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 여행기 3) 팍상한 폭포에서

세계 7대 절경

by 바람처럼

조성모의 음반 재킷,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그리고 영화 킬링필드까지 수많은 장면 속에 배경으로 등장했던 곳. ‘세계 7대 절경’이라는 이름에 기대가 부풀었다.


팍상한 폭포를 향해 출발했다.

좁은 보트에 몸을 실으며 가슴은 설렜지만, 막상 출발하고 나니 억울한 마음도 스쳤다. 먼 길을 달려와 낡고 딱딱한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물살에 흔들리는 보트 위에서 오래 앉아 있으려니 허리며 다리가 쑤셨다.


관광버스도 상황은 비슷했다.

새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오래된 중고버스, 언제 멈출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가이드가 말했다.

“여기선 이게 최상이에요.”

괜히 마음 한편이 쓸쓸해졌다. 혹시 버스 회사 사장은 한국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트는 협곡 사이를 따라 한 시간 가까이 달렸다.

오기 전,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가다 보면 ‘배고파요~’ 하고 한국말로 외치니까, 닭고기라도 챙겨줘야 한다더라.”

“팁을 안 주면 눈치 준다더라.”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는 달랐다.

물살도 깊고, 보트를 끄는 사람들도 능숙했다. 힘든 일임은 분명하지만,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가끔은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웃음을 유도하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콜라 한 캔이 1달러였다.

콜라 대신 팁을 주자, 그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갑자기 친절이 2배쯤 늘어난 느낌이었다.

돈의 힘은, 이곳에서도 빠르게 통했다


폭포를 맞으면 딸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나라가 딸을 더 선호해서인지,

이곳에서는 여성에게 유독 우호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밤이 되면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온 첫날,

밤이 되자 몇몇은 호기심을 못 참고 거리로 나갔다.

이 도시는 낮과 밤의 표정이 너무 달랐다.

다음 날 아침, 가이드는 한 사람을 데려오며 웃었다.

“이곳은 길을 잃기 쉬운 도시입니다.”

우리는 웃었지만, 아무도 자세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문득 그 순간이 스쳤고 이곳의 분위기와

그 대비가 여러 생각을 남겼다.


나에겐 예쁜 딸이 있기에, 폭포 속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물은 탁해 보였지만 석회수라 그렇다 했고, 실제로는 깨끗하다고 했다.


물아래는 모래가 깔려 있었고, 바위엔 이끼도 없어 미끄럽지 않았다. 그런데… 옷은 흠뻑 젖었다.


계곡은 깊고 그늘이 많았고, 시원한 공기가 피부에 스며들었다.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는 강을 배경으로 딸을 모델 삼아 한 컷.

정말, 남는 건 사진뿐이겠구나 싶었다.


이젠 돌아갈 시간.

버스를 타고 다시 긴 길을 달려야 했다.


돌아오는 길, 도심은 꽉 막혔다.

신호등 하나를 넘는 데 십 분이 걸렸다.

필리핀 인사들과의 약속 시간은 이미 지났고, 우리는 차 안에서 초조해졌다.

마침내는 버스에서 내려 두 정거장을 뛰었다.

가이드는 숨도 고르지 않고 말했다.

“이 나라 교통 체증의 주범은 지프니입니다.”

우리는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흔한 일이라며 모두 웃어넘겼다.


저녁 모임은 격식이 있었고, 함께한 이들은 대부분 상류층처럼 보였다. 의사, 국회의원, 사업가 등등.

말끔한 옷차림과 고급스러운 액세서리가 눈에 띄었다.


그 와중에, 틈만 나면 우리에게 기부를 요청하는 그들의 태도는 조금 낯설었다. 겉으로 보기엔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것 같았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그들만의 방식일 것이다.


그날, 나는 비교보다 질문을 더 많이 안고 돌아왔다.


여행은 늘, 정답 대신 생각을 남긴다.



화요일 연재
이전 03화(필리핀 여행기 2)따알 화산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