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과 떠난 유럽 배낭여행 -
'빛바랜 기록일지언정 이탈리아 통일 전에는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역사적 사실보다, 로마 밀라노와 함께 이탈리아 3대 도시라는 명성에 앞서, 피자가 먼저 연상되는 나폴리.. 치안 문제가 꼬리표처럼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를 잡아채는 이유는 남부여행의 관문이며 미식로드의 정점인 동시에 시선을 멀리 두면 지중해까지 나아갈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로서의 입지 때문은 아닐까..'
산타루치아 항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스파카나폴리(Spaccanapoli)를 꿈꾸는 누군가와는 달리 혹여 나폴리에 간다면 그건 분명 피자 때문일 테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러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는 아닐뿐더러, 애석하게도 이번 여정에서 남부지역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폴리를 곱씹는 것은 아침 식탁에서 선포하듯 운을 뗀 사장님 때문이리라.
"집주인 만나러 나폴리에 가요. 저녁 전에 오겠지만, 혹 저보다 일찍 귀가할 수 있으니 열쇠 드릴게요. 참,, 나폴리는 아직.. 이죠?"
'아직' 뒤, 말줄임표에 감춘 사장님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혹 동행을 의미했다면 그건 무리였다. 먹거리와 볼거리 보태어 끝도 없는 바다를 상상하면 황홀 그 자체였으나, 자비 없는 로마 더위에 크게 맞은 상태라 겁도 났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인 살인적 물가 때문이었다. 자고로 남부여행이라 하면 나폴리보다는 아말피와 포지타노가 아닌가. 고작해야 반나절의 여정이라면 관광은 고사하고 피자 한 판 해치우기에도 빠듯한 시간, 그러기엔 교통비가 아까웠다. 하여, 점심을 마르게리타 피자로 정함과 동시에 이것이 여러모로 남는 장사임을 되새김질하며 '나폴리'라는 지명에 즉각 반응한 신경세포들을 다독였다.
로마의 숱한 광장 가운데서도 부러 발도장을 찍게 만드는 곳 중 하나는 바르베리니 광장이 아닐까 싶다. 바르베리니 가문 출신 교황 우르바노 8세(재위 기간 1623-1643)의 재위 시절, 바르베리니 궁전(Palazzo Barberini) 이름을 붙여 만들어진 바르베리니 광장 중앙에는 베르니니가 만든 트리토네 분수(Fontana del Tritone, 1643년)가 있다. 분수 중앙, 네 마리의 돌고래 위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뒤로 젖힌 바다의 신 트리톤이 입에 대고 있는 소라고둥에서 물을 뿜어내는 역동적인 구조로, 자세히 살펴보면 바르베리니 가문의 상징인 꿀벌 세 마리와 교황을 상징하는 삼중관과 열쇠가 조각되어 있다. 베르니니의 최대 후원자였던 우르바노 8세의 마지막 부탁인 동시에 베르니니가 만든 첫 번째 분수라는 점, 로마 시민들에게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1586년 건설된 수로 아쿠아 펠리체(Acqua Felice)를 복원했다는 것뿐 아니라, 당시 기존의 공공 분수가 단순히 물을 받는 수단이었던 반면, 이들의 합작품은 귀족의 별장과 빌라 정원에 사용되던 조각 분수를 최초로 공공 분수에 적용했으니 이는 분명 의미가 크다 하겠다.
바르베리니 광장 한편, 트리토네 분수 이후 제작된 '벌의 분수'로 알려진 아피 분수(Fontana delle Api, 1644)는 우르바노 8세의 이름을 새긴 조개 모양 석상에 조각된 세 마리의 꿀벌에서 물이 솟구치는 구조의 작은 분수로 트리토네 분수의 물을 재사용한 결과, 높지 않은 수압으로 인해 물줄기 또한 얇게 분출됨으로, 이런 이유로 말에게 물을 먹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한다.
꿀벌도 찾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발길을 돌린 곳은 바르베리니 광장 인근의 해골사원,,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다'고 솔직히 말해 베네토 거리 가는 길에 얻어걸린 곳이었다. 정식명칭 Santa Maria della Concezione dei Cappuccini의 시작은 1626년 수도원 이전을 명한 우르바노 8세에 의해서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략 1528~1870년에 죽은 수도사 400여 명의 유골로 만들어졌으며, 초창기 성당 지하에 시신을 안치했던 반면, 후에 수도사들이 이를 이용해 공간을 장식하게 된 것으로, 그 해골과 뼈가 무려 3700구에 다다르고, 지하 예배당 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Quello che voi siete, noi eravamo; quello che noi siamo, voi sarete.'
'당신들이 지금 있는 모습은, 우리가 예전에 있던 모습이며, 우리가 지금 있는 모습은, 당신들의 미래입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죽은 형제들과의 영적 연결을 끊지 않기 위한 신앙적 행위라 말하고, 다른 이는 죽음은 삶의 대척점이 아닌 그 일부이기에 공포 아닌 성찰의 대상으로 바라보라는 메시지라 하는데, 곱씹다 보면 결국 같은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1유로만큼만 보고 나가라 하디?"
입장료 아닌 기부금을 받고 있어, 부득불 가겠다는 오빠를 대신해 1유로를 기부했다. 본디 기부금이라 하면, 기꺼이 마음이 동하는 선 혹은 양심의 마지노선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내 양심이 1유로란 것은 아니었지만, 들어갈 때와는 다리 한결 차분해진 오빠의 표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개방된 기부금 통에 있던 접힌 지폐를 보아서일까,, 개운치 못한 속마음이 참지 못하고 얄밉게 말을 뱉어냈지만 신성한 곳에서 웬 말이냐며 오빠는 데면스레 받아쳤다.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알파벳으로 새겨진 이정표는 가고자 한 곳을 정확히 안내하고 있었다. 서울 가로수길은 아직이지만, 이와 같은 선상으로 베네토 거리는 불리곤 한다. 현지인에게 만남의 장소인 동시에 관광객에겐 호기심의 장소인 지금의 유명세에 일조한 공신으로 1950년 로마로 몰려든 미국 영화 배급사를 꼽을 수 있는데, 실제 그들은 이곳을 많은 영화 속에 노출시켰다. 현재는 호텔, 출판사, 은행, 보험회사와 여행사가 밀집해 있지만, 그중 노천카페 거리로의 명성이 단연 으뜸이다.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걸까? 아니면 평일 것도 대낮이라 그런 걸까? 창문을 통해 들여다본 식당 내부는 물론 인도까지 영역을 넓힌 야외 테이블 역시 빈자리의 비중이 높았다. 그러나 거리 끝에는 보르게세 공원이 맞닿아 있어 연인 혹은 지인과의 식사 후 가벼운 산책까지 이어지는 이 모두가 가능한 베네토 거리는 분명 매력적인 장소임에 틀림없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 심적 여유를 부린 나를 비웃듯 열흘의 일정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예상치 못한 폭염과 장대비로 인해 계획과는 달리 어수선하고 당황스러웠음에도 무사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야간열차를 타야 하기에 근거리 이동을 결정하고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으로 향했다. 기념관 내부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갖가지 무기들과 비상식품에 다양한 군복까지 갖추고 있어 요약하면,, 군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군사 박물관인 듯했다. 그러나 꽤 넓은 내부는 다소 한산했고, 이곳저곳 살피는 군필자와는 달리 미필자는 사람 구경이 더 재밌는지라 밖으로 나와 베네치아 광장에 한데 얽혀 있는 자동차와 사람들을 쫓다 보니 꼬르소거리까지 다다랐고, 이름 모를 상점 안의 가죽점퍼에 시선이 꽂혔다. 199유로,,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었지만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상점 안으로 들어간 엄마는 가죽점퍼 소매 부분의 흠집을 핑계 삼아 165유로에 구입한다. 밑지고 판다는 식의 다소 불편해 보이는 점원과는 달리 엄마와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던 즉,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가이드를 위한 선물이라는 전제를 달지 않았어도 냉큼 챙겼으리라. 아빠와 오빠가 걸리지 않았다면 거짓말, 그럼에도 두 손은 가죽점퍼를 담은 쇼핑백을 놓지 않았다.
종일 캐리어를 보관해 주셨기에 샤워까지는 욕심부리지 않으려 했으나,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욕실로 향했다. 그런 속마음을 아셨는지 사장님은 싫은 내색 하나가 없었고, 커다란 대접에 라면을 가득 담아 주시며 이른 저녁이라 덧붙이기에 남은 국물에 야무지게 밥까지 말아먹은 후에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한다.
"다음은 신혼여행이었으면 좋겠네요. 로마에 오면 시간 내서 한 번 들려요. 따듯한 밥 대접하고 싶어요."
머뭇거리다가는 내 눈가 역시 사장님처럼 촉촉해지는 건 시간문제라, 인사를 건네고 재빨리 숙소를 나선 후 복잡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그제야 채 전하지 못한 속마음을 읊조렸다.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그리고 꼭 다시 만나요. 사장님..'
7시 10분 민휀행 열차를 기다리던 중, 떼르미니 역 내부에 유독 많은 인파가 모여 있어 한달음에 가보니 다름 아닌 과자를 나눠주고 있었다. 고맙게도 두 개의 부스가 마주하고 있어 부지런히 발도장을 찍은 결과는 꽤나 묵직했다. 획득한 수확물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린 이유는 다름 아닌 그날 때문이리라.
첫 여행, 비엔나에서의 일이었다. 프라하에서 시작한 감기는 비엔나에서 정점을 찍었고, 휴식을 선언한 엄마를 두고 홀로 숙소를 나섰다. 목적지는 호프부르크 왕궁도, 케른트너 거리도, 슈테판 성당도 아닌 앵커시계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앵커시계 근처 슈퍼였다. 전날 느닷없이 내린 비를 피할 겸 들른 마트 내부를 살피다 1유로 밀크초콜릿을 발견했다. 손바닥을 덮는 팔레트 모양의 초콜릿이 1유로라니, 게다가 비지떡이 아니었다. 원가격인지 행사가인지는 몰라도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간식으로나 기념품으로 전혀 손색이 없어, 부러 발걸음을 했다. 수중에는 30유로가 있었고, 스무 개를 구입하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으나 결국, 서른 개를 챙기고서야 마트를 등졌다. 이탈리아-스위스-파리의 남은 여정과 지인들의 얼굴은 소비욕구를 부추겼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리 구매해 둔 오지게 비싼 모차르트 초콜릿과 맛에서의 차이는 별반 없더란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오빠를 위한 선물이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을 모차르트 초콜릿은 내가 샀던 초콜릿 중 가장 비쌌다. 무튼, 야무지게 쓸어 담은 서른 개의 초콜릿을 두 봉지에 나눠 담고 숙소행 트램을 타기 위해 서역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스타벅스즈음 왔을까? 앞치마와 머리에 두건까지 두른 여성이 무언가를 나눠주고 있었고, 확인한 결과는 떠먹는 요구르트,, 비닐봉지 안에는 무려 세 개나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마트 시식코너를 지나쳤던 과거의 나는 없었다.
"my mom is over there!!"
내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 정확히 꽂혔던 시선을 원위치한 직원의 눈빛은 의심을 담은 경고와도 같았다. '설마 아빠를 입에 올리진 않겠지'하듯.. 그녀가 건넨 두 개의 비닐봉지까지 보태어져 꽤나 무거웠다. 트램비까지 탈탈 털었기에 숙소까지 걸어가야 했으나 족히 삼십 분을 걸을 자신이 없어 결국, 무임승차를 했다. 불심검문에 걸리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났었다. 돈을 몽땅 털은 목적이 초콜릿이었음에 한 대, 겁도 없이 무임승차한 것에 또 한 대,, 등짝에 불이 번쩍번쩍했더랬지. 당시에는 절대 웃을 수 없었지만 시간이란 녀석은 참 신통방통했다. 즉,, 처음만 어려운 법, 그다음은 식은 죽 먹기다.
민휀행 야간열차는 침대칸 아닌 콤파트먼트였고 탑승한 내부는 흡사 한증막을 방불케 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미적지근한 바람이 그나마 반가웠다. 덜커덩- 기차 바퀴가 움직인 후에야 그제야 객실 내에 냉방이 시작되었고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기도 전 역무원이 등장했다. 36유로에 구입한 좌석 티켓을 살핀 후 유레일패스를 들여다보더니 묘한 웃음을 짓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이런!!
"유레일패스 표기가 잘못되었으나 다시 적거나 아니면 벌금을 내십시오." 말하는 그에게,,
"뭐라고요?" 모르쇠로 나는 일관했다.
"잠깐 시간을 드리지요. 그러나 제가 다시 올 때는 경찰과 함께일 겁니다." 나를 겁박한 후에 그는 사라졌다.
소매를 붙잡을 찰나의 순간도 허락지 않고 사라진 역무원으로 인해 남겨진 나는 말 그대로 패닉상태였다. 이실직고 말하자면,, 피렌체-로마행 기차에 탑승한 날짜는 15일, 로마-민휀행 야간열차 탑승일은 28일이었다. 자고로 유레일패스란 소지자가 적은 날짜를 역무원이 확인했다는 의미로 펀칭하는 것이 당시의 시스템이었고, '15'라는 숫자를 또박또박 적은 나와는 달리 역무원은 펀칭기를 제대로 조준하지 않았다. 니스-베네치아행 야간열차에 탑승했던 날, 이미 펀칭된 칸에 다시 펀칭기를 눌렀다는 말 되시겠다. 결국 그의 오조준으로 인해 효용가치 있는 숫자 '15'를 '28'로 고쳤다. 우리가 소지한 패스는 셀렉트패스 세이브로, 정해진 기간 내 횟수 제한이 있는 2인용 티켓 총 2개였다. 혹여 그가 하나에만 오조준을 했더라면 욕심내지 않았겠지. 그러나 그는 같은 실수를 저질렀고, 그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기차를 한 번 더 탈 수 있다' 어느 누가 욕심내지 않으리오. 발각되지 않을 범위 내에서 요령 피울 자신감이 당연 있었기에 일을 저질렀다. 단, 가족들이 알면 반대할 것이 뻔하기에 비밀에 부쳤다. 패스는 내 담당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50%의 확률에 당한 셈이었다. 유레일패스 압수는 물론 벌금까지 물어야 하는 불법행위가 발각되었다. 머리가 멍해져 왔다. 잠깐, 경찰과 함께 온다고? 그로 인해 여행이 강제로 종료된다면?? 머릿속 회로들이 제자리를 잡기도 전 다시 등장한 역무원은 한층 기세등등했지만 그가 혼자란 사실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가 묻기에,,
"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당신과 똑같은 배찌를 착용한 직원이 유레일 패스에 날짜를 적었어요. 잘못이 있다면 그에게 있지 않을까요?" 나는 답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거짓말이라는 확신이었으리라.. 이 모두를 담아 나를 빤히 바라보던 역무원은 유레일패스에 펀칭기를 찍었다. 던지다시피 그가 건넨 패스의 '28'을 짓누른 펀칭기의 명백한 흔적을 바라보며 그제야 심장은 내려앉았다. 목덜미의 흥건한 땀은 조금 전의 긴박한 상황을 대신 설명하고 있었다. 어디서 이런 임기응변이 나왔는지,, 그것을 곱씹는 내 눈에 한껏 패인 아빠 이마의 주름과 튀어나올듯한 오빠의 눈과 연신 마른침을 삼키는 엄마의 모습이 들어왔고 결국, 자초지종을 열거하고 진심으로 잘못을 빈 후에 패스 날짜를 임의로 조작하지 않겠다는 맹세까지 거듭하고서야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티 난다야.. 것도 완전."
암요. 알다마다요.. 그렇지만 셀렉트패스 소지자라면 한번 즈음 욕심낼, 그로 인해 시도해 보았을 행동이었으리라. 분명,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일인 건 알지만 굴러 들어온 기회를 걷어찰 만큼 정직한 인간이 아닌 관계로 혹여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고민할 게 뻔하다. 혼자 아닌 가족이기에 알면서도 눈감아준 걸까? 가늠이 안 되는 그의 의중을 계산하는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속도를 내기 시작한 기차는 오르비에토를 지나 피렌체에 잠시 정차를 했고, 가지런한 은빛 머리칼의 단아한 할머니가 우리 칸에 합석하셨다. 독일인 할머니의 목적지 역시 민휀이었다. 아간열차에선 체면이란 없는 법,, 먼저 자리를 잡은 이가, 눕는 이가 임자란 얘기다. 창가에 머리를 고정한 채 새우잠을 청하는 동안 이어진 세 번의 차표검사 후 맞이한 새벽 네 시에 인접한 그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새하얀 설산은 아빠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잠시 정차한 곳은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였고, 사복 경찰로 보이는 두 사내와 수갑을 찬 남자가 기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를 보고 있자니 좀 전의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금 생각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한껏 처진 남자의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러나 이는 아랑곳없다는 듯 알프스의 산자락은 짙은 어둠 속에서도 새하얗게 웃고 있었다. 손에 닿는 눈뭉치는 차갑겠지만, 눈에 보이는 하얀 네 모습은 무척 따듯해 보이는구나. 널 만나러 갈 때까지 기다려 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