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는 방문을 열 줄 모르고, 한 아이는 쉴 새 없이 방문을 열어댄다. 큰 아들이 중학생, 작은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였다.
큰 아들의 방문은 하루에 몇 번 열리지 않는다. 방 안으로 문을 걸기 시작한 것은 확실히 언제라고 기억이 안 나지만 중1 때쯤이었다. 갑자기 문을 안으로 걸어 당황하는 내게 동생이 노크도 없이 자기 방을 들락날락해서 집중이 안 되기 때문에 문을 건다고 설명했다. 납득이 갔다. 작은놈은 그렇게 말하고 타일러도 노크를 까막고 문을 벌컥벌컥 열고 쳐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얘는 화장실도 안 가나? 아침을 먹을 때 열린 방문은 점심을 먹을 때 되어야 문이 열린다. 방 안에서 도대체 하루종일 뭘 하나?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한다지만, 꼭 닫쳐진 방문을 바라볼 때면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큰 애 방문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내게 다가와서 작은 애가 속삭였다.
"엄마, 형 방 안에서 뭐 하는지 알아?"
"공부하고 있겠지."
"어떻게 하루종일 공부해? 게임하고 있지. 난 다 알아."
나의 아름다운 기대를 염려하는 건지, 아니면 형에 대한 나의 마음에 흠을 좀 내보자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작은 애는 형이 게임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큰 애가 일본에서 태어나 보육원에 다니던 어느 날, 보육원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어머님, 이 애는 집중력이 남달라요."
"그걸 지금 어떻게 알죠?" 7-8개월 된 아이에게 집중력이라니, 의구심이 생겼다.
"선생님이 동화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는데요, 보통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지 못하고 중간에 몸을 움직이거나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거나 딴짓을 해요. 그런데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듣는 아이가 한 명뿐이거든요."
동화책을 다 듣고 나면 턱받이가 흠뻑 젖어 있다고 했다. 침을 흘리며 집중해서 듣는다는 거였다.
작은 아이는 달랐다. 이 애는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방문에서 뛰쳐나와 내 방문을 사정없이 열어 들어든다. 뭐 그리 물어볼 게 많은지, 그 묻고 싶은 게 어디로 달아날까 봐 그런지 노크할 새도 없이 쳐들어온다. 그런 아들에게 방밖으로 나가서 다시 노크해서 들어오라고 한 적도 수십 번. 질문할 걸 정리해서 한꺼번에 물어보라고 하기도 했다. 시간을 정해 수업 시간, 쉬는 시간을 정해놓고, 쉬는 시간을 이용해 내 방에 들어오라고 하기도 했다. 본인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금세 잊곤 한다.
주말이거나 방학 때, 작은 아들이 있으면 논문 한 편 집중해서 읽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루에 도대체 몇 번 내 방에 들어오는지 모른다.
하루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아이들이 다 집에 있는 날이었다. 명상 수련에 갔다가 "你可以不生氣(화내지 않아도 돼)"라는 책명이 맘에 들어 사고 온 책을 보고 있었다. 그날도 화를 달래 보려고 손에 집어든 것이 아닌가 싶다. 티베트 스님이 쓰신 책이었다. 그 책을 손에 들고 읽고 있는데, 작은 애가 노크 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10분도 될까 말까 해서 또 들어온 거였다. 오전 시간이었는데 이미 몇 번 내 방을 들락날락한 상황이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작은 애에게 화를 벌컥 냈다. "또 뭐야?" 소리 질렀다.
작은 아들이 내 손에 들고 있는 책명을 보더니, 작은 소리로 "媽媽, 你可以不生氣!(엄마, 화내지 않아도 돼!)"라고 하는 거였다. 그만 나도 아들도 웃고 말았다.
열 줄 모르는 방문을 뜯어버리고 싶은 심정.
쉴 새 없이 여는 방문을 밖으로 걸어버리고 싶은 심정.
그 당시에는 심각한 일들이었다. 자주 찾아오는 작은 아들에게 짜증 내던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이렇게 웃으며 써 내려갈 수 있는 추억의 한 장이 되었다.
작은 아들에게 퍼부었던 짜증이 나의 부족한 배려심, 이기적인 마음에서 생겨났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두 아들의 양육과 연구의 병행, 치열하게 살았던 자신에게도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