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동물, 반려 식물이 우리의 생활공간 속으로 들어온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 나는 막 식물 키우기에 도전한 초보자 중 한 사람. 초보자라서 식물 키우기에 대해 그 어떤 지식이나 철학을 꺼낸다는 건 우습지만, 많은 이들이 느끼는 얘기들을 해 보려고 한다. 식물 키우기는 자식 키우기와 많이 유사하다고 하는데, 그와 관련해서 식물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르침을 4가지로 정리해볼까 한다.
"은은한 사랑"
식물 키우기에 막 도전한 이들은 그에 대한 마음이 뜨겁다. 사랑이 과도해서 그만 물을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별이 되고 마는 경우. 반대로 화끈히 달아오른 애정이 금세 식어버려 관심을 안 쏟거나 못 쏟아 별이 되고 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대는 말한다. 우리는 은은한 사랑을 원한다고. 과도한 지나친 관심은 버겁고, 냉정한 무관심은 너무 슬프다고. 적절한 시기에 살짝 손길을 내밀어주고, 그 외의 시간에는 한 발치 뒤로 물러서서 바라봐주기, 그것이 이상적이라 한다.
과도한 사랑은 아이를 망쳐 놓고, 무관심은 비폭력의 폭력이 된다. 그 적절함이 관건인데, 이는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찾아가는 과정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 달콤하기만 하지 않고 맵지만도 하지 않은 달콤 매콤한 그 맛.
얼마의 시행착오를 치른 후에 우리는 프로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유일무이"
식물을 키우다 보면 물이 적든 좀 많든, 빛이 충분하든 좀 부족하든, 묵묵히 잘 자라주는 애가 있는가 하면, 신경이 자꾸 가게 하는 애도 있다. 심지어 하나의 화분 안에 심겨놓아 있는데 어떤 줄기는 새순까지 보이며 무럭무럭 자라는가 하면, 어떤 줄기는 비실비실하다. 벌레가 생겼나 보지만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그대는 말한다. 우리는 제각기 다르다고. 다른 뿌리, 다른 식물과 비교하지 말고 나를 나 그대로 바라봐달라고 한다. 각기 다른 생명체인데, 왜 자꾸 비교하냐고. 이러면 스트레스받는다고.
인간 심리에서 치명적인 그놈의 비교하는 마음. 자식 농사에서는 그 마음이 쉴 새 없이 판을 친다. 남의 자식과 비교를 하고, 다른 형제, 친지와 비교를 하며, 말도 안 대는 잣대를 들이대고 재단해 버린다.
아이 입장에서는 다르게 낳아놓고 비교를 해대니, 억울하고 용서할 수 없다. 자신을 가장 이해해줘야 할 위치에 있는 부모인데. 그래서 우리 부모를 향한 반항은 이유가 없는 게 아니다.
"욕심 내려놓기"
하나의 화분 안에 너무 많이 심어 있으면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즉 솎아내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물 키우기에 한하지 않고, 과일 재배 등 일반 농사에서 솎아내기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대는 말한다. 불필요한 것들을 비어내 달라고 한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야만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고.
부모의 과대한 기대가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경우가 있다. 부모의 기대, 욕심으로 자식의 진로를 결정하고, 그 길을 60대까지 걸어온 후, 부모가 원하는 길이었지,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고 말하는 지인이 있다.
우리 부모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식이 움직여주길 바라길 마음이 은연 중 있는 것 같다. 자식이 부모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모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생명체일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기다려주기"
수경 재배를 하면 뿌리내리는 걸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은데, 줄기를 잘라 흙에다 심으면 도대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조바심에 몇 번이고 흙을 파헤쳐보기도 한다. 바쁜 일상 속에 깜박하고 있을 무렵에 새 순이 돋아난다. 새 순이 확인되면 그때부터 몰라보게 빨리 폭풍성장하는 걸 보게 된다.
그대는 말한다. 우리는 하루도 결코 쉬지 않고 성장하고 있으니까 그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달라고 한다. 눈으로 결과를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아들, 빨리 커라!" 아들이 어릴 적 하루는 내가 꺼낸 말이었다.
"엄마, 서두리지 마. 나 천천히 크면 안 돼?" 5살쯤 된 작은 아들은 그때도 어처구니없는 내 주문에 머리를 한 대 쥐어박는 듯한 대답을 했다.
자녀를 위해 뭔가를 해주려 애쓰기보다 그저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게 자녀에게 더 도움이 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걸 시간이 흘러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목표 달성 코스에 비단길을 찾아 주려 애쓰지만 기나긴 인생길에서 비단길이 험한 길이 되기도 하고, 험하다고 생각한 길이 결과적으로 비단길이었음을 뒤늦게 알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