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독립 출판 수업

카톡 프로필 이름을 내 이름으로

by 동네줌마쓰리

“저는 중1, 중2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고 있고요. 애들이 사춘기가 되니까 저를 귀찮아하고 필요 없어 하는 것 같아서 우울증이 좀 오더라고요. 그러다가 독립 출판 수업이 있다는 것을 보고, 결혼 전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작가가 꿈이었어서, 글 쓰고 그림 그렸던 게 생각나서요. 그걸 책으로 내보고 싶어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어디에 가나 첫 수업에는 자기소개를 하기 마련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기소개를 끝내고 나서 내가 한 말을 되짚어 본다.


중1, 중2 아들 둘, 나를 귀찮아하고 필요 없어 함. 우울증. 결혼 전에 꿈이었던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 작가.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음. 할 말은 다 한 것 같다.


첫 수업을 정신없이 끝내고 집에 와서 책으로 만들고자 한 원고를 살펴보았다.


이십 년 전 원고지만 종이상자에 넣어두어서 그런지 그림 상태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그림 한 장에 글 한 줄씩인 구성이 마음에 걸린다.


전체 분량이 너무 짧기도 하고 그림 스캔하고 포토샵 작업만 주야장천 하다가 끝나버릴 것만 같다.


그래도 책 만들기 수업인데 좀 더 두께가 있는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난다.


게다가 독자를 특정 할 수가 없어서 기획안도 못 쓰겠다.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 거지 독자를 생각하고 만든 이야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십 대의 객기를 사십 대에 마주하려니 내 작품이라도 좀 어색하고 민망하다.


내가 더 이상 그 젊은 날의 감성이 아닌 것이다.


“설마 다 에세이로 바꾸려는 건 아니죠?” 선생님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시간이 촉박하니 새로운 소설은 못 쓸 것 같고, 일기 다음으로 쓰기 쉽다는 에세이를 써야겠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은 깔끔하게 포기한다.


에세이 내용은 연년생 아들 둘 이야기를 쓸 것이다.


애 둘 키우느라 나 없는 것처럼 살았던 내 인생에서 그것밖에는 쓸 내용이 없다.


그리고 그나마 그게 좀 재미있으리라.


일주일에 한 번씩 금요일 수업이 있을 때마다 초고 완성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며 일상을 보냈다.


내가 써놓은 에피소드들을 읽어보니 아이들 사춘기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엄마의 하소연 같기도 하다.


일기 같기도 하고 수다 같기도 하다.


독자층은 나와 같은 사춘기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인생의 한 단락을 끝내고 다른 단락으로 넘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을 끝내고 청소년 시절로 벌써 들어섰지만, 나는 미련을 못 버리고 미적거리고 있었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발로 뻥 까여서 다시 김소연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계정 여러 개 만들어서 한 달씩 무료로 쓰면 돼.” 남편이 수업에 필요하니까 깔아달라고 부탁한 프로그램들을 노트북에 깔아주며 말한다.


“라면은 내가 끓일게.” 주말인데 밥하기 싫다고 짜증을 냈더니 첫째가 찬장에서 라면을 꺼낸다.


둘째한테 “너는 뭐 안 하냐?”라고 물으니, 물컵에 물을 따른다.


그래. 내 인생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가족들 수발드느라 인생이 다 갔다고 불평불만 해대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인 거다.


젊을 때 꿈꿨던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생과는 아주 거리가 멀고, 동네 아줌마 쓰리 정도의 존재감으로 미미하게 살고 있지만, 이것도 내 주제와 분수를 생각하면 과분한 삶인지도 모른다.


“이제 내가 잘하는데도, 왜 얼마 전까지 내가 잘 못 했던 때만 생각하고, 나한테 계속 같은 잔소리를 해? 언제까지 애 취급당해야 하냐고? 엄마가 똑같이 취급하는데, 그럼 내가 잘하고 싶겠어?” 첫째가 늘 하는 불평이다.


그래. 나도 변할 필요가 있다.


애들에게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좀 내려놔야 한다.


내 몸에서 나왔다고 내 맘대로 하려 들면 안 된다.


나와 전혀 다른 한 사람으로서 대등하게 봐주어야만 한다.


이제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이다.


아마 이 글도 사춘기가 되어버린 아들들에게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이제 정말 애들 이름을 내 이름처럼 사용하는 것은 그만두자.


애들 이름은 애들만 쓰게 놔두자. 카톡 프로필 이름을 내 이름으로 바꿀 때가 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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