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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라라맘쌤 Nov 29. 2022

내 아들의 첫 도둑질

정직을 가르치는 법

우리 아들이 드디어 도둑질을 했다. 만 48개월이 지나고.     




유치원에서 유아들을 1년간 관찰하다 보면 어린아이지만 각자의 강점과 약점이 보인다. 어느 해에 만난 6살 여자 아이는 8살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의 높은 상황판단능력과 또래들을 아우르는 대단한 리더십과 타인의 감정을 쉽게 알아차리는 높은 정서지능을 갖춘 똘똘하고도 예쁜 아이였다. 내 딸이었으면 싶을 만큼 내 마음에 쏙 들게 행동했던 그 아이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도벽’이었다.

내가 교실 뒤편에서 아이들과 노는 사이 내 눈을 피해 교실 앞쪽에 놓인 사탕 통을 살살 열어 얼른 집어 호주머니에 넣는다. 아니면 바깥놀이시간에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교실로 들어와 사탕을 집어 입 속에 넣는다. 다시 놀이터로 나와서는 나를 피해 살살 돌아다닌다. 사탕을 다 먹을 때까지. 마스크가 있으니 아이의 범죄가 완전히 가려졌으리라.

‘그래. 아이들이 당연히 사탕이 먹고 싶겠지. 교실 앞에 둔 내 잘못이지’ 하며 사탕 통을 치웠다. 사탕을 가져갈 수 없던 아이는 다른 물건을 타깃으로 삼았다.

그날은 조그마한 토끼 피규어를 가지고 놀다가 손에 쥐고는 사물함에 있는 가방에 쏙 집어넣었다. 또한 내가 아이들 놀이를 위해 만들어 놓은 교구에 반짝이는 보석줄을 뜯어내고는 검은색 매직으로 뜯어진 흔적 위칠했다. 모든 아이들을 앉혀놓고 물었다.

“선생님이 만든 교구에서 보석줄 뜯은 사람이 누구니?”

그 아이를 보며 물었으나 순순히 대답해줄 리가 없다. 교사의 심증으로만 도둑으로 몰 수는 없으니 1차전은 거기서 마무리지었다.     

아이들이 바깥활동을 나간 사이 아이의 가방에서 토끼 피규어를 꺼냈다. 그리고 아이가 교실에 왔을 때 원무실에서 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시 물었다. 보석줄 가져갔느냐고. 역시 이번에도 순순히 대답해 주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던 토끼 피규어를 꺼냈다. 아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선생님이 너의 가방에서 꺼냈다. 유치원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된다.” 아이는 울면서 보석줄을 가져간 사람이 자신이라고 고백했다. 솔직히 말하니 용서해준다고 하며, 다시는 유치원 물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물건을 몰래 가져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시골로 이사 간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서리를 한 적이 있다.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당근밭에 당근을 뽑아 흙 털고 먹은 당근이 어찌나 맛있던지. 야채를 거의 안 먹었던 나는 그 계기로 당근을 잘 먹게 되어 편식은 고쳤으나, 당근밭주인이 우리 할머니에게 말해서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고, 그 이후로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도둑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한번씩 겪는 통과의례라고 말이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질 행동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게 있다. 누구나 한번쯤 도둑질을 할 수는 있으나 그 작은 도둑질이 성공 거듭수록 더 큰 도둑질로 이어진다는 걸.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옛말은 진리였다.     




유치원에 있던 작은 샌드위치 모형을 가져온 내 아들에게 차분히 물었다. 이걸 왜 가져왔느냐고. 아들은 머뭇거리며 “우리 집에 없어서요.”라고 대답했다. 아이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유치원에서 네가 스스로 만든 작품은 가져올 수 있지만 미술재료 또는 장난감을 선생님 몰래 가져오는 건 도둑질이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란다.”

내일 선생님께 다시 갖다 드리라고 하니, 아이가 울먹이면서 못한다고 했다. 아들이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낀 모양이다.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죄책감을 강하게 느껴서 선생님 앞에서 주눅 들게 하고 싶지도 않은 이 복잡한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결국 엄마가 나섰다. 아들의 담임선생님께 장문의 편지를 써서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하고, 장난감을 지퍼백에 넣어 보냈다. 아들은 선생님께 유치원 물건을 가져가면 안 된다는 설명을 듣고,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유치원에서는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해요.’라는 기본생활습관교육이 이루어진다.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완벽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정직하지 않음으로써 신뢰가 깨지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이번 계기를 통해 깨달았다. 내 딸이었으면 하던 아이가 도둑질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자 더 이상 그 아이를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아이가 내 눈치를 살피는 표정만 봐도 ‘뭐지? 이번엔 무슨 일을 꾸미려는 거지?’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양한 미술재료를 제공하는 게 두려워졌다. 무엇이 그 아이의 마음에 들어 또 도둑질을 하게 만들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내 눈앞에서 도둑질을 해주어 고마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들의 첫 도둑질을 내가 곧바로 알아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두 번째 도둑질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정직의 가치를 가르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을수록 아이가 누릴 수 있는 권한은 넓어진다. 그것이 리더가 되는 지름길이다. 도덕성은 아이의 경쟁력이다. 엘리트 유치원생은 바로 정직한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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