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게 된 동기가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지난 경험들이 언젠가 내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 아쉬웠다.
또 하나의 이유는 마음속에 꽁꽁 묻어두었던 감정들을 밖으로 꺼내고 싶었다.
나만의 아픔, 나의 경험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저 깊디깊은 곳에서 바깥세상으로 내보내 햇볕을 맞게 한다면? 어떤 것은 눈부신 햇살에 압도되어 빛이 바랠 것이며, 어떤 것은 빛을 발하지 않을까? 그래서 떠날 것은 떠나고 머물 것은 머물게 하며 내 삶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삶의 중턱에서 지금까지의 여정을 기록하고 정리한다는 건 의의가 있을 거라고.
홀로서기 후, 나는 글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이 점점 짙어졌고, 그 생각의 터널이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을 만나게 해 준 것 같다. 브런치스토리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테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내겐 미지의 세계였다.
2024년 9월 3일, 드디어 브런치작가가 되어 첫 글을 올렸다.
홀로서기 후에 내게 안겨준 소중한 선물이다.
에세이 글쓰기는 내게 있어 또 하나의 도전이다. 이제까지 써온 연구 논문과 많이 다르다. 연구 논문은 감정 삽입, 주관적인 견해를 배제하여 조사 분석한 근거를 바탕으로 기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을 떠난 지 30년이 되고 생활 언어가 현지의 언어이다 보니, 지금 나는 만족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사라져 버린 셈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하는 현실. 모국어도 쓰지 않으면 현재 생활 언어에 의해 적지 않게 변형되고 퇴보한다. 물론 글쓰기 능력이 단순 언어 구사력만 있는다고 될 게 아니다.
내가 봐도 자신이 쓴 문장이 에세이 문체로서 어색하기 그지없다. 쓰면서 느꼈던 긴장과 주저함이 글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내 글을 보고 사람들이 웃지 않을까? 겁이 났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다. "일단 시작하라, 나중에 완벽해져라!". 나는 부딪혀 보자고 했다. 부딪히다 보면 조금씩 매끄러워질 거라고.
"글쓰기는 시작이 반이 아니라 전부다."라는 어느 이웃 작가의 글을 보았다.
시작이 반이어도 좋고 전부여도 좋다. 중요한 것은 글을 통해 내 삶이 더 나아지고 그런 삶을 오픈하여 모두와 공유하고, 더불어 같이 격려하고 배우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삶을 보낸다면 내 몸은 외국에 있지만 늘 마음은 한국, 한국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결코 혼자가 아니다.
글쓰기 속에서 수많은 과거들을 만난다.
속상하고 힘들었던 육아가 추억의 한 장이 되어 있는가 하면, 이미 졸업한 지 오래되어 이름을 떠올릴 수 없는 그 학생들이 지금 어디에서 뭘 할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한다.
전혀 서로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점들이 선으로 연결되는 순간은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해 준다.
아팠던 과거를 만나면 또다시아프다.
하루는 글을 쓰다 저녁이 되자 근처 커피숍에서 공부하는 작은 아들을 데리러 갔다. 고1 아들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거울로 내 표정을 체크하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어왔다.
"엄마, 무슨 일 있었지?”
“아니”
“오늘 누구 만났어?
“아니,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나온 거야.”
“근데, 왜 표정이 그래?”
“내 표정이 어떤데?”
“슬픈 표정 하잖아, 빨리 말해, 무슨 일인데?”
“어, 별일 아냐. 글을 좀 쓰다가 그만…”
“엄마, 가볍게 쓰면 되지, 왜 그렇게 열심히 써? 바보같이.”
그렇다. 가볍게 이웃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쓰면 되는데, 그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예전의 감정을 다시 한번 느낀다. 가슴이 조여 온다. 머릿속에서는 정리하고 흘러 보냈다고 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구나. 그냥 덮어두자. 그렇게 수없이 반복하며 쓰던 글을 멈추곤 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면서 적지 않은 변화를 느끼고 있다.
혼돈 속에 있던 과거가 조금씩 정리된다.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이무엇을 원하는지.
나를 관찰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이 순간 어떤 감정으로 있는지.
내 일상에 관심을 갖는다. 나의 시선과 신경이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브런치작가가 되어 또 하나의 기쁨이 있다.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이웃 작가들과 글을 통해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