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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카 Apr 24. 2022

비극적 모녀가 촉발한 모녀의 비극

<앵커>(2022), 정지연 감독

제목 : 앵커(2022)
국가 : 대한민국
감독 : 정지연
제작 : 인사이트필름, 어바웃필름
배급 : 에이스메이커

비극적 모녀가 촉발한 모녀의 비극

정지연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앵커>는 한 모녀의 30년에 걸친 비극을 담은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유년기에 미혼모 모친 소정(이혜영)에게 살해당할 뻔한 세라(천우희)는 30년 뒤 성공한 앵커가 되지만 여전히 목을 졸리는 악몽에 시달린다. 출산 문제로 모친과 다툰 날 딸에 죄책감으로 모친이 자살하고, 충격받은 그녀는 기억을 지운 뒤 내면에 모친의 인격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다음 날 딸을 살해 후 자살한 아나운서 지망생 '미소'의 시체를 마주하고 무의식에 묻어 두었던 트라우마가 촉발된다.


여성 서사로 담아낸 사회적 메시지

자신과 자녀의 자아를 분리하지 못하고 내 아이들의 인생이 따로 있다고 바라보는 인식이 희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을 끝낼 때 자녀를 거두는 것이 끝까지 책임지는 부모의 태도라고 생각해버리기 십상이다. 이를 '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온정적 표현으로 부르고 '오죽하면...'이라고 관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여기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


영화는 미소 모녀에 대한 언론사의 회의를 매개로 부모가 자녀를 숨지게 한 뒤 자살한 사건들을 '동반자살'로 보아야 할지, '자녀 살해 후 자살'로 보아야 할지에 대한 쟁점을 제시한다. 또한 영화에 미혼모 가정이 둘이나 등장하지만, 미혼부에 대한 정보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는데, 아기 아빠는 사라지고 없다. 실제로 미혼모 지원 네트워크의 2016년 연구 결과 미혼모와 미혼부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경우가 78%이라고 한다.


이 영화가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방식

영화 <앵커>는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아동 인권과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시의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동시에 장르적 즐거움도 놓치지 않았다.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의심과 공포의 대상이 변화하는데, 영화를 4막으로 나누어 보면 각 막마다 서스펜스를 견인하는 등장인물은 아래와 같다.


    1막 : 세라를 조여 오는 죽은 미소의 환영

    2막 : 수상한 미소의 주치의

    3막 : 딸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세라 모친

    4막 : 드러난 세라의 제2인격


먼저 초반에는 시시때때로 세라의 눈앞에 나타나는 미소의 환영을 공포스럽게 연출하여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다음으로는 수상한 과거와 행적의 최면치료 전문의가 등장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미소의 타살 가능성을 열어 두도록 한다. 이후 딸에게 다소 집착적이었던 세라 모친이 결국 끔찍한 일을 저질러 충격을 주고, 마지막으로 모든 진실이 밝혀지며 두 인격의 처절한 싸움이 펼쳐진다. 영화가 지루해질 때쯤 새로운 인물이 바통을 넘겨받아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여 2시간 내내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다만, 중반에 미소 주치의(신하균)에 의해 해리성 인격 장애가 언급되는 순간 후반부의 반전이 예상되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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