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벚꽃 구경

부모가 꽃처럼 예뻐 보이던 시절은 가고 부모와 함께 꽃구경하기 싫은 나이

by 동네줌마쓰리

“나 집으로 왔는데.”

“뭐! 학원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잖아!!”


분명 학원 끝날 때 맞춰서 근처 안양천 진입로에 있겠다고 말했는데, 첫째가 자기 맘대로 집으로 가버렸다.


학원에도 화장실이 있는데 화장실이 급해서 집으로 갔다는 것은 핑계일 뿐, 함께 벚꽃 구경하기 싫어서 내뺀 것이다.


“당장 나와라. 여기서 우리 출발할 테니까 너는 철산교 쪽으로 진입해서 오면 돼.”


첫째가 온몸으로 내뱉는 싫다는 아우성이 여기까지 들려오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끊는다.


일 년에 벚꽃 만개하고 질 때까지 딱 열흘 남짓.


내일 비바람 소식이 있으니 오늘 보지 않으면 아마 일 년을 다시 기다려야 이 장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야 열흘 동안 아침마다 산책하며 꽃을 실컷 구경했으니 아쉽지는 않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다.


일 년에 한 번씩 꽃길을 함께 걷고 밥 먹었던 우리 가족 행사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비싸고 맛있는 점심을 사준다고 해봐도 이제 중학생이 되어버린 아들 둘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불과 이삼 년 전까지만 해도 좋아서 함께 걷던 길인데 말이다.


“같이 가!”


첫째가 내 말에 대꾸도 없이 앞만 보고 걷는다.


여러 번 불러봐도 한 번을 뒤돌아보지 않는다.


강제로 불려 나와서 삐졌나 보다.


첫째는 남의 집 자식처럼 멀찍이 떨어져 혼자 가고 있다.


족히 오십 미터는 앞서 빠르게 걷는 것 같다.


둘째는 그래도 엄마 아빠와 발맞춰서 나란히 걷는데, 첫째는 사춘기가 온 뒤로는 밖에서는 항상 저 모양이다.


혼자 다니는 척한다.


평소에 우연히 길 가다 마주쳐도 서로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기를 바란다.


그래봤자 우리 네 식구 다 닮아서 어디 가도 가족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무슨 연예인 병도 아니고 사춘기 병인지 다른 사람들 눈을 굉장히 의식하면서 눈에 띄는 게 죽기보다 더 싫은 눈치다.


어디 그것뿐이랴?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는 둘째에게 해줄 말이 없냐니까 “되도록 말을 하지마. 문제에 휘말리니까. 그리고 나 봐도 아는 척하지 말고, 형이 다닌다고 말하지도 마라. 아는 척하면 죽는다.” 그러더라.


내가 부끄럽나 보다고 부루퉁한 둘째에게 엄마한테도 그러니까 네가 이해하라고 달랬었다.


그렇게 간신히 안양천 벚꽃길을 한 바퀴 돌고 맛있는 점심을 먹으려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문제가 또 생겼다.


나는 좀 멀어도 비싼 맛집을 가려 했었는데, 첫째는 집 앞에서 아무거나 빨리 먹고 들어가고 싶어 했다.


둘째는 먼 데든 가까운 데든 상관이 없었지만 고기 요리를 먹어야만 했다.


나의 맛집은 포기하고 첫째와 둘째에게 정하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짬뽕을 먹고 싶은 첫째와 고기구이가 먹고 싶은 둘째가 합의 안되는 거다.


결국은 배가 고픈 남편의 재촉으로 푸드코트가 있는 근처 대형마트로 가게 되었다.


나도, 첫째도, 둘째도 처음 주장했던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푸드코트는 메뉴가 다양해서 각자 원하는 것으로 골라 먹을 수 있으니 싸울 필요는 없었다.


꽃구경 한 것 때문에 끝까지 표정이 밝지 않은 첫째와, 좀 더 근사한 것을 먹을 줄 알았다고 툴툴대는 둘째에게 열이 받는다.


나와 군말 없이 벚꽃구경 해주는게 남편 뿐이라는 사실이 기가막히다.


“엄마가 꽃같이 예쁘지?” 갓난아기 보러 놀러 온 엄마 친구분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오늘 좀 알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나한테 와서 뽀뽀를 쪽 해주던 아기들이 있었다.


아장아장 걷던 아기들은 내가 자기들을 두고 어디 가는 줄로 착각하고 화장실 문도 못 닫게 했었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날 그렇게나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아기들이 커버리고 나니까 나와 꽃구경도 함께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날 꽃처럼 예쁘게 봤던 아기들은 이제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내가 애들에게 꽃같이 예뻐 보이던 시절에는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그 애정의 소중함을 몰랐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부담스럽고 귀찮았었다.


“아빠한테 말 좀 해.” 내가 핸드폰을 들고 애들을 찾아간다.


“끊어.” 첫째가 말한다.


“나 숙제 해야 한다고!” 둘째가 소리친다.


애들이 사춘기가 되더니 재미가 없어졌다.


출장 간 아빠에게 전화 통화로 말해주는 것도 귀찮아한다.


처음에는 그리워서 길게 하던 통화가 이제는 익숙해져서 특별한 사건 없는 이상 매일 비슷한 내용으로 짧아졌다.


그마저도 사춘기 아들 둘은 내가 억지로 시켜야만 숨소리라도 낸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출근하지 말라고 자기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다리 하나에 한 명씩 들러붙어서 울어 젖히던 시절이 있었는데... 너무 좋아하는 아빠가 출장을 가는 날이면 자신의 아기 이불을 붙잡고 통곡하면서 잠들던 아가들이었는데… 크더니 변했다.


남편한테 갑자기 끈끈한 동료애가 느껴진다.


저 불쌍한 인간.


그래. 나만 배신당한 게 아니지. 나만 서운한 게 아니지.


남편이 있었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남편을 붙잡고 자식 다 필요 없다고 위로해 봐야겠다.


아이 키우며 의견이 달라서 싸움을 시작하게 됐지만, 다 큰 사춘기 자식들에게 배신당하고 함께 욕하면서 다시금 친해지는 시절이 온 것이다.


부모가 꽃처럼 예뻐 보이던 시절은 가고 부모와 함께 꽃구경하기 싫은 나이.


사춘기 자식들은 부모보다는 친구와 함께 영화 보고 싶어 하고, 놀러 가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함께 한다면 노력해서 영화 봐주는 거고, 노력해서 놀러 가주는 거다.


함께 해줘서 고마워해야 하는 현실에 씁쓸하다.


시간이 흐른 걸, 세월이 변한 걸, 체감한다.


나만 찾던 아기들도 없어졌고, 젊고 잘 웃던 남편도 없어졌다.


아기들은 날 귀찮아하는 청소년이 되었고, 남편은 흰머리를 염색해야 하는 깐깐한 중년남성이 되었다.


거울 속의 나도 많이 늙었다.


지금도 내 안에서 선명한 그 시절은 이제 추억 속에서나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다.


그걸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싸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남편에게 사춘기를 이해하라 그래 놓고 애랑 싸우고, 남편은 나에게 사춘기를 이해하라 그래 놓고 또 애랑 싸운다.


애들은 사춘기라 서로 싸우고, 요즘 우리 가정은 매일 그런 식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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