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면서 왜 난리야!
“늦지 않았다고! 평소에 니가 빨리 나가는 편이라고!!”
“아니라고! 늦었다고!! 잘 모르면서 왜 난리야!”
“뭐가 어째! 내가 니 친구야!”
첫째가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져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싸우다가 욱해서 한 말이지만 자식에게 그런 말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기에 열이 치받아 올랐다.
자식 잘 못 키워서 인생이 망한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첫째를 폭발하게 만든 내게도 책임이 있다.
바쁜 아침 시간에 등교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애한테 가방 싸라, 물 먹어라, 반팔 입어라, 계속하다가 말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빨리 나가고 싶어 안달인 첫째에게 아무래도 가방끈이 짝짝이인 것 같다고 줄 조절 좀 해보자고 가방을 붙잡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참아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둘째에게 묻는다.
“누가 더 잘못한 것 같아?”
“둘 다 똑같아. 멈추지 않고 계속 끝까지 해.”
그래. 첫째가 저 모양인 것은 나를 똑 닮아서이다.
누구 한 명이 더 나았다면 싸움이 되지 않았겠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거슬려서 성에 찰 때까지 끝까지 해대다가 싸움을 부른다.
애들이 자주 하는 말들이 떠오른다.
“그게 뭐 어때서? 그게 뭐 잘못이야? 진짜 왜 저래? 엄마 때문이잖아!” 다 맞는 말이다.
왜 나는 첫째가 폭발할 때까지 해댔을까? 그 애도 가방끈 건들 때까지는 잘 참아주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래도 첫째가 내게 한 말은 심하다 싶다.
하루 종일 속상했기에 첫째가 학교 다녀왔는데 꼴도 보기 싫으면 어쩌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문 열고 들어오면서 “어머니 죄송합니다.” 사과해 준다.
아침의 일이 내가 잘못한 건지 첫째가 잘못 한 건지 헷갈린다.
서로 잘못한 일인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사과해 주니 고맙다.
사랑에 눈이 멀면 바보가 되고 부모가 자기 자식을 제일 모른다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보기만 해도 좋은 눈에 콩깍지가 씐 상태인데 어찌 제대로 볼까?
부모는 절대로 자기 자식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내가 중학생 2학년 때가 33년 전이고, 애들을 24시간 따라다니는 것도 아닌데, 요즘 중학교 생활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건 아닐까 싶다.
잔소리를 좀 줄여야지, 하지 않아도 될 참견은 하지 말아야지 싶지만, 태어나면서 여태까지 해왔던 “이 닦아라.” 같은 말을 안 하기가 쉽지 않다.
십 년 넘게 쭉 해왔던 말이라 노력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해버리고 만다.
우리 모두 자기 인생만 살아봐서 남의 인생은 잘 모른다.
아는 척을 할 뿐 세세하게 다 알 수는 없다.
서로 이해가 안 될 때 답답해지기도 하고 화가 나면 싸우기도 한다.
그래서 이해를 받을 때, 이해가 될 때, 서로 공감하는 마음을 나누는 순간이 더 소중하며 위로를 받는가 보다.
들어가는 말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난리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으로 이 에세이를 쓴다고 적었다.
첫째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나 내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뭐가 다를까?
우리는 다들 잘 모르면서 서로에게 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