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시험일이 코 앞에 닥쳐오면 내게 물어오는 작은 아들의 질문. 웃기만 하며 대답하지 않는 내게 아들이 불만을 표한다. 몇 번이고 물어오길래 가끔은 숫자를 입 밖으로 꺼내면, 이번엔 더 큰 불만을 토로한다.
"엄만 날 우습게 알아. 내가 그 정도밖에 못 할 것 같아?"
감정 기복이 심한 아이라서 부담이 될까 봐 조심스레 말한 숫자인데, 그 숫자를 붙들고 만만한 엄마에게 트집을 잡으려 한다.
시험은 보통 이틀간 치러진다. 고등학교 시험 과목은 6-7개 과목. 시험이 끝나면 바로 그다음 날부터 성적들이 하나 둘 나오고 3일 쯤 지나면 석차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석차가 나오는 날은 비상등이 켜진다. 비상등이 켜진 날에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 얼굴 표정,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불똥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과목 한 과목 성적들이 나오고 그 성적을 알 때마다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혼자만 왔다 갔다 하면 좋으련만, 이 엄마까지 끌고 가려고 한다.
우스운 것은, 자신의 성적만 볼 때는 천국행이었는데, 옆 친구 성적을 보는 순간 핸들을 바꾸고 지옥행이 된다. 반대인 경우도 있다. 자신의 부주의로 쉬운 문제가 틀렸다고 화가 치밀어오던 참에, 자신보다 성적 안 좋은 경쟁자 성적을 아는 순간 화가 희석되기도 한다. 그러니 시험 보기 전 준비하느라 몸은 힘들어 있는 데다, 보고 난 후 마음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쉴 새 없는 처량한 마음과 몸!
아들 성적에 내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큰 아들이 고등학교 때는 지금과 좀 달랐다. 그 때는 시험이 끝나면 아들이 결과를 알려주는 걸 기다리지 못해 몰래 학교 홈피에 들어가 학번,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성적과 석차를 확인하곤 했다. 꼭 한 두 과목은 결과가 늦게 나와, 시험 때마다 두세 번 홈피를 기웃거리곤 했다. 몰래 훔쳐본 후 시치미를 뚝 떼고는, 처음 듣는 것처럼 대응하곤 했다. 몰래 보는 게 아들에게 나쁜 건만은 아니다. 성적을 미리 봤기 때문에 성적이 안 좋을 때 아들에게 해줄 위로의 말을 여유를 가지고 준비할 수 있으니까.
큰 아들이 중1 때 일이었다. 체육반에서 테니스를 하면서 1학기 때 처음으로 전교 3등을 했다. 아들도 나도 기뻐했다. 운동과 학업 병행하면서 얻은 성과라, 그는 목표 달성한 듯 뿌듯해 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아 공포로 돌변했다. 아들은 3등 한 그날부터 3등의 자리를 지키려고 자신을 혹사했다. 호된 훈련 속에 산더미처럼 쌓인 숙제, 하루가 멀다 치뤄지는 시험 준비에 분투했다.
석차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공부에 집중하라고 수없이 말했건만, 아들은 1학년 내내 긴장의 줄을 놓지 않았다. 그가 중2가 되던 어느 날, "엄마, 내 실력은 00등이에요." 이 정도 유지하면 될 것 같아요. 지칠 대로 지친 끝에 얻은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작은 아들이 고1 종료식이 끝나 며칠 후에 학교에서 성적표가 날아왔다. 시험 때마다 아들 입으로 들어 석차는 대략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1년간 학교홈피에 들어가 석차를 확인한 적이 없다.
아들 둘을 키우면서 그리고 학교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보면서 작은 깨달음이 있다. 중요한 것은 "석차"가 아니라 "태도(마음가짐)"라는 걸.
대학에 와서도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하던 습관을 고수하며 석차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학생이 있는데, 그런 학생은 공부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경향이 많다. 석차 자체가 공부의 목적인 양 말이다.
석차에 집착하면 늘 남의 성적을 의식하게 된다.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좋은 성적일지라도 남의 성적에 의해 기쁨을 만끽할 기회를 잃고 만다. 그리고 자신을 질책하기 쉽다. 그런 시간들이 늘다 보면 자신이 하는 공부에 대해 좋아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의무와 책임으로 책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했는지에 따라, 4년간의 성과, 나아가 진로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공부에 국한된 일이 아닐 것이다.
중학생인 큰 아들이 하루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엄마, 학교 공부 그렇게 재미있지 않아요. 그래서 석차에서라도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거예요."
"맞어, 중,고등학교 공부는 재미없어. 엄마도 재미없어서 공부 못했어.""
중, 고등학교 과정을 보면 시험의 연속이고, 시험을 위한 공부인 경우가 많다. 그런 아들들을 보며 "수고한다!"라고밖에 할 수 없는 무능함.
"훗날 정말 좋아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밟아야 하는 과정이란다. 산 정상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면 정상까지 오르는 수고를 참아내야 하잖아."라고, 나 자신도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을 무력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