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22년 봄,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가슴에 콩알 같은 게 만져져.”
그날 우리의 시간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2022년, 시작
6월에 수술을 했다. 처음엔 1기일 거라 했지만 최종 결과는 2기 초반. 호르몬 양성, HER2 음성. 그 후로 엄마는 머리를 밀고 항암 4회를 견뎠다. 방사선 21회도 받았다.
그 시절의 엄마는 정말 강했다. 아파도 “끝나면 여행 가자”는 말을 자주 했다. 12월, 포트를 제거하던 날엔 정말 모든 게 끝났다고 믿었다.
2023~2024년 상반기, 평온
엄마는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꽃을 보러 나가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검사 때마다 “이상 없음”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제 괜찮아졌나 보다.”
그때 가족 모두 안심했다. 누가 과연 재발을 꿈꾸며 살겠는가. 고통의 반복이 아닌 고난의 끝을 꿈꾸고 행복한 엔딩을 바라겠지.
2024년 겨울, 다시
하지만 여름 폐에 작은 결절이 보였다. 괜찮았다.
그해 겨울, 엄마는 등에 통증을 호소했다. 검사에서 뼈에 검은 점이 보였고 혈액 수치도 좋지 않았다.
“3개월 뒤 다시 보자.”
그 3개월 동안 엄마는 진통제를 먹으며 버텼다. 동네병원에서는 퇴행성 관절염이라 했다. “절대 전이 아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고 주사치료를 받았다.
우리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치료를 시작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아니, 뼈저리게 후회된다.
2025년 봄, 뼈 전이
결국 뼈 전이. 젤로다라는 경구 항암이 시작됐다. 간에도 병변이 있었지만 미판정 상태. 엄마는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걸었고 휠체어와 보행기가 집에 들어왔다.
그 모든 게 너무 빨랐다.
4월부터 7월까지 젤로다 6차. 결과는 ‘변화 없음’. 그 사이 식욕이 줄고 체중이 빠지고 하루하루가 버텨내는 시간이 되었다.
8월, 엔허투
약을 바꿨다. 비싼 약이지만 효과만 있으면 하는 마음 하나였다. 걸음걸이가 잠시 부드러워졌지만 암은 움직이지 않았다.
9월, 간 전이
의사는 “암이 줄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간 전이 확정.
세 번째 약으로 변경됐다. 아드리아마이신과 엔독산.
9월 25일엔 고열로 응급실에 갔다.
서울 대형병원 전원을 알아봤지만 불가능했다.
10월 말
이제 엄마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식사는 거의 하지 못한다. 추석 무렵엔 급성 방광염까지 겹쳐 화장실 가는 일도 힘들어졌다.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내신다.
가끔 기분이 괜찮은 날엔 “이제 좀 괜찮아” 라고 하신다. 그 말에 하루가 버텨진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하고 가장 밝은 사람이다. 따뜻하고 멋진 사람이다. 그런데 엄마가 여러번 지더라.
얼마 전에 누가 물었다. “괜찮아?”
나는 대답했다. “질 때도 있고 다시 일어날 때도 있어. 반복해.”
그 사람은 말했다. “힘내. 기운 차려.”
고마웠다. 하지만 기운이 안 난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약이 잘 맞으면 3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습니다.”
그니까 그 약이 대체 뭐냐고요. 뭘까요. 시간의 길이보다 더 중요한 건 오늘 하루의 질이라는 걸. 엄마가 덜 아픈 날이면 좋은 날이고 밥 한 숟갈이라도 더 드시면 그게 희망이다.
10월의 끝. CT 결과를 기다리며 그저 한 가지를 바란다. 이번엔 부디, 좋은 소식이었으면.
엔허투의 가격을 걱정하던 날들이 이젠 너무 멀게 느껴진다. 계산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삶 앞에서 남은 건 하나뿐이다.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편안하게, 오늘을 보내는 일.
이 글의 제목을 ‘엄마 + ing’이라 쓴 이유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회상도 결론도 아니다. 그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 엄마는 여전히 싸우고 있고 나는 여전히 기록하고 있다. 이 문장은 끝나지 않은 사랑의 문장이다.