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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떠나 본다

11. 그렇게 우리는,, 한 걸음 나아간다.

- 가족과 떠난 유럽 배낭여행 -

by 슈크림빵

흔히 대전차 경기장으로 불리는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에선 때마침 축구 경기가 한창이라 그 모습이 마치 조기 축구를 즐기는 우리네 아침 풍경과 흡사하여 정겨웠다. 영화 <벤허>를 보았든 아니든 간에 이곳을 지나치는 이라면 영화의 방점과도 같던 대전차 경주 장면을 떠올릴 테지. '진실의 입' 앞에 서서 영화 속 주인공을 따라 하듯 말이다. 뜬금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다다른 곳은 Roseto comunale..


'16세기 말까지 정원이며 포도원이던 곳은 유대인 공동묘지로 변했다. 1934년 유대인 묘지가 베라노 기념비 묘지로 옮겨진 후, 공원부지로 지정되었고 1950년 종내, 시립 장미 정원이 되었다. 한때 신성했던 장소에 정원을 재현할 수 있게 해 준 감사의 표시로 정원 입구에 비석을 세웠고, 수집 구역의 화단을 나누는 길엔 유대교의 상징인 일곱 개의 가지가 있는 촛대인 메노라 모양을 놓음으로써,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곳은 중국과 몽골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온 대략 1000여 종을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대단위 장미 정원이다.'


1000종이라니!! 기껏해야 장미 한 송이가 전부였던 나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숫자였다. 하여, 그 향기가 흘러넘치리라 기대했건만, 아니었다. 장미의 개화시기는 보통 5-6월 사이라 했고, 지금이 한창인 때가 맞건만, 정원을 구석구석 살피진 않았어도, 분명한 것은 장미 군락지는 아니었다. 이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와는 달리 흰색 점프슈트 차림의 정원사는 바쁜 손놀림에도 불구하고 연신 싱글벌글이었다. 꽃 중의 꽃이라 불리는 장미보다는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대는 정원사의 모습이 한층 싱그러웠으며 매혹적이었다.


필라티노 언덕이 황제와 귀족들의 주거지였다면 아벤티노는 평민의 언덕이었다. 그러나 공화정을 거쳐 로마 제국으로 위세가 확장되면서 이곳 역시 황제와 귀족들의 거점이 되었고, '테베레강 건너'를 뜻하는 트라스테베레로 서민들은 옮겨갔다. 현재에도 아벤티노 언덕은 로마 내에서도 부촌으로 손꼽히고 있다. Clivo dei Publicii를 따라 걸으면 아벤티노 언덕의 전망대와도 같은 Giardino degli Aranci(사벨로 공원) 일명, 오렌지 정원에 닿는다. 이름처럼 탐스런 오렌지가 시선을 끌었지만 손끝을 잘못 놀릴 시엔 참담한 결과로 이어지기에 급히 마음을 접고 공원 끝 쪽의 벤치로 눈을 돌렸더니 돌난간 위에서 위험천만한 몸사위를 하고 있는 남녀가 아로새겨졌다. 사진사의 요구에 적극적인 여자와는 달리 남자의 포즈는 뻣뻣하기 그지없었고 표정 역시 어색했다. 이만큼 살아 보니 알겠더라. 일도 사랑도 준비 과정이 설레고 흥분된다는 것을, 막상 궤도로 진입을 하면 고생길인 것을 말이다. 하여, 모르고 지나칠 현재의 찰나를, 그리고 곧 닥쳐올 폭풍 같은 영원을 축복하고 또 애도했다.

아벤티노 언덕 꼭대기가 선사하는 전망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시선을 아래에 두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테베레강의 힘찬 물줄기가, 그 너머로는 중세 지구의 멋과 맛은 물론 진정한 로마를 엿볼 수 있는 트라스테베레가, 저 멀리로 시선을 두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웅장한 돔이 꽉 차게 들어왔다. 이마며 콧등 그리고 목덜미까지 맺힌 땀방울 하나가 없었건만, 때마침 살랑살랑 불어온 바람에 그저 시원했다.


"로마에서도 고급 주택가로 알려진 아벤티노 언덕 한편에 있는 오렌지 공원, 이곳에는 로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신기한 열쇠 구멍이 있어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베드로 성당의 돔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공원을 뒤로하고 주택을 끼로 걷기를 얼마, 커다란 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서 있었다. 대낮임에도 늘어선 줄 하며, 무장한 경찰들까지,, 민박집 사장님이 말씀해 주신 번지수를 제대로 찾았다. 굳게 닫힌 육중한 초록색 청동문 왼쪽에 박힌 금박 인쇄판이 시선을 끌었다. 'SOVRANO MILITARE ORDINE OSPEDALIERO DI SAN GIOVANNI DI GERUSALEMME DI RODI E DI MALTA' , 그 아래로 'VILLA MAGISTRALE - SEDE EXTRATERRITORIALE'라 적힌 꽤나 긴 알파벳의 열을 해석해 보면,, '성 요한의 예루살렘과 로도스와 몰타의 주권 군사 병원 기사단의 치외법권의 지역'이라는 뜻이었다. 묵직한 손잡이 아래로 칠이 벗겨진 채 뚫린 조그만 구멍(buco)은 신기한 열쇠 구멍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실제 열쇠 구멍은 오른쪽 철문에 달려 있었다. 조용하던 부촌이 어느 날 갑자기 들썩이기 시작한 건, 바로 이 구멍 때문이었다. buco를 통해 몰타기사단의 별장 안, 그리고 베드로 성당의 돔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며, 나아가 로마-몰타 기사단-바티칸 시국의 3개국을 내처 볼 수 있으니 실로 놀라운 체험이 아닐 수 없기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마음을 먹고 언덕을 오르는 것이다. 미심쩍은 마음으로 다가간 구멍 안에서는 실로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설마 했던 나를 호되게 야단치듯,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착각일까 싶어 눈을 깜박여도 봤지만 장관은 여전했다. 하여, 속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담고 또 담았다. 로마에서의 보물 찾기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문을 열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안은 한산했다. 그에 반하여 성당의 현관 포르티코(portico)에 있는 Bocca della Verita, '진실의 입'은 홀로 몸살을 앓는 중이었다. 약 1.75m의 이 원형 석판이 놓인 시기는 1630년 경으로 추정되나 정작 그 역사는 BC 1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 원형 석판이 '하수구 뚜껑'이라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비가 온 후에 트리톤의 입은 빗물을 금세 숨겨 버린다.'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을 닮은 하수구 뚜껑이었음을 암시하는 당시의 시구절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같은 선상에서 길 건너편에 있는 고대 로마의 하수도 클로이카 막시마(Cloaca Maxima)를 덮는 뚜껑이라는 설이 보편적이나 그리스에서 수입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 하며, 물이 빠지는 역할에 다소 부적합한 작은 구멍, 그리고 열고 닫기에 버거운 12000kg의 무게를 언급하며 이를 반박하는 이견이 뒤따랐다. 익히 알려진 대로 하수구 뚜껑이었든, 혹은 물을 뿜어대는 분수로 사용되었든 간에, 진실 규명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정작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간과해선 안 되는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Bocca는 '입', della는 '~의', Verita는 '진실'을 뜻하기에, 글자 그대로 '진실의 입'인 셈이다. 15세기 무렵 로마에서는 거짓을 말할 시에 손목이 잘린다고 믿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했다 한다. 이는 비단 남녀 간의 외도로 인한 진실 규명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로마의 행정관들은 거짓말을 일삼거나 자백하지 않는 범인들을 Bocca della Verita에 세웠다. 다시금 거짓을 말한 이의 손은 가차 없이 반토막이 났는데, 그것은 사람에 의해서였다. Bocca della Verita 뒤에 사람과 둔기를 숨겨두고 신호에 의해 형을 집행했다는 것이다. 숨겨진 장치 따윈 알 턱이 없는 구경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Bocca della Verita가 범인을 단죄한 것으로 알 테니 말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파리 그림자 하나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한데 모인 그들처럼 손을 집어넣지도,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지도 못했다. 영화에서도 재연된 것처럼,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온 이 관습은 영겁의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를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것, 그것뿐이랄까.


열린 출입문 사이로 삼겹살 익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대충 손만 씻고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먼저 자리를 잡은 이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가스불의 열기 때문인지 등 뒤로 쏠린 열여섯 개의 따가운 눈동자 때문인지 사장님의 두 뺨은 상기되어 있었다. 정대비와 폭염으로 인해 기진해진 체력을 보충하라는 사장님의 값진 선물이었다. 옷만큼이나 음식 역시 때와 장소의 영향을 받는다. 한국이었다면 으레 삼계탕을 먹겠지만, 이탈리아에선 삼겹살에 시저 상추면 끝이지. 노릇노릇 고소한 삼겹살은 삼겹살대로, 아삭한 식감의 시저 상추는 상추 대로, 그 본연의 맛에 더없이 충실했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행복감에 양어깨는 절로 춤을 추었다. 체면은 잠시 내려놓고 와구와구 먹어댔다. 그간 파악한 사장님의 영업 철학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는 물론, 젓가락과 입이 멈칫하지 않도록 그 흐름을 이어갔다. 탐스런 포도송이를 흔들며 몇 첨 남지 않은 삼겹살을 해치울 것을 명령하셨다. 너도 나도 배가 차오르자 오물거리느라 바빴던 입은 노선을 틀어, 소리를 뱉어냈다. 퇴사 후 여행 중인 여성이 내일의 목적지인 띠베리나 섬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자 엄마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마지막 여정이 다름 아닌 띠베리나 섬이었다.

"몸이 안 좋아요?"

"어째 좀 으스스하다."


좁다란 돌다리를 건너 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엄마가 팔을 감싸 쥐시기에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었다.


"신화나 설화, 그로 인한 석연치 않은 부분은 비단 우리만의 몫은 아니었어요. 티베리나 섬에 얽힌 전설을 보면 말이죠. 미움받는 폭군이자 로마의 마지막 왕이었던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시신을 시민들이 테베레 강에 던졌고, 시신이 가라앉은 그 자리에 흙과 모래가 쌓여 그렇게 섬이 되었다는 것 말입니다."

"폭정에 지쳐 봉기한 로마인들이 그의 개인 재산인 캄포 디 마르지오(Campo di Marzio)에서 수확한 밀을 테베레강에 던졌는데, 그 밀이 모여 섬의 형태를 이루었다는 또 다른 설이 있다죠."


찌찌뽕은 없었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웃었다.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인해, 범죄자 혹은 전염병자를 수용했어요. 그러나 등한시되었던 섬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르죠. BC 29년 로마 전역에 대규모의 전염병이 돌았고, 이에 로마 원로원은 그리스의 치료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의 신전을 지으라 지시합니다. 하여, 그 조각상을 얻기 위해 파견된 사절단은 에피다우로스(Epidauros)의 관습에 따라 신전에서 잡은 뱀 한 마리를 배에 태워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배에 있던 병자들이 씻은 듯이 낫자, 길조로 여겼죠. 사절단을 실은 배가 테베레강에 닿자마자 뱀은 헤엄쳐 티베리나 섬으로 몸을 숨겼어요. 이를 아스클레피오스의 계시라 여긴 로마인들은 그의 신전을 세워요. 한때 의술의 신에게 봉헌한 신전이 있던 자리엔 Basilica di San Bartolomeo all'Isola 성당이 있고요."


그녀는 천주교 신자였고, 로마에 온 이유 중 8할은 성지순례에 있다 했다. 500개가 넘는 성당을 다 돌아볼 수는 없지만, 크든 작든 간에 자신에게 와닿는 곳을 방문하리라 마음먹었다 했다. 또박또박 이어진 말끝에 차분히 마침표를 찍는 그녀를 보며 어두웠던 엄마의 얼굴빛은 본래의 색을 찾았다. 보고자, 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확실한 그녀에게 나 역시 한껏 기울었다.


"서울에도 그런 곳이 있다던데."

".. 있다고도 없다고도 못하겠네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엔 유배지였다는 기록이 있다지만, 현재는 목적도 규모도 전혀 다르니까요."

"아~ 그래요. 울컥 고향이 그리울 때 적잖이 위로가 되는 곳이라고.. 서울서 온 손님들이 그렇게들 말하길래.

본 적 없는 나는 그런가 보다 했지."

작정하고 건넨 사장님의 농담에 우리는 한목소리로 웃었다.


"그런 이유였어? 가톨릭 신자도 아닌 네가 섬에 가자 한 이유가,, 죽어도 본적은 서울이라는 거잖아."

사장님이 쏘아 올린 농담에 엄마는 제대로 흥이 나신 모양이었다. 이를 참지 못한 나는 방의 문고리를 잡고 다시금 웃음을 토했다.


그 어떤 폭염에도 오늘만은 문제없었다. 사장님께서 하사하신 얼음물이 우리에게 있었으니,, 저녁나절에야 귀가할 테니 넉넉하게 준비했다며 건넨 얼음 덩어리는 자그마치 2L, 것도 두 개였다.


"오늘도 불볕더위래요. 목 축이세요."


신발을 고쳐 신던 우리는 사장님의 목소리에 멈칫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망설이는 태도였다. 총합 여덟인 투숙객의 출입 시에 으레 사장님의 배웅과 마중이 이어졌다. 그 따듯한 배려에 감사함이 먼저였다. 그러나 배려에 의한 행동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건 그리 머지않아서였다. 문턱을 넘은 누군가의 캐리어가 채 문의 안쪽에 이르기 전에 바닥으로 넘어졌다. 거대한 물체는 이고 진 스스로의 무게를 여과 없이 토해냈고, 둔탁한 파열음은 바닥을 치고 복도에까지 쩌렁거렸다. 열린 출입문을 급히 닫는 사장님의 얼굴은 타코 남은 연탄재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작은 발길질에도 쉬 부서질 것처럼 건조했다. 도미노 현상의 다음 대상이 혹여 당신일까 싶어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한데 모여 입을 맞춘 적은 없었지만, 그러나 서로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처럼, 각자가 주의를 기울였고 또 조심했다. 가까운 미래에 사장님 역시 '폐업'의 수순을 밟겠지. 그러나 그것이 나로 인한 결과는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다른 이들 역시 한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굳게 믿었다. 가족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다. 그리고 목표한 바, 나아갈 바가 확실한 그녀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있듯, 제 자식을 앞세운 부모를 두고 의심할 바가 전혀 없었다.

이를 비단 우리만 눈치챘겠는가!! 터놓고 말은 안 했지만 사장님 역시 이런저런 행동으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하셨다. 떠나 보면 내 나라의 진가를 알게 된다고 하였던가!! 이와는 조금 다르나 나 역시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사람을 대하는 끓는 애틋함을 말이다. 솔직히 말해, 스치듯 안녕하면 될 일이었다. 머물다 먼지처럼 가볍게 떠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다시 찾은 민박집의 현실은 참담했다. 아흔아홉 칸은 아니었다 해도 꽤 널따란 규모의 방방마다 빼곡히 놓인 2층 침대의 빈자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낮이든 밤이든 투숙객들의 말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인원수에 비해 다소 부족했던 그래서 순번을 정해 이용해야 했던 욕실과 주방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정보를 공유하고, 한식을 접하고, 때론 길동무를 만날 수 있는 민박집은 여행자에게 있어 좋은 선택지였다. 하여, 이따금씩 혈기 왕성한 어린 학생들과 사장님과의 마찰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갔다. 그러나 새로이 터를 잡은 민박집의 주체는 사람이 아닌 사물인 듯했다.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협소한 공간에 사람보다 사물들의 비중이 컸고, 그것들이 한데 토해내는 소음이 사람의 소리를 압도했다. 쟁탈전이 사라진 욕실과 주방은 외려 쓸쓸하기만 했다. 끓는 온기가 사라진 작은 공간은 이상하리만치 크게 느껴졌고, 더없이 휑했고, 고로 적막했다. 그 모두를 이고 진 사장님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해 내 나라 동포는 아니었다. 부자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그간 비축해 둔 현금 역시 두둑하리라는 건 속된 말로 안 봐도 비디오였다. 하여, 덤덤히 넘겨도 되는데 자꾸 신경이 쓰였다. 깊이 각인된 사장님의 배려 때문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情)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인으로서 지키고 싶은 품위 때문인지, 아니 어쩌면 이역만리에서 다른 듯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친척들의 모습이 떠올라서인지, 것도 아니면 끝내 들키고 싶지 않았던 중년 여인의 속사정을 허락도 없이 봐 버린 탓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하여, 좋은 의미로다가 이 모두를 묵인하고 조용히 덮고 싶었다. 당시에 내가 되갚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으니.


* 에피다우로스(Epidauros) - 그리스 살로니카 만 남쪽 해안의 아르골리스에 있는 도시.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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