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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Oct 11. 2024

자식 농사는 수행자의 길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진리는 불교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 전반에서 통용될 정도로 거역할 수 있는 삶의 진리이다. 이 대진리에 토를 달려는 생각은 1도 없다.


자식 농사는 어떤가? '자식 농사가 중요하다', '자식 농사가 최고의 노후대책이다'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자식 농사 참 어렵다!'라는 말을 나도 하고, 많은 이들이 토해 내기도 한다. 


자식 농사에서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면 그야말로 어느 정도 공평하다. 우리는 이러한 대진리를 신봉해서일까? 영제 교육이라든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정성 들여 물을 주고 김을 매고 게다가 영양분까지 아낌없이 뿌리고 또 뿌린다. 


풍성한 자식 농사를 거둔 누군가는 혹여나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좋은 종자, 좋은 환경이라야 좋은 결실이 나온다고. 당연히 그러리라.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례 또한 우리는 무수히 보고 들어왔다. 내가 아는 한 교수님은 두 자녀를 두고 계신데, 한 자녀는 공부도 잘하고, 훗날 남이 부러워할 기업에 취업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자녀는 고등학교 때 등교 거부를 하고 방 안에 틀어박기를 1년이나 했다. 같은 부모에, 같은 환경에서 자란 자녀가 왜 결과가 다른 것일까?




일반 농사는 매년 "농한기"철이 찾아오건만, 자식 농사는 사시사철 풀가동이다. 한 번 맺어진 인연, 이생을 하직하기 전까지 이어진다. 불행하게도 캥거루족이라는 신어까지 나오는 상황인지라, 투자한 만큼 회수하겠다는 마음 따위는 이미 내려놓은 지 한참이고, 자신 앞가름만이라도 해주면 감사할 뿐이다.




자식 농사가 일반 농사와 가장 다른 하나는 "추수"에 대한 개념이 아닐까 싶다. 일반 농사는 추수할 목표의 결과물이 명확하다. 그러나 자식 농사는 그렇지 않다. 나의 DNA를 어느 정도 물려받아 내 몸에서 태어났지만 나와 다른 생명체. 단지 내 몸을 빌려 나왔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결과물을 거둬드릴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섣불리 풍작이다 흉작이다 판단해서는 대단히 위험하기도 하다. 앞으로 밟아야 할 무수한 단계 중, 그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부모는 모두가 수행자의 마음으로 자식 농사를 해야 할 것이다. 자식 농사가 어렵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이 수행자의 마음을 지니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않을까? 자식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인 내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미성년자가 되기 전까지는 아낌없는 사랑을 쏟되, 성년이 되면 남이라 여겨야 한다고 했다. 이건 법륜 스님의 말씀이시다.  


자식을 낳고 한평생 키우는 의의는 뭘까? 인간의 본능이 번식이기 때문이라고만 하기엔 인생이 좀 허무하다. 그래도 뭔가 의의를 찾고 싶다.

그건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한 생명을 자립의 문턱까지 이를 때까지 한 계단 한 계단 자녀와 같이 끌고 밀며 오르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수행자로서 기다림이라는 인내심과 세상의 진리를 보는 지혜를 익혀간다. 




불현듯 이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건, 어제 한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보고서였다.  

"사실, 아들 넌 완벽해, 그 자체로"라는 말. 

가슴속에 꼭 붙들고 싶은 말이다.

두 아들을 키우며 나는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키워왔나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둘째로 태어난 아들을 첫째 아들의 잣대로 재단하지는 않았을까?

사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서 꽤 많은 과거의 감정들이 재정리되었다. 


짜증과 버거웠던 감정들이 나의 이기심, 무지에서 생겨났음을.

아들의 사랑 표현이 첫째와 다름을.


이렇게 부족한 엄마를 엄마라고 인정하며 기대고 사랑해 주는 아들에게 새삼 감사하게 느껴진다. 

"아들, 넌 완벽해, 그 자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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