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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 Apr 24. 2024

미국 유치원을 2년 다닌 후, 생긴 일

미국에서 2년을 살다


요즘, 한국 엄마들 사이에 "영유"가 엄청 인기다.

"영어 유치원"을 줄인 말이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조기 교육하는 유치원인데, 비용이 한 달에 100만 원부터 200, 300만 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05년,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 덕에 큰 딸아이는 '미국 유치원'을 2년간 다녔다.

한국에 있는 '영유'가 아니고, 현지에 있는 미국 유치원을 다닌 것이다. 한국 유치원도 한번 안 가본 아이가, 미국인 선생님, 미국 친구들과 함께 2년 동안 유치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2005년, 미국 델라웨어 주에 있는 작은 유치원,

아침에 큰 딸아이를 유치원(kindergarten)에 데려다주고, 오후 2시경에 데려오곤 했다.

친구들과 헤어질 때, 처음으로 우리 아이가 한마디 했다.

"빠이 빠이~~~."


집에 돌아온 후,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어보면, 아이의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장난감도 가지고 놀았고, 모래놀이도 하고, 수영도 했단다. 그래서 아내는 아이가 유치원에 잘 적응하는 걸로 생각했다. 처음 유치원에 나가고 몇 달 후, 아이의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었는데, 당시에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종일 낯선 환경에서,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선생님, 친구들과 생활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딸아이는 만 4세였다. 미국은 유치원부터 의무교육이라, 조기 영어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당시 만 2세였던 둘째 딸아이는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해 아쉽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별로 말이 없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친구와 대화도 하고 영어도 잘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아이의 영어가 조금 늘었다.


"굿~ 모닝~~"

2년이 거의 끝나 갈 때쯤, 아침인사도 했다. 그게 전부였다, 굿모닝과 바이바이. 2년 동안 미국 유치원을 다니면서 아이가 사용한 영어 단어는 이게 전부였다. 그렇게 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를 유급시켜?


2년 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 큰아이는 만 6세였다. 

7월에 한국 유치원에 입학시키려니, 자리가 없단다. 내년 초, 신입생 모집시기에 다시 오란다. 그런데, 이듬해,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아이 생일이 2월이다 보니,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때 아내가 고민을 했다. 한국 유치원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한국 생활에도 익숙하지 못한데, 이대로 학교에 보내도 될까?


하지만, 학교에 보내는 걸 늦추려면 절차가 까다로웠다.

병원에서 발육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서를 발급받고, 이걸 교육청에 제출해 심사를 받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리해서, 입학을 늦춰준다는 확신도 없었다.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켰다.


초등학교 2학년 과정이 거의 끝나가던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물었다.

"큰 딸아이를 1년 유급을 시키면 좋겠어요."

"무슨 소리야? 왜 유급을 시켜??"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 얼마나 어려운 걸 배운다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까? 그리고, 고3도 아니고, 초등학생인 아이를 유급을 시키자고?'


며칠 후, 아내와 함께 참관수업을 다녀오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날의 수업주제는 "곤충"이었다.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여러분, 여름에 볼 수 있는 곤충은 어떤 게 있을까요? 아는 사람?"

"선생님, 저요, 저요"

"파리요, 모기요, 여치요, 바퀴벌레요."

아이들은 신나게 손을 들고 떠들어대는데, 우리 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fly, mosquito"는 떠올랐을 텐데, "파리, 모기"라는 단어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나 보다.


선생님과 면담을 하다 보니, 아이가 일상 대화를 못 알아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문 좀 닫아 줄래?" 이런 건 잘 알아듣는단다. 

하지만, "누구, '출입문' 좀 닫아줄 사람?" 출입문?, 이런 단어는 잘 모르겠단다.


초등학교 2학년을 유급시켜야 할까, 고민 끝에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유급도 쉽지 않았다. 외국을 다시 다녀오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서 진단서를 제출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다녀온 효과?


초등학교 3학년을 지나면서, 많이 회복이 되었다. 

수업도 잘 따라가고, 학교 성적도 곧잘 받아오곤 했다. 초등 6학년때는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아왔다. 영어공부를 많이 안 했는데, 리스닝도 잘되고, 스피킹도 발음이 좋았다. 드디어,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닌 혜택을 보는구나 하고,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중학교 2학년 때 다시 문제가 생겼다. 영어시험 점수를 30점을 받았다고, 아내가 걱정을 했다. 영어학원을 보내야겠는데, 학원비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아이인데, 뭐 하러 영어학원을 보내? 지난번에 보니, 영어 웅변도 잘하던데, 영어 문법만 잘 안 되는 거니까, 내가 가르쳐볼게요"


그렇게 자신 있게 시작한 영어공부는 2주 만에 포기해야 했다.

"아빠, 주어가 뭐야? 동사가 뭐야? 문장형식이 1 형식? 2 형식?"

영어 문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문법과 관련된 단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놀라운 것은, 문법을 전혀 모르는데, 영어 회화는 잘한다는 것이다. 문법을 몰라도, 영어로 대화하고, 웅변도 할 수 있는데, 학교에서는 문법만 열심히 가르치려 한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그렇게 아이와의 영어 문법공부는 2주 만에 실패로 끝났다.



고3이 되면서, 딸아이가 학교생활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보충수업도 해야 하고 힘들 텐데,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친구가 생겨서 너무 좋단다. 알고 보니, 우리 아이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친구가 없는 은따("은근히 왕따")였단다. 놀아줄 친구, 공부할 친구도 별로 없었는데, 고3이 되면서, 야간 수업하고, 독서실도 다니면서, 친구가 생겨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친구가 많지 않은 것도 미국에 다녀온 영향인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업도 이해가 안 되고, 선생님과 대화도 잘 안되다 보니, 학교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때문에 친구도 많이 사귀지 못한 것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집을 못 찾겠다고?


첫째가 고1이 되었을 때, 이사를 했다. 

이전에 살던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이사를 하면, 학교도 근처로 옮겨야 했다. 학교를 옮기지 않으려고, 분양받은 아파트를 전세를 주려 했으나, 거래가 되지 않아 이사를 해야만 했다.


새집으로 이사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 갔던 딸아이가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해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한다. 몇 시간을 헤매다, 결국은 엄마가 차를 가지고 나가, 아이를 만나 집에 돌아왔단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딸아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우리 집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해?"

"글쎄, 주변에 어떤 건물이 보이니? 우리 집은 00 방향으로 오면 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00 아파트 가는 길을 물어보면 되는데~."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마디만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고1이나 되는 아이가, 모르는 사람에게 길 물어보는 걸 하지 못해, 몇 시간 동안 길을 잃고 헤맸다는 것이다, 엄마한테만 전화를 하면서....  너무 수줍어하고, 낯선 이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것도 미국 유치원 탓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


주위에 유학이나 해외 주재관을 다녀오면서,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미국 유학 이후, 큰 아이의 사건을 겪으면서, 주위 분들에게 이렇게 부탁을 한다. 

"어린아이와 함께 외국에 나가게 되면, 절대 영어부터 가르치려 하지 마세요. 한국말부터, 확실하게 익힐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주셔야 해요."


미국 유치원을 다녔던 큰 아이는 이제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다. 자기처럼, 학교생활이나 친구관계가 어려운 청소년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단다. 4학년 1학기를 마친 후에는 학교를 휴학하고, 다양한 사회 경험도 하고 있다, 장애인 봉사활동, 해외여행, 카페 아르바이트 등등....


미국 유치원 때문에 힘들었던 걸 이겨내고, 이걸 경험 삼아 자신의 진로를 찾아낸 것은 참 다행이다. 하지만, 다시 기회가 온다면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조기 영어교육, 엄마들이 탐내는 이것이 함부로 도전할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외국어, 특히 영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모국어의 중요성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의 경우를 보면서, 영어 못지않게 우리말, 한국어도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큰 딸아이가, 힘들었던 경험을 기회로 삼아, 자신의 진로를 잘 개척해 나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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