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아들이 대학 들어가면 사돈이 된다고. 웃고 스쳐 지나간 말이었는데 요즘 어쩐지 그 말이 자꾸 떠오르게 된다.
큰 아들이 대학 2학년이 되었다. 대만은 9월에 개강하니까 2학년이 된 지 1달쯤 된 것이다.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에 짐을 갖다주고 아들을 남겨두고 돌아오며 마음이 심란했던 게 엊그제 같기만 하다.
기숙사 방은 4인용으로 책상이 4개 놓여 있고 책상 위에 침대가 짜여 있었다. 침대 위에 가져간 이불을 깔아주는데 아찔했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잠결에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서 천장에 부딪히지는 않을까? 침대 위에서 걸려고 발을 내디디면 그냥 밑으로 떨어질 텐데 괜찮을까?
자는 동안 방을 한 번 회전하는 잠버릇이 있기에 기숙사 침대를 보며 이런저런 불안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 불안함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아들과 포옹하고는 혼자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온 게 1년 전 일이 되었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 기숙사 생활,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매일 아들과 같은 또래의 학생들을 접하다 보니 학생들 모습에 자신의 아들을 겹쳐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아들놈은 대학에 들어간 후 내게 연락이 없다. 핸드폰을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으면서 문자 한 통을 보내지 않는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어느 날 아침, "早安(안녕)" "잘 지내니?" 문자를 보냈다. 그 인사말은 "연락 좀 하며 살자"라는 마음의 표현이란 걸 알까?
머지않아 회신이 왔다. 잘 지내고 있다며 엄마도 건강 잘 챙기며 지내라고 했다. 그 후 몇 번인가 그렇게 아침 인사를 보냈더니 하루는 "엄마, 일 없으면 이렇게 문자 보내지 마세요. 저 바빠요."라는 문자가 왔다.
아들만 둘 있는 내게 주위의 사람들은 말했었다. "딸이 있어야 한다"라든가 "아들만 있어 외롭겠다"라든가. 그때 나는 일반론이라고 생각하며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딸 같은 큰 아들이 있으니까. 큰 아들은 딸처럼 배려심이 있고 엄마인 내 마음을 비교적 잘 헤아리는 아이였다.
어릴 적에는 중국어 선생님인 양, 나를 포기하지 않고 인내심 갖고 중국어를 잘 고쳐주고 가르쳐주었다.
내가 화가 나서 거칠게 내뱉는 말을 되받아 화를 내기보다, 내 손을 잡거나 포옹하며 "엄마, 많이 힘들지!"라든가, "엄마, 오늘 너무 피곤해 있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아들의 한 마디에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화가 금세 사라지기도 했었다.
그런 아들이 일주일이 지나도, 이 주일 지나도 연락 한 통 없다. 1학년 1학기 때는 새로운 대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겠지 생각했다. 2학년이 된 지금은 1달이 다 되어가는 데 전화, 문자 한 통 없다. 가끔 집에 오면 그동안 있었던 중요한 일들을 내게 들려주긴 한다.
자신을 돌아보았다. 스무 살인 나는 친구가 좋았다. 부모가 어떻게 지내고 있나 걱정하는데 마음을 쓰기보다 친구와 같이 어울리는 데 집중했었다. 아들이 나를 닮았나 보다. 이 또한 성장해 나가는 한 과정이라는 걸 안다. 자신의 친구, 취미, 학업, 진로 문제 등으로 그의 심신은 틈 없이 돌아가고 있겠지.
고2가 된 작은 아들도 2년 후면 대학에 들어가고 내 품을 떠난다. 빨리 내 자유 시간이 더 많기를 바라는 반면, 나 혼자의 생활이 어떨지를 상상해 본다. 아들들 연락 기다리며 외로워하지 말고 내 삶에 충실하며 살아야지.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그들도 그렇게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