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 고향에 갔을 때, 언니, 동생이랑 셋이서 콩국수를 먹으러 갔다. 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소문난 콩국수 전문가게에 간 것이다. 들깻가루가 듬뿍 들어간 고소한 콩국수, 씻을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이 치웠다. 일정이 짧아 다시 한번 먹을 기회가 없었다.
대만에 돌아온 후에도 문득문득 그 고소한 콩국수의 맛이 생각났다. 맛있는 걸 많이 먹었는데도, 떠오르는 건 콩국수였다. 대만에도 최근 한국 식당이 늘고 있지만, 냉면 파는 데는 있어도 콩국수 파는 데는 없는 것 같다. 밀려오는 그리움을 달래 보며 다음에 한국에 갔을 때 두세 번 먹고 말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콩국수 만드는 걸 소개하는 유튜브를 접하게 되었다. 어머, 이렇게 간단히 만들 수 있다니! 두부로 만드는 콩국수였다. 재료는 두부, 땅콩버터, 깨, 소금, 물, 이게 전부였다. 이런 재료라면 이곳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나는 땅콩버터를 빼고 좀 응용해서 나의 콩국수 레시피를 만들었다.
<나의 콩국수 재료>
재료: 두부, 들깻가루, 검은깨, 아몬드, (호박씨), 소금, 물
면: 메밀면
재료를 믹서기에 갈고 면을 삶으면 끝이다.(호박씨는 굳이 넣지 않아도 됨. 냉장고 안에 있어서 사용한 것임.) 이 재료라면 건강면에서도 손색이 없다.
(제가 만든 메밀 콩국수입니다.)
위의 레시피로 만든 콩국수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그리던 맛을, 이 곳 대만에서,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나는 흡입하고 또 흡입했다. 며칠간 매일 먹어도 물리기는커녕 자꾸 생각이 났다. 밥에 말아먹기도 했다. 학교에 점심으로도 만들어 가서 밥에 말아먹었다. 나는 완전히 콩국수에 매료되고 말았다. 콩국수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으리... 콩국수의 맛을 한층 돋우기 위해서라면 김치 담그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웬 철 지난 콩국수냐고? 아니다, 이곳 가오슝은 1년의 2/3가 여름이라 아직도 짧은 소매 차림이다.
그렇게 연속 8일간을 흡입했다. 9일째 되던 날, 나는 자동 모드로 점심에 콩국수를 만들었다. 늘 하던 대로 먼저 한 모금 국물을 먹었다.
아, 이게 어찌 된 일일까?
국물에서 그 어떤 고소함도 사라졌고 맹물을 마시는 것 같다. 이럴 리가!
다시 한번 시도! 국물과 곁들어 국수를 먹어 보았다. 역시 그 어떤 맛도 느낄 수 없다. 콩국수가 나를 배신이라도 한 걸까? 어제까지 먹었던 그 맛이 부재였다.
나는 순간 멍해졌고,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소금을 안 넣었나? 넣었다. 적게 넣었나 싶어 소금을 좀 넣아 보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맛이 아니다. 아무리 봐도 재료에는 문제가 없다.
그때 번득이는 한 마디 "습관화에 의한 감각의 마비". 연속적으로 먹는 바람에 내 뇌가 그 맛에 반응하지 않게 된 것이다. 습관화에 의한 감각의 마비는 미각에 그치지 않고 오각에서 두루 일어난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매일 먹으면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음. 미각의 마비.
전율을 느꼈던 음악일지언정 매일 들으면 감흥이 일지 않음. 청각의 마비.
아름다운 광경이 매일 눈앞에 펼쳐진다면 감탄이 나오지 않음. 시각의 마비.
피부에 맞대는 자극도 자꾸 접하면 둔해짐. 촉각의 마비.
"감각의 마비"라는 생각 앞에, 나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 놓고 생각에 잠긴다.
우리의 삶에서 행복감이 머무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현저히 적은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습관화에 의한 감각의 마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평범함으로 돌변하는 건 습관화에 의해서 감각이 마비되고, 그게 우리네 감정으로 직속 연결된 것이라고.
내 주위를 둘러보니, 지금 입고 있는 옷, 들고 다니는 가방,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살고 있는 이곳들도 처음 인연이 맺어졌을 때는 설레고 가슴이 뛰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과 시선은 썰렁하고 더 이상 가슴이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뇌를 장착하고 있는 한, 인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행복한 시간은 찰나에 그쳐 버리고,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떠난다. 습관화에 의한 감각의 마비는 우리에게 늘 부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힘들게 시작한 행위가 매일 반복적으로 진행함에 따라 힘들다는 감각이 마비되기에 습관으로 안착하기도 한다.
그래서 뇌과학에서는 이런 뇌의 속성을 이해하고 잘 이용하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깨어 있으라 한다.
불교에서는 보통의 상태를 평화의 상태라 하고, 그 상태를 행복이라 가르친다. 이는 습관에 둔감해지고 새로운 것을 찾으라는 뇌의 속삭임에 속지 말라는 말과 상통할 듯싶다.
"행복이란 기쁨과 환희를 느끼는 것이 아닌, 가장 보통의 상태, 즉 평화의 상태를 얘기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늘 행복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기준이라 말하는 잘못된 생각이 높은 이상을 좇게 하고, 이것이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게 되는 이유입니다." (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하라, 159쪽)
콩국수는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어제의 그 맛이 오늘도 존재한다.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많은 것들도 본연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만 그 설렘을 느낄 감각이 마비되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