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고등학교도 "會考"라는 고입 시험을 보고 성적에 맞춰 학교가 결정된다. 세부적인 면에서 한국과 좀 다르지만, 어쨌건 고입 시험을 보고 성적에 따라 학교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작은 아들은 가고 싶었던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국어에 약한 아들은 국어 시험을 볼 때 과도하게 긴장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중요한 시험에서는 그 긴장감이 고도에 달하는 듯하다. 고입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고 싶었던 학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전학시험을 보겠다고 했다. 모집 인원수는 학교마다 다르며, 그 학교의 경우는 1명이었다.
작은 아들은 1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자 전학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시험 과목은 국, 영, 수이고, 준비 기간은 1달, 나름 열심히 했다. 1달간 그놈의 국어를 붙들고 씨름했다. 자신은 결코 국어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애써 말하는 아들이 기특하기만 했다.
시험 시간은 오후 1시부터였다. 밥 먹고 난 후에는 정신이 흐릿해진다며 11시에 점심을 먹고 시험장으로 갔다.
전학시험을 볼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 말을 듣지도 않겠거니와, 만에 하나 내 말을 듣는다고 해도 훗날 원망할까 봐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 하니까. 그렇지 않아도 후회로 가득한 삶인데,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은가.
시험을 보고 3일 후에 정답이 인터넷으로 공개되었고, 합격 발표까지는 3주를 기다려야 했다. 정답이 공개되자 채점을 한 후 몇 년간 합격점수 커트라인을 확인하더니 자신의 점수가 좀 부족할 것 같다고 했다. 영, 수는 기대치만큼 풀었지만, 역시 또 국어에서 걸렸다.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 나 합격하지 않으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해?"
너무 아파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로도 들렸다.
"전학시험에 합격해 그 학교에 들어가는 게 반드시 좋다고만 할 수 없어. 2학년에 올라가면서 학교를 바꾸면,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야지, 새로운 학교 분위기, 선생님들 수업에 적응해야지, 그러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될 거야. 그리고 그 학교의 학생들이 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야. 어느 학교에 있든, 자신의 마음가짐, 태도가 관건이잖아. 지금 학교에 그냥 있으면 1학년 때 정든 친구들과 같이 지낼 수 있고, 내신도 좋을 거구, 익숙해진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고..."
아들은 내 말을 가만히 듣고는 알았다고 했다. 작은 아들도 어느새 성장해 있었다.
인생에는 거부할 수 없는 실패라는 것이 있으며, 그걸 받아들여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조금씩 알고 있는 것일까?
시험에 떨어져 아파하고 속상해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시험에 떨어져 반친구들 앞에 나서기가 부끄럽다고 하면서도 용감히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되고 1달이 지난 지금, 전학하지 못한 게 어쩜 더 잘된 일인 것 같다고 말한다.
뜻하지 않게 우리에게 들이닥치는 불운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불운이라고 여겼던 것이 기회인 경우도 적지 않다. 조금만 시각을 바꾸면 너무 많이 아프지 않고 그들을 흘러 보내게 할 수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