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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Oct 14. 2024

성장하지 않는 건 나였다!

나는 요 며칠간 작은 아들과 티격태격하는 일들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얼마나 우리가 유치한 지 낱낱이 파헤치고 싶었다. 그렇게 한다면 이런 유치하게 티격태격하는 일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부끄럽지만, 여기에 대표적인 몇 가지만. 


1. <차 안에서>

엄마: [도시락을 먹고 난 후] 입 좀 닦아.

아들: 닦으려고 하는 데 왜 말을 해. 내가 어린애야?

엄마: (내가 말하지 않으면 넌 안 닦잖아.) 


2. <식당 가려고 차에서 내리면서>

엄마: 외투를 왜 들고 가?

아들: 왜 이런 일에 표정이 안 좋아. 들고 가든 말든 이게 뭔 대수로운 일이라고.

엄마: (차 안에 놔두면 좋잖아. 불필요한 걸 들고 가서 또 까먹고 놔두고 오면 어쩌려고. 인제까지 몇 벌을 잃어버렸어?)


3. <책 정리하는 상황>

엄마: 주머니에 책 잘 놓아. 접히잖아.

아들: 내가 잘 놓으려고 하는 데 왜 일일이 말을 하는 거야. 짜증 나게.


4. <밥 먹고 나서 유튜브를 보고 있는 상황>

엄마: 먹고 나서 바로 양치질해.

아들: ......(들은 척도 하지 않음)


5. <샤워 후 욕실 안을 들여다보고>

엄마: 아들, 벗은 옷 그냥 놔두면 어떡해?

아들: 깜박했어. 엄마는 까먹을 때 없어?


6.

엄마: 가방 자크 좀 닫지.

아들: 안 닫으면 어떤데?

엄마: (이놈아, 가방 자크 안 닫는 사람이 어딨어? 가방 안이 다 보이잖아.)




내가 하는 이 말들은 언제부터 아들에게 건네었던 말인가? 유치원 때 아니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2 아들에게 내뱉는 이 말들, 도대체 몇 번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일까? 말하지 않으면 안 한다고 해서 건넨 지겨운 말들.

그런데 아들은 이 수년간 여전히 자발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말한다고 해도 개선되지 않는다. 개선할 의향이 없는 이에게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니 듣는 이가 짜증이 나는 것이다. "내가 어린 얘야?"라는 말은 "나는 못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함의가 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의향이 없다.




몇 년 전 티베스의 한 린포체께서 대만에 오셨을 때 강연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들이 방을 어지럽혀 정리를 하지 않거나 머리를 단정히 하지 않거나 하는 일에 열을 올릴 필요 없다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훗날 여자 친구가 생기면 자연히 다 하게 된다고.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주시는 린포체께서 이런 사소한 문제를 대만 전국에서 몰려온 수백 명 앞에서 말씀하신다는 게 석연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일어나는 화, 불쾌감 등은 국적, 인종을 불문하고, 이러한 사소한 문제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도 대만에 오시기 전에 다른 몇 나라를 들려오신 것이었다.




나는 아들을 보며 줄곧 언제면 성장할 거야?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정작 나는 유치원, 초등학교 때 곁에 있던 엄마,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닐까? 사고의 틀, 언어의 틀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변화 없이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들을 깨우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냥 기다리자. 언젠가 자신이 필요성을 느껴 행동으로 옮기는 날까지. 늘 같은 방법으로, 같은 언어, 같은 톤으로 말을 하니 그 어떤 신선함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 나부터 변화하고 내가 먼저 성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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