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난 왜 스무 살 때까지 종교의 자유가 없는 거야?

엄마, 나 기도 좀 해줘. 괜찮겠지?

by 동네줌마쓰리

“난 왜 스무 살 때까지 종교의 자유가 없는 거야?” 교회 가는 차 안에서 첫째가 계속 투덜거린다.


둘째를 보며 묻는다. “넌 솔직히 교회 가는 거 좋아하잖아?” 둘째가 긍정의 표시로 아무 말도 못 한다.


“이 배신자!” 남편이 소리친다.


“왜 애한테 뭐라 그래! 그리고 너. 내가 교회라도 안 가면 뭘 믿고 불안해서 어떻게 널 키우냐?” 첫째에게 버럭버럭한다.


“나 교회 가기 싫다고.” 첫째가 짜증을 낸다.


“나도 너 키우기 싫을 때 많아. 그래도 키우고 있으니까, 너도 잔말 말고 교회 가라.”


첫째와 입씨름하느라 교회 가기 전에 몸에 사리가 생길 지경이다.


사춘기가 된 자식들 때문에 다들 마음이 힘든지 동네친구엄마들이 각자의 지푸라기를 찾기 시작했다.


절에 다니는 엄마는 불교 수업을 신청해서 듣기 시작했고, 점집 다니는 엄마는 신내림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다녔고, 나는 교회에서 가족예배를 보기 시작했다.


뉴스만 틀면 사건사고였고,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은 항상 일어났으며, 부모로서 책임져야 할 것들은 많았다.


손아귀에서 벗어난 자식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어디서 무슨 사고를 칠지 무슨 사고를 당할지 알 수 없어서 늘 불안했다.


자신의 한계를 절감할 때면 의지할 무언가가 필요한 법.


나는 다행히 결혼 전부터 믿음이 있었고 가족과 함께 다닐만한 교회를 찾기만 하면 되었다.


아이들의 십 대도 나의 사십 대도 예배를 붙잡고서 잘 버텨야지 다짐했다.


나도 처음부터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었던 것은 아니다.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어렸을 때는 먹을 거 나눠주거나 교회학교에서 어디 놀러 간다 그래서 참가한 정도였다.


그마저도 중학교 때부터는 믿음도 안 생기는 데다 귀찮아서 발길을 끊었다.


그러다가 사회생활 하게 되고 인생에 암흑기를 보낼 때 선물처럼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생겼고 그 이후로는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


애들한테도 꼭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 가지라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다만 내 인생의 지나온 발자취를 돌이켜 봤을 때, 믿음이 있었기에 희망을 품고 결혼할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첫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 기도로서 기다렸던 것처럼, 무엇보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큰 의지와 위로가 되어서, 내 품 안에 있을 때는 교회를 다녔으면 싶은 것이다.


아이들 키우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삶의 불안을 내려놓고 의지하지 않았으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힘든 마음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리라.


신앙생활이 실질적인 도움도 되었는데, 둘째 발음교정하고 매일 읽기 연습할 때 어린이 큐티 책이 좋은 교재가 되었다.


내용도 짧고 그림도 재미있었지만, 하루하루 날짜가 적혀 있어서 빼먹지 않고 챙길 수 있었다.


중학교부터는 삼 년 기간을 잡고 성경 완독에 도전하는 중이다.


하루에 한 장씩 꾸준히 읽으면 중간에 일이 생겨 못 읽는 날들이 있다고 해도 중학교 졸업 전에는 완독할 수 있으리라.


“대체 내가 이걸 왜 읽어야 하는데?” 대꾸하는 첫째와 둘째에게, “너희들이 믿든 믿지 않든 살면서 성경책 한 번쯤은 읽을 만하잖아” 꼬드겼다.


평생 자랑할 수 있을 거라고 부추기며.


무엇보다 엄마가 믿는 사람인데 너희를 이 험한 세상에 내놓기 전에 그래도 성경책은 한번 읽게 해야지 안심이지 않겠나, 협박도 하고.


애들은 모른다.


남편의 출장이 예상 보다 길어질 때, 아픈 애들의 열이 해열제를 먹여도 금방 내려가지 않을 때, 지금 이 순간이 감당하기 어렵게 무서울 때, 기도 부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잠들기 전에 첫째와 둘째에게 항상 말한다.


“아프거나 무서우면 엄마 불러라.”


하지만 남편이 출장 중이라면 정작 내가 아프거나 무서울 때는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럴 때, 나 혼자 세상에 남겨진 것 같은 순간일 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으리라.


하나님을 믿을 수 없어서 나를 이해 못 하는 척하지만, 남편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을 믿고 양자역학을 신봉하지만, 징크스를 믿으며 불안해하니까 말이다.


초상집에 다녀오면 소금을 뿌려주기를 원하고 컵이 깨지면 하루 종일 조심한다.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다리를 다쳤고, 중학교 1학년 때 팔을 다쳤으니,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특히 조심해야겠다고 사서 걱정이다.


첫째와 둘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무슨 일만 생기면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해온다.


손톱에 가시가 박혀서 잘 안 빠질 때, 내성 발톱 치료하러 진료실 들어가기 전에, 기말고사를 앞두고도 “엄마, 나 기도 좀 해줘. 괜찮겠지?” 부탁해 온다.


이성적이고 강한 척 해보지만 근심걱정이 많고 심약한 것이 나와 꼭 닮은 내 자식인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첫째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기 전에 굿이라도 하거나 부적이라도 사게 될 것이다.


내가 믿음이 없었다면 둘째가 갑자기 생겼을 때 현실적인 상황만 생각해서 아기 낳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내가 믿음이 없었다면 언제 변할지 모르는 사랑을 가지고 결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요즘 너무 피곤해. 학교 가기 정말 싫다. 초등학교 때보다 중학교가 힘들고, 고등학교는 더 힘들겠지?”


“그래도 대학교 가서 자기가 배우고 싶은 거 배우면 좀 재밌어.”


“아니야. 인생은 더 힘들어만 질 거야.”


동생에게 조언이라고 해주는 첫째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둘째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하나님이 프로그래머이고 세상이 그분이 창조한 게임이라고 생각해 봐. 그럼, 성경은 그 게임의 설명서 같은 거 아니겠어? 니가 이걸 다 읽으면 치트 키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뭔 헛소리냐고 바라보는 첫째와, 몹시 지쳐 보이는 둘째에게, 오늘도 성경 읽기를 시키기 위해서 나는 수작을 부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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