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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Nov 14. 2024

홀로서기 후 내게 하는 선물

"뭘 가장 하고 싶니?" 마이홈으로 이사 온 후, 자신에게 물었다.

"식물 키우기."




인제 껏 식물을 키워 본 적이 없다.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사람도 아닌 식물에 마음을 줄 여유가 어디 있냐고. 내 몸이 지치고, 일이 바쁘고, 자식들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자진해서 식물을 들여다 보살핀다? 사서 고생하는 느낌이기도 했고 사치스러운 생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집을 나와 월세방에 살면서 문득 식물을 키우고 싶어졌다. 식물 키우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유튜브로 관련 영상을 보았다. 물론 그때는 좀 먼 훗날에 실현 가능할 거라 생각했었다.


무엇이든 간에 새로 시작한다는 것에는 항상 두려움과 설렘이란 감정이 교차한다. 그들을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죽이기 어렵다"는 식물을 하나 둘 들여놓기 시작했다. 요즘은 열정과 실행할 용의만 있으면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쉬운 세상이 되었다.



식물 키우기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치유의 힘이 있고 즐거움과 삶의 활력을 준다.


가끔씩 잎들을 우유에 적신 물티슈로 한 잎 한 잎 닦아주기도 한다. 예전에 유튜브 영상에서 잎 닦는 모습을 볼 때면 좀 번거롭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해 보니, 그 자체가 힐링이고, 성찰의 시간이다.



(심플한 거실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그들에게로 눈길이 향한다. 책상에 앉아 일할 때, 차 한잔 마실 때, 화장실에 들어가고 나올 때, 부엌에 들락날락할 때, 나의 시선은 자동 모드이다. 특히 외출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변함없는 초록초록한 모습에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을 받곤 한다.


내가 언제 이렇게 혼자 미소를 띠며 살았을까?




“우리 집, 참 편안해!”

식물에 전혀 관심을 안 두던, 아니 식물이 많아 산만하다며 짜증 내던 작은 아들이 화분 앞에 서서 말했다.


"이 정도의 뷰는 5성급 호텔이야" 둘이서 침대 위에 드러누워 창 너머로 비추는 야경을 보면서 내가 말하자,

“맞아” 아들이 맞장구를 쳐준다.


(방 창가 너머로 보이는 야경)



행복의 기준은 측정할 수도 제시할 수도 없지만, 그 기준은 평수도 아니고 값나가는 가구도 아님에 틀림없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주고 반겨주는 초록초록이 있는 이곳, 절로 미소 지어지는 편안한 이곳, 그리고 평온한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 행복 필수 조건이 충족된 것 같다.



 

만약 전 주인 영혼이 찾아와서 본다면, 180도 달라진 이 집을 보고 놀라지 않을까? 어쩌면 이미 와서 보고는 만족해하고 있을지도. 자신도 이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대신 이렇게 건강한 삶을 살아줘서 고맙다고.

나도 그에게 감사하다. 이렇게 좋은 아파트를 내게 넘겨줘서.




존 러스킨은 말했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나는 이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하루가 아니라, 나의 속도와 방식으로, 나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여정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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