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들이 사돈이 되었다(https://brunch.co.kr/@476aa2c047cb4b6/81)"라는 주제로 글을 올렸던 적이 있다. 어제 사돈이 되어 버린 아들을 만나러 갔다. 일부러 간 건 아니지만 아들 학교가 있는 지역에 출장 갈 일이 있어 한 달 전에 아들과 예약해 두었고 하루 전에 잊지 말라는 문자를 보냈다. 한가한 내가 만나러 가지 않으면 아들 얼굴 잊을 판이다.
1달 전쯤에 만나 둘이서 밥을 먹을 때 아들은 자기 여자 친구 얘기를 꽤 많이 말해 주었다. 뛰어난 미모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작은 것에도 행복하다, 기쁘다는 말을 연발한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 잘 표현한다는 것. 여러 가지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림 그리기, 피아노 치기, 태권도, 에어로빅 등등. 운동도 좋아해서 같이 핼스장에 다닌다며 아들은 팔을 걷어 근육이 벤 팔뚝과 상반신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런 여자 친구랑 주말에 밖에 나가면 자신도 기분이 업되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가끔 좋아하는 초콜릿을 편의점에서 사서 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것.
같은 과의 그녀랑 오래오래 사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며, 자신을 잘 챙겨주어 "제2의 엄마"라고 했다. 마음속에는 이미 제1의 엄마가 되겠지 생각하면서 아들 얘기를 들었다.
만나고 싶어졌다. 아들의 "제2의 엄마"를. 잘 부탁한다고 깍듯이 인사라도 하지 않고서야...
내 학생 중에는 여학생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어학과다 보니 그런 거 같다. 같은 또래의 내 학생들과 비교해 봐도 꽤 개성 있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뭐니 뭐니 해도, 밝아졌고 아침 운동을 하고 학업에 의욕적으로 변한 아들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제2의 엄마의 효력이 대단함을 느꼈다.
어제 같이 만났다. 여자 친구가 원한다면 같이 보자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해준 것이다.
우리 셋은 아들이 예약해 둔 일식 가게에서 만났다. 초밥집이라고 하면 근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서민들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각자 먹고 싶은 걸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 아들과 그녀는 일어서서 차, 식기들을 준비했다. 그곳의 회는 신선했다. 그녀는 맛있다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 입, 표정, 몸짓 전신으로 표현했다. 그녀의 유쾌한 표정에 나도 덩달아 한층 맛있게 느껴졌다. 저렴한 값으로 몇 배의 즐거움을 산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 셋은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고 나서 자리를 옮겨 근처 커피숍으로 갔다.
(주문한 것 중 맨 처음 도착한 메인 요리 회덮밥입니다.)
차와 디저트를 시켜놓고 우리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들은 학교 얘기, 취미 생활들을 들려주었다. 둘은 자신들이 알차게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이야기 속에 버무리면서 근황을 알려 주었다. 그녀는 최근에 그린 그림을 보여주길래 근사하다며 내게 보내달라고 했더니 그림이며, 예전에 자전거로 전국을 한 바퀴 돌 때 찍은 영상을 라인으로 보내주었다.
나의 근황도 얘기했다. 브런치작가가 되어 글을 쓴다는 얘기, 하마터면 출장일을 까먹을 뻔했던 얘기, 아들의 과거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그녀와 나는 몇 번이나 만난 사이처럼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취미 생활을 나누는 가운데 "에센셜오일"의 얘기가 튀어나왔다. 내가 향수는 싫어하지만 에센셜오일은 좋아한다고 하자, 대뜸 그녀는 자신의 방에 에센셜오일이 몇 개 있다며 지금 가서 맡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뜻하지 않게 불쑥 그녀의 자취방까지 탐방하게 되었다.
그녀의 자취방은 커피숍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오토바이 한 대로 움직여야 해서 아들 보고 그녀를 먼저 태워다 주고 다시 나를 태우러 오라고 했더니, 그녀가 활짝 웃으며 그 틈을 이용해 방정리하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10분도 안 되어 아들이 나를 태우러 온 아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렇게 불쑥 가도 될까? 실례가 되지 아닐까?"
"아냐, 엄마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말한 거지. 그녀 부모님도 아직 와보지 않았어요."
"오늘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했지? 내 중국어 들으며 피곤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
"아냐. 딱 좋았어. 얼마나 즐거웠는데. 걘 원래 듣기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 천천히 쉬운 말로 해야 해. 그래서 엄마 중국어가 걔에겐 딱 맞아떨어졌어."
내게 격려와 위로의 말만 골라가며 하는 큰 아들은 여전하다고 생각했다.
자취방으로 가는 길에 가게에 들러 그녀가 좋아한다는 초콜릿 두 봉지를 사들고 갔다.
방 문을 노크하자, 활짝 웃으며 "잽싸게 방 정리했어요" 말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작지만 혼자서 공부하며 지내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
초콜릿을 건네니까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그녀는 이미 에센셜오일을 맡게 해 주려고 준비해 두었다. 내가 좋아하는 향기였다. 내게 의자를 건네며 앉으라고 했지만 사양하고 5분 정도 머물고 나왔다.
남자 친구 엄마에게 처음 만난 날 자신의 방을 보여주었고 라인을 연결해 준 건만으로 충분하고 감사했다.
나는 내 학생들에게도 가끔 말한다. 대학 시절에 기회가 있으면 이성을 사귀어 보라고. 사귀다 헤어져서 울며 불며 하는 모습도 적지 않게 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글에서도 적은 적이 있지만, 이 세상에는 반은 여자, 반은 남자로 이루어졌기에 이성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반쪽짜리 우주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성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비친 내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 모르는 게 또 자신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나를 알아간다.
누군가 내게 삶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 나는 "사랑"이라고 말할 것이다. 일도 공부도 나의 노력을 배신하지 않고 대가를 안겨 주었지만, 사랑이란 놈은 내 스타일 대로 열심히 노력한다고 반드시 성취가 있는 게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높은 경지에 있는 분들은 말한다. 기대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니, 중생인 내겐 60을 바라보는 지금도 어렵게 느껴진다.
그들에게 내가 감히 무슨 말을 하랴. 사랑의 맛은 수천 가지, 수만 가지일 게다. 그 수천 가지, 수만 가지에 해당하는 언어가 없어 몇 가지로 두리뭉실하게 표현할 뿐이다. 자신이 직접 겪으며 은미 해야만 알 수 있는 맛이다.
같이 격려하고 서로에게서 배우며 대학 시절 뜻있게 보내라는 평범한 말만 건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