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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Nov 07. 2024

내가 속았나?!

첫 대면이다.

경매로 산 아파트 내부를 오늘 처음 보러 간다. 여러 절차가 있어서 낙찰 후 거의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설렘 반 불안 반. 손꼽아 기다렸던 날인데 아침부터 뒤숭생숭하다.

약속한 시간에 도착. 그런데 무슨 일일까? 아파트 입구에 경찰차가 세워져 있고, 그 경찰차 앞에 중개인, 경찰이 서 있었다. 경찰을 보는 순간 내 심장은 쿵쾅쿵쾅.

내가 산 매물에 문제가 있나?! 이어 법원 차도 왔다. 무슨 큰일이 생겼나?!

나는 순식간에 긴장감에 얼어붙었다.  


중개인은 노련한 움직임으로 우리 셋을 인솔했다. 난 중개인 옆에 바짝 달라붙었고, 법원 직원과 경찰은 우리 둘 뒤를 따라 걸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왜 경찰, 법원 직원이 왔는지 중개인에게 물어볼 기회도 없이 9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중개인이 열쇠로 문을 열었다. 전기가 다 끊겨 있어서 낮임에도 불구하고 안이 캄캄했다. 발을 내부에 들여놓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거의 1년 동안 사람이 안 살아서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을 거라 예측은 했지만...

아까 1층 홀을 거쳐 정원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 문을 열기 전까지, 구축 8년이란 세월의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2-3년이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안은 마치 폐허가 같았다.

나는 그 갭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방 2개로 알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방은 1개밖에 없었고, 작은 탈의실 같은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평수도 지금 월세집보다 큰데, 비슷하게 느껴졌다.

내가 속았나?!


나는 정신 나간 사람 마냥 어둠 속을 헤매며 이곳저곳 둘러보고, 법원 직원과 중개인은 내부에 있는 물건들을 체크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경찰은 문 입구에 부동자세로 서 있다. 대만의 경매는 소유권 이전 등기 후 매물 인수에 경찰과 법원 직원이 현장에 온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불이 안 들어오니까 어두운 데다 벽의 색이 어두워서 내부를 잘 판단할 수 없었다. 중개인이 오늘 오후에 바로 전기가 들어온다고 하길래 내일 아침에 다시 오기로 했다. 내부의 물품을 체크하고 기록함으로써 인수 행정 절차가 다 마무리된 것이다.


행정상 아무런 문제 없이 아파트가 내게로 넘어왔는데 기분이 엉망진창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부풀어 올랐던 기분은 온데간데없다.

"경매 매물은 우리도 내부 확인이 안 돼요." 중개인은 내 표정을 보며 말을 했다.

수고해 준 중개인에게 미소로 답하려고 했지만 내 얼굴 근육이 이미 굳어져 움직여 주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아파트로 향했다. 불을 켜서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구조이며 어떤 인테리어인지.

심호흡을 한 후, 나는 문을 열고 스위치를 켰다. 그 순간, 온갖 조명으로 형형색색의 빛으로 반짝반짝 빛을 내었다. 멍해졌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

마치 크리스마스이브의 어느 한 주점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어제 그렇게 찾아도 방 하나밖에 없었던 수수께끼가 풀렸다. 방 1개와 거실이 빠처럼 꾸며 있었다. 독신이니까 방 2개가 필요 없어서 그랬겠지. 창가에는 극장 안 커튼을 연상하게 하는 빛 차단의 어두운 색의 커튼으로 햇빛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어서 어제 그렇게 어두컴컴했던 것이었다. 먼지 쌓인 커튼을 젖히니 햇빛이 잘 들어왔다.


벽에는 온갖 장식과 그림이 붙여 있었고, 해외여행에서 수집한 듯한 것들도 걸려 있었다. 그리고 집 전체 벽에는 방음 처리를 위해 방음 쿠션이 더덕더덕 붙여 있었고 천장에는 일반 가정에서 볼 수 없는 인테리어를 해서 드라이플라워가 던져 있었다. 내가 20대였을 때, 그러니까 30년 전쯤에 어느 한 주점에서 본 듯한 그런 광경이었다.



                      (좀 치운 후의 거실 모습. 보관되어 있는 사진이 이거밖에 없네요.)

(철거 전 거실 모습, 여기는 방으로 변신했어요)


내가 너무 섣불리 결정을 내렸나? 왜 내가 이런 집을 구매해야만 했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나는 그 집을 걸어 나와 뭐에 홀린 사람처럼 어느 한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발길이 닿은 곳은 그 근처의 아파트 건설 현장 뒤편에 마련된 소개 센터였다. 아파트를 막 살 것처럼 행색을 했었는지, 한 직원이 나와 정중하게 아파트 주변 환경 및 구조를 설명하고 가격도 말해주었다. 내가 구매한 아파트 동일 면적의 가격은 경매 가격의 곱하기 2의 금액이었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거기에서 건네준 페트병의 물을 들고 빠져나왔다. 신축 아파트 가격을 듣고 나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산 아파트를 잘 리모델링하자.




며칠 후, 리모델링 견적을 뽑아보려고 3명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불렀다. 그들은 내부 구조를 보고는 놀람을 금치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아니, 이 멀쩡한 아파트를 어떻게 이 모양으로 만들어?" 60대의 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와, 이거 인테리어에 돈 좀 썼는데."

벽에 걸린 장식품을 보고 "이런 골동품, 비쌀 텐데." 40대의 아저씨가 말을 했다.


즐겁게 살다 짧은 생을 마감한 영혼! 삶의 방식이 수천가지라 한다지만 매일 몸 담고 쉬고 자는 보금자리를 이렇게 만들다니....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입을 모아 지금 당장 견적을 뽑기 어렵다고 했다. 내부를 전부 철거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손상이 날지 모르고, 그에 따라 공사 비용에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3일에 걸쳐 철거 공사가 끝났다. 다행스럽게도 철거한 후 바닥은 멀쩡했다.


철거 후, 또 하나의 수수께끼도 풀렸다. 방음 처리를 하기 위해 원래 벽에서 간격을 두어 가짜 벽이 만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벽 사이에 방음을 위해 일부러 간격을 두었기 때문에 빈 공간이 꽤나 숨겨져 있었다. 그래서 평수보다 좁게 느껴졌던 것이다. 아파트 자체는 오래되지 않아 바닥이나 부엌, 욕실은 수리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외는 전부 철거하여 리모델링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리모델링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지인의 소개를 받아 가성비 좋은 설계를 해 주었고, 내가 원하는 리모델링의 구조도 아주 심플해서 인터넷에서 의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리모델링 마친 후 거실에 긴 테이블과 책장을 들여놓은 모습, 거실 오른쪽에 방 2개, 왼쪽에 부엌, 욕실, 베란다가 있어요)

(욕실)


리모델링하기 전에는 이 아파트를 세 주고, 나는 살 던 집에서 그냥 월세로 살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하나 내 손이 가고 정리를 해 나가다 보니 애착이 생겼다.


그래, 이 집에서 인생 후반전을 출발하자!






사진 출처: https://news.unist.ac.kr/kor/column_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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