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씨름하고 있다.
충전이 필요한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우롱차를 우려 마셔 보건만 마실 때뿐이다. 아들이 권해준 피아노곡을 작게 틀어 놓아 보았다. 더 산만하다. 내 취향이 아니다 싶어, 명상음악으로 바꿨다. 그랬더니 얼마 없어 졸음이 오려고 한다. 오후도 아닌 아침 시간인데... 책상에 앉아 1시간 남짓 작업했더니, 한 5시간은 일한 것 같이 두뇌의 회전이 느려졌다.
요리저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는데 집중이 되지 않는다.
30분간 작업을 하니 뇌가 백기를 들었고, 그래도 엉덩이를 붙여 1시간을 버티니 이번엔 전신이 항의를 하는 것 같다. 안 되겠다 싶어, 일어나서 명상을 겸한 기공(氣功)을 한다. 20분 정도를 하니 마음이 좀 차분해졌고,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왜 집중이 안 되노? 실은 집중이 잘 안 된 건 어제부터였다.
두 달 전쯤에 어느 한 기관에서 한국어 시험 기출문제를 심사해 달라는 요청 메일이 왔다. 구체적인 작업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기출문제 심사라고 했고, 나도 그 간단한 메일 내용에 주저 없이 흔쾌히 ok 했다. 이런 의뢰는 틈틈이 있는 일이다. 요청 메일은 심플한 경우가 많고, 나도 보통 꼬치꼬치 묻지 않는다. 꼼꼼하지 못한 나의 성격 탓이기도 하고, 대만 스타일에 맞춰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그런 요청도, 승낙한 사실도 까마득히 잊혀질 무렵,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인터넷에서 심사해 달라는 내용이었고, 이번에도 구체적인 작업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심사 시간을 3주나 주기에 마감일까지 넉넉하다 싶어, 늘 하던 습관 대로 미뤄 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마감일 1주일을 남겨둔 시점에서 또 메일이 왔다. 심사 완료하면 담당자에게 통보해 달라고. 이건 독촉 메일이었다.
그래서 어제 메일을 열고 거기에 단 링크에 들어갔다.
심사 요령을 보고 나서 심사해야 할 문제란을 클릭했는데,
아니 이럴 수가! 1000개의 문항이 떡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심사를 3개의 관점에서 체크하라며, 하나하나 항목에 문제의 난이도를 기재하고, 취재에 부합한 지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고, 문제에 이상이 있으면 비고란에 그 내역을 일일이 타이프해야 한다.
아니, 이 1000개를 어느 세월에 다 한담? 이렇게 많으면 심사 요청할 때 말해줘야지.
수년간의 문제를 저장한 파일 같았다. 앞 쪽의 문제에는 부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들이 적지 않았다. 아마 오래전에 출제한 문제일 것이다.
큰일이다. 이걸 언제 다 하지?
심사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제 낮부터 밤까지 해서 150문제를 겨우 체크했다. 까마득하다. 이번 주에 출장도 있고 할 일도 많은데...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되도록 많이 해야지 하고 아침부터 바짝 긴장해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고작 1시간을 하고는 헉헉거리고 있다. 재미없게 느껴지면서, 집중력은 무단 외출 중. 열심히 하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힘겹기만 하다. 문항들을 노려보며 그들과 다투고 있다.
차분해진 상황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어제부터 발동이 걸린 감정, 그 감정이 나의 집중력을 앗아간 범인이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작업량이 많아서도 아니고, 심사 내용이 번거로워서도 아닌, 그 조바심이었다. 조바심에 서둘러하려고 하니, 집중이 안 되고, 집중이 안 되니 재미없고 힘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불교의 가르침처럼,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 집중이 안 되는 범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난 후 가만히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정들을 들여다보았더니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라앉고 어느새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결국 일, 월 이틀간 집중하니까 심사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더 빨리 가려는 마음은 초조함, 긴장감, 불안감이라는 감정을 불러온다. 그래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고 그에 따른 피로감을 초래하며, 그 피로감은 고스란히 육체가 떠맡게 되곤 한다. 마음과 몸, 그 둘은 다르지만 역동적으로 상호 작용을 하기에 말이다.
예전에는 마음을 알아차리려고 하기는커녕 그 마음을 무시하고, 그저 무식하게 몸을 혹사시켰다. 머그컵으로 하루 석 잔의 커피를 부어 넣으며 심신을 부린 결과, 대가를 톡톡히 치르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인생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몸으로 터득한 깨달음은 오롯이 내 것이 된다. "인생에는 실패는 존재하지 않고 학습만이 있다"라는 말은 우리네 인생을 긴 안목으로 보면 결코 틀린 말이 아닐 듯싶다.
이래서 중년도 살 만하다. 지난 과거의 시행착오에서 체득한 지혜를 가지고 앞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무모한 용기와 타오르는 열정의 청춘도 좋지만, 중년이 되어서야 은미할 수 있는 삶의 여유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신이 내게 청춘과 중년,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중년을 선택하겠다. 청춘은 한 번으로 족하다. 그보다 처음으로 사는 중년의 내게 집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