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브런치 작가의 육아 관련 글을 보다 보면, 그래 이렇게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육아에 어디 모범 답안지가 있으랴마는 아이에게 집중해야만 쓸 수 있는 글들을 볼 때면, 아들에게 하염없이 미안함이 밀려온다.
큰 아들은 일본 유학 때 낳고, 출산해서 반년 후에 박사 논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다렸던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육아와 논문 집필을 병행하느라 아기의 성장 과정을 오롯이 지켜보지 못했고, 어느새 처리해야 할 하나의 일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는 첫째보다 더 참혹한 환경이었다. 대만에 와서 대학의 전임 교수 일을 한 지 1년 후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몸의 회복도 완전히 된 상황도 아니었고 교수 일도 풀어나가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던 터라, 아이 하나 키우는 것도 내게는 버거운 상황이었다. 안 되는 중국어로 일본어를 가르치며, 처리해야 할 행정일 앞에 하루하루가 지쳐가고 있었다.
일 외에도 남편과의 관계도 넉넉지 않았다. 외국인으로서 헤쳐나가야 할 일과 육아에 지쳐가는 아내에게 관심을 표하지 않는 방관자 같은 남편. 시집의 대가족 생활에 힘들어하는 외국인 아내를 아량곳하지 않는 남편에게 회의를 느꼈다. 그런 상황에서 둘째가 태어난 것이다.
나는 둘째를 낳고 병원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이혼을 생각했다. 뱃속에 있을 때도 생각했다. 그러니 둘째는 늘 힘들어하고 불안해하고 슬퍼하고 짜증이 나 있는 엄마를 뱃속에서부터 느끼며 태어나 자란 셈이다. 그래서 둘째를 키우면서 그 애가 예민하고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일 때면, "내 탓이오"라고 생각하게도 되었다.
둘째는 첫째와 많이 달랐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선인장 같은 그의 성격이었다. 예쁘고 귀엽지만 잘못 만지면 언제나 다칠 것만 같았다. 내가 거칠게 말하면 더 거친 말이 두 배로 되어 돌아왔고, 내가 화를 내면 질세라 한층 더 화를 내고, 내가 언성을 높이면 더 큰 소리로 말을 했다.
4,5살쯤이었을 것이다. 그날도 형이랑 놀다 싸움이 되고 형에게 덤비는 걸 보고 오늘은 버릇 좀 고쳐야겠다고 몽둥이를 찾는 시늉을 하는데 그 어린애가 자신도 몽둥이를 찾는 것이었다.
놀다가 둘이 범벅이 되어 싸우는 걸 떼어놓고 화를 내면, 큰 애는 바로 "엄마, 잘못했어요!"라고 하지만, 작은 애에게는 그런 말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루는 엉덩이를 2대 정도 때렸더니, 4살쯤 된 아이가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울어댔다. 세게 때린 것도 아닌데 그런 아이를 보며 바짝 긴장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이 애는 매로 다스릴 수 있는 아이가 아니라는 걸. 사랑으로 키우자고 생각했다.
사랑으로 키우려면 내게 사랑이 충만해야 한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저 힘들다고 느꼈다. 아이가 별나다고 생각했다. 별난 건 틀림없지만, 문제아는 아니다. 나와 다르고 첫째와 다른 것뿐이었다. 내가 낳았지만 이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생각이 들어, 2살이 넘을 쯤에 하루는 그의 베이비시터와 상의한 적이 있다. 경험이 풍부한 그녀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 애는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고 그 생각을 굽히지 않는 아이"라고.
큰 아들이 대학을 들어가고, 작은 아들이 고1이 될 때, 살던 집에서 나와 우리는 둘만의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평온이 들어서면서 작은 아들을 마주해 보니 그가 예전과 달리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선인장처럼 뾰족한 면이 여전히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부드러운 면이 있다. 거칠게 쏟아붓는 말속을 잘 되새김질해 보면 엄마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게임을 붙들고 있는 아들에게는 지쳐있는 심신을 달래 보려는 애씀이 있다. 예리하게 내 표정을 관찰하는 그의 눈에는 엄마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
예전에는 표면에 드러난 그의 말투, 표정, 태도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나 보다. 내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니까 아들 하는 말에 집중할 수 있고, 그가 하는 말의 의도, 그가 미처 꺼내지 못한 말들을 하나둘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작은 아들과 앞으로 잘 지낼 수 있는 자신이 생겨난다. 그를 더 많이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다.
내 샘터가 메말라 있어서 아들에게 사랑을 듬뿍 줄 수 없었다.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 아들의 특이함을 포용하지 못했다. 아들에게 문제가 있어 힘들었던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해 삐꺽거렸다.
피곤하다고 생각할 때는 아들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어루만지며 나를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