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로 가득했던 시간들, 이를 악물며 버텼던 나날들, 몸이 아파 서글펐고 무력하게 느껴졌던 순간들, 곧 쓰러질 것 같은 피로에 주저앉았던 나날들, 세상이 꺼져 버릴 듯한 우울감에 허우적거렸던 시간들, 혼자 외국에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시간들…
세월의 나이만큼 겹겹이 쌓이고 뒤엉켜진 감정들. 한 때는 나를 삼켜버릴 듯한 거센 파도,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회오리바람이 되어 나의 심신을 정면으로 공격하기도 했었다.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하고, 나름 마음공부 하다 보니 점차 조용히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려놓으라 하고, 누군가는 흘러가게 하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속세를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 오롯이 내 안을 들여다보며 수행을 한다면 모를까. 내려놓는 게, 흘러가게 한다는 게 마음처럼 쉬우면 굳이 속세를 떠나 출가를 하며 수행의 길을 걷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떤 계기로 내 의지와 무관하게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오랜 세월 세포 속까지 스며든 감정들을 내려놓는 데는 그 만한 시간, 깊은 성찰이 불가피한가 보다.
나는 일본 유학 시절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지만, 인생의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음을 나는 몰랐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의 부재. 대만에서의 삶에 대한 큰 그림이 없었고, 남편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도 없었다. 미래의 그림이 스케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둘째 임신, 출산을 하고, 두 아들의 육아와 언어 장벽 속에서 전임 교수직을 병행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삶의 흐름에 내동댕이 쳐진 채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멈춰 서서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내 몸을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기 전까지 말이다.
결혼 생활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이를 해결할 방법이나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남편과 코피 나게 싸우면서라도, 폭언을 휘두르면서라도항의하고 방법을 찾아야 했었다. 미덕으로 포장된 인내는 결코 현명한 삶의 자세가 아니었다. 아니, 너무 일찍 포기해 버렸는지 모른다. 그래도 최소한 결혼 생활의 의의는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다. 나의 직무태만.
준비되지 않은 대만 생활의 초창기에 나는 너무 연약했고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었다. 그리고 그런 불편하고 기울어진 생활이 해를 거듭해 간 것이었다.
지난 18년간의 대만 생활에서 아픔만 남기고 내게 얻은 건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얻은 것도 많다.
사랑하는 두 아들의 성장을 보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가졌으며 일에서 성취감도 있어서 정교수로 승진도 했다. 게다가, 같이 동행할 수 있는 학생들이 늘 내 곁에 있고 좋은 대만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이것들은 내 삶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대만에서 지낸 시간들 속에는 힘든 날도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시간도 많지 않은가? 어찌 불편한 것을 꺼리고 만족스러운 것만으로 내 인생 드라마를 엮으려 하는가? 불행과 행복, 이 둘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공존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만족하는 것만큼이나 불만족스러운 것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인생의 규칙이 아니던가? 핑크빛만으로 물들인 인생이 어데 있으랴? 있다면 그건 가공된 인생일 것이다.
김나위는 <내가 나를 위로할 때>에서 말하고 있다.
“좋은 일과 나쁜 일 중 우리의 뇌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나쁜 일이며, 안 좋은 일의 전파력이 좋은 일의 전파력보다 훨씬 빠르다. 그래서 우리가 나의 삶에서도, 남의 삶에서도 불행을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불행과 행복이 공존하는 삶인데도, 나는 그동안 불행을 부둥켜안고 곱씹으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이러한 삶의 자세는 나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내 심신을 병들게 했다. 그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 그 또한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 이제 더 이상 과거를 돌아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자. 나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용감하게 새 삶으로 한 발 내디뎠다.
헬렌 켈러는"이 세상에 오직 기쁨만 있다면 우리는 용기와 인내를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했다.
그렇다!
지난 삶 속에서 나는 강인해졌고, 인내심을 배웠으며, 지혜를 배우려고 애썼다. 그래서 내 과거의 아픔들은 내 인생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다가온 시련들은 각각 나름의 이유가 있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넓은 세계가 있음을 알리는 일깨움이었고, 배움에 게을리하지 말라는 채찍질이었으며, 영적으로 내 마음을 다듬고 관리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러기에 지난날의 시련들은 선물이었고 축복이라 생각하자.
나는 내 과거의 아픔들과 화해하고 2024년을 맞이하련다.
2024년 맞이하는 오늘, 나의 다짐을 가슴에 새긴다.
{내 인생 드라마의 "작가"로서 내 삶의 스토리를 쓰고, 그 속에서 "주연"으로 살며, 동시에 주연으로 잘 살고 있는지 "관찰자"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