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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Nov 10. 2024

법정에 선 그에게서 나를 보다

전화가 걸려왔다. 대만의 한 법원이다.

이혼 소송 안의 상대가 한국인이라서 법정에 와서 통역해달라는 의뢰였다.

그런 안건으로 통역을 해 본 적도 없고 중국어도 유창하지 않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통역 내용이 어렵지 않다며 어떻게 해줄 수 없냐는 부탁에 마지못해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별거하고 석 달쯤 된 때의 일이다. 그 통역일이 다가오자 이 기회에 간접적으로나마 선행 학습을 해두자는 생각이 들었다.  




소송 안건의 자료가 법원에서 먼저 이메일로 보내왔다.

30대의 부부로서 대만인 아내가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슬하에 두 자녀가 있는데, 2살짜리 어린 아들은 아내가, 첫째 딸은 남편이 부양하겠다는 제기이다.

이혼 사유는 남편으로서 무책임하고, 장사를 같이 하면서 불화가 종종 생겨 집에도 안 들어와 차에서 지내기도 하고, 끝내는 최근에 딸을 데리고 훌쩍 한국으로 돌아간 후, 딸과 통화도 제대로 못하게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사유를 보니 한국 남편에게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당일 날, 나는 1시간 전에 법원에 도착했다. 1층 로비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바로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여행 가방을 옆에 두고 한국말로 누군가와 계속 전화 통화하고 있는 남자, 소송당한 그 남편이었다. 나는 일부러 그에게서 좀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자료를 훑어보며 기다렸다.




정해진 시간대로 법정이 열렸고, 나는 지시 대로 화면에 띄워진 아내의 소송 제기 사유를 한국어로 통역했다. 통역을 반쯤 했을 즈음에, 남편분이 사유에 거짓이 많다고 말하는 바람에 통역을 멈추고, 그가 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요점은 자신이 한국에서 경영하던 가게를 정리하러 한국에 간 사이에, 아내가 바람이 나서 이혼을 제기했다고 한다. 자신이 왜 저 여자에게 소송당해서 이 자리에 와야 하는지 조차 모르겠고, 오히려 저 여자를 고소하고 위자료를 청구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다시 중국어로 통역했다. 그 아내는 남편의 말에 반발할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러한 내용이 오가는 와 중, 검사는 딱 잘라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이혼 사유에 대해 논하지 않겠다. 이혼 제기에 대한 동의와 자녀 부양 문제의 동의 여부만 남편에게 묻겠다고 했다.


남편분은 이혼은 할 의향이 있지만 자녀 부양 건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자녀 둘을 다 자신이 한국에서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평행선을 달리며 타협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타협할 시간 30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남편분은 바람피운 아내에게 화가 잔뜩 나 있었고, 그런 아내에게 자식을 주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날 ‘이혼에 동의, 친권 양육권에 반대’로 막을 내렸다. 3개월쯤 후에 다시 법정이 열릴 거라 했다.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같아 기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기차에서 내린 후에도 근처 커피숍을 찾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 남편분에게 말했다.


“여자 혼자 몸으로 두 자녀를 부양하는 것도 힘든데, 남자 혼자서 두 자녀를 부양하는 건 어려워요. 감정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아내에 대한 증오로 자녀양육에 젊음을 다 바치려고요? 자신이 행복해야 곁에 있는 자녀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자녀를 보복의 무기로 삼으면 모두가 다 불행해져요.”

"가족 분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나요?"

"우리 어머니도 어린 아들을 아내에게 양육하라고 하세요."내 물음에 그가 답했다.


또 나는 말했다.

“사람 마음, 변하는 거예요. 부부의 감정이 식어 아내의 마음에 다른 사람이 들어간 걸 너무 미워하지 말고, 부부의 연이 끝에 닿았으면 놓아주고 축복해 주세요.”

"축복해 주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이가 대답했다.

“대만에 있는 아들, 보고 싶지 않으세요?"

"보고 싶죠."

"그럼, 데리고 사는 따님의 사진이나 영상을 먼저 아내에게 보내 주세요. 그러면 아내도 데리고 사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줄 테니까요. 아내에게서 아들을 빼앗겠다는 생각 내려놓고, 그래도 아들을 키우겠다고 하니 다행 아니에요?”




과거의 나 자신에게 말해주지 못한 말들을 지금 나는 입 밖으로 꺼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자신이 행복해야 해요. 그게 최상의 복수예요. 행복하고 멋있는 아빠가 되어 있으면 대만에 있는 아들이 반드시 아빠를 찾아갈 거예요. 아들 크면 한국으로 유학 오도록 유도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그날까지 따님 잘 키우고, 하시는 사업 잘하고 건강도 잘 챙기세요.”


그리고 당부의 말도 했다.


“대만에는 좋은 사람이 많이 있으니 대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내려놓으세요.”




심성이 착한 분 같았다. 처음에는 아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호소했지만, 몇 시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내 진심이 전달된 것일까, 점차 누그러지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겠다고 하고,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지금 그는 예쁜 따님과 한국에서 지내고 있으며 가끔 따님의 건강한 모습의 영상을 내게 보내주기도 한다.




이혼 소송 통역일에서,  "이혼" "자녀 양육" 문제를 두고 과거에 실행하지 못했던 아쉬움, 앞으로의 각오들이 교차하는 시간이 되었다.

자녀 양육, 이는 우리네 최상의 과제이겠지만, 먼 훗날 살아온 날들을 돌아봤을 때, 자녀 양육이 우리네 인생의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녀 양육으로 인해 인생드라마의 주연 자리를 빼앗기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녀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연이 닿아 맺어진 부부, 그 끈을 끊는다고 완전히 끊을 수도 없는 관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며, 아주 가끔은 상대의 안녕을 빌어주는 그런 여유로운 삶. 그대도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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