목적인지 모르겠지만 독일로 떠났다. 


어떤 선택지를 고름에 있어서 고려할게 나 자신밖에 없는 심플한 인생. 지금 이 순간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물론 그의 인생에도 나름의 고충은 있겠지. 하지만 굳이 무게를 따지자면 절댓값은 내쪽이 훨씬 무겁지 않을까. 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까. 


사고방식 자체가 바뀌어버렸다는 점이 그 무엇보다 나를 슬프게 한다. 


도망을 치면서도 언제든 돌아올 걱정을 해야 하다니. 


도망칠 체력과 예산을 고민해야 하다니. 이 얼마나 비루하고 볼품없는가. 



아이의 사랑스러움은 과연 이 모든 것을 이기는가. 


그런 생각들을 할수록 커져가는 미안함과 죄책감은 누가 대신 들어주나.


몸이 힘들면 마음이 편해야 하는 국룰은 왜 깨졌는가. 


아이를 등원시키지 않아서 내 몸은 힘들어졌는데, 왜 마음은 더 더 힘들어졌는가. 



가장 욕망이 큰 시기에 육아로 갈려나간 내 인생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긴 방학을 맞을 일들이 나는 벌써 두렵다. 




어렸을 때부터 잠이 안 올 때 주로 망상에 빠지는 편인데, 주로 판타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는 류의 것들이었다. 


어른이 되고 그런 건 거의 옅어지고 멀어지더니, 아이가 생기고 이런 고민들이 시작되자 지극히 현실적인 망상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돈, 가족, 일, 관계 아무런 걱정도 없이 한적하지만 장엄한 자연 속에서 손을 사부작거리며 사는 인생. 가끔 차를 몰고 도시로 나가 책과 실과 색연필 같은 걸 사들고 돌아와 아무런 방해 없이 자적하는 삶. 그런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이 됐다고 생각하고, 무얼 할까 세어보다 보면 잠이 든다. 


그런 것들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가끔 서글프고 외롭겠지. 가족과 떨어진 상태라면 가끔 보고 싶고 그러겠지. 하지만 언젠가 꼭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들. 


언제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도 모르게 잠들고 일어나면 다시 시작되는 등원과의 전쟁. 




이마를 짚고 눈을 쓸어내리며 찝찔하게 털어내 버리는 그런 망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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