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해서 직접 월세를 내 보니, 대만의 집세가 물가에 비해 비싸다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대만의 호텔 숙박비가 한국보다 비싸다. 물가로 치면, 한국보다 싸야 할 텐데 말이다.
월세에 곱하기 12개월, 그리고 다시 곱하기 5년, 10년.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려보니, 무리해서라도 1년 후에 자그마한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고 싶어졌다. 물론 대출 껴서이다. 그래서 밤이 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지금까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현 시세를 조금씩 파악해 보려고 부동산 사이트를 드려다 보고 있었다.
별거한 지 40일이 되던 날, 그날도 나는 부동산 사이트에서 매물로 나와 있는 아파트들을 스캔하며 내려가는데 한 아파트에 내 눈이 멈췄다.
어, 이게 뭐야? 왜 이리 싸? 같은 건축 연수, 평수의 매물을 비교해 보니 싸도 너무 싸다!
클릭해서 자세히 읽어 보니 경매 매물이었다. 경매라는 중국어를 그때 처음 알았다. 경매는 한국어에서는 ‘競賣’라는 한자를 쓰는데, 대만에서는 ‘法拍屋’(‘法院拍賣房屋’의 약자: ‘법원이 경매하는 주택’의 뜻)’라서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경매 매물이 일반 매매들 속에 섞여 있던 것이다. 그 아파트의 위치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그 아파트 바로 앞에 지하철 역과 초등학교가 있으며, 걸어서 3분 거리에 과기대학교도 있다. 더군다나 글로벌 반도체 기업인 TSMC 2 나노 생산 공장이 증설 예정된 지역이라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바로 중개인과 만날 약속을 했다.
지리적으로 괜찮고 건축한 지 8년밖에 안 되는 데 시가 보다 한참 싸다니… 경매 제3차이다 보니 처음에 내놓은 가격에서 엄청 많이 다운된 것이다. 대만 경매는 20%씩 다운되니 40%가 다운된 가격. 그래서 인터넷에서 그 매물 주소를 가지고 검색에 검색을 하면서 어떤 정보가 없을까 눈을 부릅뜨고 살펴봤다.
관련 정보를 찾았다!
그 아파트는 1년 전인 작년 9월에 집주인이 부엌에서 쓰러져 사망한 지 2일 후에 발견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이 아파트를 임대할 때 서명했던 서약서 내용을 떠올렸다. 서약서 조항에 이 집에서 죽으면 안 된다는 조항이 들어 있어 피식 웃고만 내용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집을 세 주기도 팔기도 어려워서였다. 인터넷에서 뜬 법원의 문서에 적힌 집주인이 사망한 채로 발견했다는 그 내용이 입찰되지 못한 채 싼 매물로 내 놓인 것이다.
나는 은행원인 지인에게 그러한 내용을 보내고 그의 생각을 물었다. 그 지인도 그러한 사연이 있는 아파트라면 그만두라고 했다. 바로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취소했다. 취소 이유도 사실 대로 말했다. 그랬더니 중개인은 "자연사"라며 다른 매물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설렘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허탈한 마음으로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하면서 아파트의 사연을 떠올렸다. 그때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 뇌리를 스쳤다. 경전에서 읽은 내용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자식을 잃고 슬픔에 잠기다 정신적으로 이상해진 한 여인이 석가모니를 찾아가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며 병든 자신을 치유해 달라고 애걸했다. 그걸 들은 석가모니께서는 마을에 내려가 한 열매씨를 얻어오면 병을 치유해 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열매씨는 당시 인도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거였다. 단,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의 열매씨라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셨다.
그 여인은 열매씨를 구하러 마을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당시에는 집에서 임종을 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여인은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의 아픔이 누구에게나 겪는 아픔이란 걸. 그 발로 그 여인은 부처님 밑에서 수행의 길을 걸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사람이 죽었다는 게 무슨 괴이한 일도 아니고, 生이 있으면 死가 있듯이, 생사야 말로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나 자신도 어느 날 내 집에서 쓰러져 생을 마감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내 집의 가치가 떨어진다! 죽은 영혼이 팔짝 뛰며 분노할 일이 아닐까?
우리는 은연중 "죽음"이란 두 글자를 회피한다. 동료 교수들 단톡방이 있는데, 보통 그곳에 올린 문자에 바로바로 회신들이 오간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 학과 현직 교수의 부고를 알리며 추모식에 같이 갈 동료를 찾는 내 문자에 대부분의 교수들이 그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소식 앞에서 당황하거나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지 몰라 회신을 보류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죽음은 우리 일상에 늘 존재하며, 오늘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틀림없는 건 우리도 그날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 죽음의 장소가 병원이 아니라 자신의 집이라는 게 문제가 될까? 이런 생각에 이르니, 나는 산책하는 와 중에 핸드폰으로 바로 중개인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다음 날, 그 해당 아파트의 홀에서 만나 중개인으로부터 좀 더 자세한 내역을 듣게 되었다. 그 집주인은 49세의 독신 남성으로서 슬하에 자식이 없고 생전에 지병을 갖고 있었다. 나이 드신 어머님이 계신데, 최근에 남편까지 돌아가셔서 신속하게 아파트 처분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은행 차압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개인은 이번 제3차 입찰이 안 되면 어머님이 참 안 되었다고 덧붙였다.
입찰 전 날, 나는 출근하는 길에 다시 그 아파트로 발길을 향했다. 경매 매물이라서 내부는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밖에서 그 아파트를 바라보며 나 자신에게 물었다.
진정으로 이 아파트를 원하는가? Yes.
나 혼자만이 아니라 집주인의 어머니, 중개인 모두가 웃을 수 있도록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Yes.
다음 날 나는 처음으로 대만의 법원으로 향했다. 나는 내 다짐 대로 집주인의 어머니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입찰 금액을 높여 썼다. 이 매물에 입찰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8명, 내가 낙찰되었다. 모든 게 난생처음 경험하는 거라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얼떨결에 뜻밖의 마이홈이 생겨난 것이다. 그것도 시세보다 많이 싸게 내 손에 들어왔다.
웨인 다이어는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꾸면, 당신이 보는 사물도 변한다."라고 했다. 우리가 직면하는 현상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그때 그 불경의 내용을 떠오르지 않았다면 이 아파트는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다.
토마스 에디슨은 "기회는 작업복을 입고 일처럼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놓치고 만다. "라고 했다. 토마스 에디슨의 말처럼 기회라는 놈은 우리 곁에 있는데, 그는 “기회”라고 이름표를 붙여 나타나주지 않는다. 때로는 볼품없는 형상으로, 때로는 불행이라는 가면을 뒤집고 나타난다.
이번 기회는 나의 절실함에 의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아파트를 사이트에서 본 것은 입찰 1주일을 남긴 때였다. 이 1주일간의 시간이 아주 분주하게 돌아갔다. 입찰 시 지급할 보증금도 부족한 상황. 게다가 대만은 한국과 달리 낙찰되면 1주일 이내에 잔액을 전부 입금해야 한다. 주저할 시간이 없었으며 대출받을 은행을 찾아야 했다. 영주권만 있고 신분증이 없는 나는 은행 대출 또한 쉽지 않았다. 중개인은 내 상황을 이해하고 전력을 다해 이곳저곳 수소문해서 은행을 찾아 주었다. 한국 가족들에게 빌리기도 했다.
"때를 놓치지 마라. 사람은 이것을 대단치 않게 여기기 때문에 기회가 와도 그것을 잡을 줄 모르고 때가 오지 않는다고 불평만 한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는 데일 카네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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